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동안 진리를 추구한 진기

2018-11-09 08:58:41

해방군 ‘제1군사규률’을 발령한 호남성 계동현에는 곳곳에 혁명선렬들의 이름으로 명명했거나 혁명과 관련된 도로와 지상 표식 명칭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계동현의 혁명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 진기로는 계동현1중, 계동현중의원 등 인원류동이 많은 여러개 단위와 잇닿아있으며 현성 간선도로중의 하나이다.

진기는 1904년에 태여났으며 호남 계동사람이다. 1921년, 형양성립제3사범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였고 애국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24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때로부터 그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학생운동, 로동자운동에 참가하였으며 호남학생련합회의 지도성원으로 추천, 선거되였다.

1925년 ‘5.30’참안 후 진기와 학생련합회의 몇몇 지도자들은 함께 형양시 학생들을 발동하여 동맹휴학을 조직하고 시위행진을 진행했다. 또 각 현, 시 학생들에게 선언문을 보내여 상해인민들의 정의적인 투쟁을 지지하고 성원하였으며 그해 가을 광주농민운동강습소에서 공부했다.

1926년, 진기는 파견을 받고 계동으로 돌아가 중공계동지부를 조직하고 서기를 맡았다. 1927년, 성당위 특파원의 신분으로 계동농민운동을 령도하고 농민자위군을 조직했으며 모택동이 령도한 상감변계 추수봉기에 참가하여 중국로농혁명군 제1사 1퇀의 중대 당대표를 맡았다. 1928년, 진기는 중공계동현위 서기 겸 계동현쏘베트정부 주석, 상감변구 유격대 대대장직을 맡고 상감변구 유격근거지를 개척하는 데 참여하였다.

1929년 4월, 진기는 홍5군 5종대 2대대 당대표직을 맡았고 8월 군대를 따라 호북 동남부에 진군하였으며 그해 12월 대야봉기와 협동작전하였다. 1930년 6월, 홍8군 4종대 사령원을 맡았고 7월에 부대를 거느리고 장강을 건넜으며 행동위원회 서기직을 맡고 4종대와 5종대를 통일지휘하였으며 기(춘)황(매)광(제)혁명근거지를 개척하는 전투를 령도했다. 같은 해 10월, 홍15군 정치위원직을 맡았으며 명령을 받고 군장 채신희가 거느린 부대와 함께 악예환쏘베트지역으로 전진해가서 제1차 반‘포위토벌’에 참가했다.

간고한 투쟁환경 속에서 진기는 집에 보내는 편지에서 “혁명의 길은 반드시 통할 것이다.”, “혁명이 성공하기만 하면 부모님과 마을 군중들은 한평생 행복을 누릴 것이다.”고 부모님을 위안하였다.

진기는 부대의 사상, 정치 건설에 깊은 중시를 돌리고 중국공산당과 공산주의청년단 조직을 건립, 건전히 하였으며 당의 령도를 강화하였다. 부대의 문화수준을 높이기 위해 중대의 반마다 식자반장을 배치하고 매일 전사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홍군의 소형 신문을 읽어주게 하였다.

1931년 1월부터 진기는 홍4군 제10사 정치위원, 제13사 정치위원, 제12사 34퇀 퇀장, 제10사 사장직을 력임했다. 그동안 그는 장국도의 ‘좌’경로선 착오를 견결히 반대하였으며 직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전쟁터에서 용감히 싸웠으며 부대를 거느리고 악예환쏘베트구역 제2차, 제3차 반‘포위토벌’에 참가했다.

1932년 3월, 진기는 순직하였는데 그때 나이는 28살이였다. 1945년, 중국공산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그는 혁명렬사로 추인받았다.

계동현지방지판공실 주임 리효강은 “진기는 일생동안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전파하였으며 혁명전쟁 속에서 초심을 잊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희생될 때 나이가 28살밖에 안되지만 특히 오늘의 젊은이들이 따라배울 바이다.”고 말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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