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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초개같이 여기는 혁명자-진연년

  • 2018-05-29 07:27:33

[합비=신화통신] 안휘성 안경시소년궁안에는 진연년의 조각상이 우뚝 서있다. 양복차림에 왼손은 호주머니에 넣었으며 붉은넥타이가 앞가슴에서 높이 휘날리고 있는 조각상은 렬사의 당년의 용맹스럽고 재기 넘치고 원대한 포부로 격양된 혁명형상을 생동하게 재현하였다.

진연년은 하연이라고도 부르며 안휘 회녕사람이고 진독수의 큰 아들이며 1898년에 출생했다. 1915년 상해프랑스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였으며 1917년 진단대학에 입학하여 법과를 전공하였다. 1919년 12월 하순, 프랑스에 고학을 갔다. 1921년, 원래 신앙하던 무정부주의를 포기하고 맑스주의를 신앙하기 시작했으며 1922년 6월, 조세염, 주은래와 함께 유럽 공산주의조직-중국소년공산당을 창건하고 선전부장을 담임했다. 같은 해 가을, 프랑스공산당에 가입하였고 얼마뒤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전환하였다.

1924년 10월, 진연년은 귀국한뒤 당중앙의 판견으로 광주에 가 선후로 사회주의청년단중앙 광동주재 특파원,  중공광동구위 비서 겸 조직부장을 담임했다. 얼마뒤 주은래를 대신해 중공광동구위 서기를 담임하였다. 그는 당건설을 매우 중시하고 강화하였으며 구위 지도기구를 건전히 하고 당과제도를 건립하고 당원 양성과 교육에 진력하고 당의 단결을 강화하였다. 1927년 3월에 이르러 광동당조직은 이미 9000여명의 당원을 보유하게 되였으며 당시 전국적으로 당원인수가 가장 많고 조직기구가 가장 건전하며 고도의 응집력과 전투력을 갖춘 지방당조직의 하나로 되였다.

1924년 11월, 진연년은 주은래를 협력하여 해륙군 대원사부 철갑차대를 건립하였다. 1925년 11월, 철갑차대의 토대에서 주은래, 진연년 등은 황포군관학교 졸업생중에서 공산당원과 공청단원 골간들을 선발해 이름난 엽정독립퇀을 구축하기로 결정하였다.

1925년 6월 진연년, 소조정, 등중하 등은 중외를 들썩한 성항대파업을 령도하였다.

국공협력의 대혁명시기 진독수를 위수로 한 당중앙이 국민당우파에 대한 진공문제에서 타협 및 양보정책을 취할 때 진연년은 이를 단호히 반대하였으며 중공광동구위의 명의로 당중앙에 보고서를 올려 국민당우파에 대한 타협 및 양보정책을 단호히 포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등중하, 장태뢰와 진독수의 착오에 대해 언급할 때 화가 나 "(진독수) 장개석의 음모를 간파하지 못하고 로동자와 농민의 힘을 보지 못하고 무산계급을 혁명의 막벌이꾼으로 삼는다."고 말했으며 또 "나는 공산당원며 당의 립장에 단호히 서 우경기회주와의 타협 및 양보정책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1927년 4월, 진연년은 무한에 가 중국공산당 제5차 전국대표대회에 참가할 때 중앙에서는 중공강절구위 서기직을 이어받기로 임명하였다. 그가 즉시 상해로 가던도중 상해에서 4.12반혁명정변이 일어났다. 1927년 6월, 중공중앙은 강절구위를 취소하고 각기 강소성위와 절강성위를 건립하고 진연년을 중공강소성위 서기로 임명하였다. 백색테러로 뒤덮인 상해에서 진연년과 조세염 등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포치하고 흩어진 동지들을 찾고 당조직을 회복 및 재건하면서 적극적으로 투쟁을 전개하였다. 6월 26일, 진연년은 국민당 군대와 경찰들에게 체포되였다. 적들은 상해 중공당조직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진연년에게 갖은 혹형을 다했으며 그는 시달림을 받아 온정한 피부란 없었다. 적들이 상해당조직을 자백하라고 핍박하였지만 진연년은 강철같은 의지로 당의 기밀을 엄수하고 죽을지언정 굴하지 않았다.

1927년 7월 4일 저녁, 국민당 반동 군대와 경찰들은 진연년을 사형장으로 끌고 갔다. 살인자들이 그에게 무릅을 꿇으라고 소리치자 그는 오히려 "혁명자는 광명정대하고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기에 서서 죽을지언정 절대 무릅을 꿇지 않는다!"고 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몇몇 형집행사병이 폭력으로 그를 누른후 손을 놓고 칼을 휘두르려 할 때 뜻밖에 진연년이 또 벌떡 일어나는바람에 칼이 빗나가 목을 베지 못하게 되였고 살인자도 놀라 하마트면 넘어질번 하였다. 끝내 적들은 그를 땅바닥에 누르고 란도질하여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우리 당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고 더우기는 해외에서 날아온 것도 아니며 장기간의 끊임없는 혁명투쟁가운데서 어렵고 간고한 혁명투쟁속에서 성장하고 강대해진 것이다." 진연년이 1926년에 한 이 말은 지금 상해룡화렬사릉원 책갈피에 새겨져 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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