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의 상승장군 단덕창

2018-12-06 07:51:28

동정호의 복지에 자리잡고 있는 호남성 남현은 푸른 나무가 무성하고 련꽃향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곳이다. 단덕창평생업적진렬관은 바로 이 현성의 서쪽에 위치한 덕창공원 박물관 안에 있다.

단덕창은 1904년 8월에 호남 남주(오늘의 남현) 구도산 구옥장에서 태여났다. 1922년에 장사 아각중학교에 입학했고 맑스주의학습소조에 참여하고 조직했으며 애국학생운동을 일으켰다. 1924년, 하장공과 함께 화용에서 신화중학교를 설립하고 진보적인 사상을 전파했다. 1925년 ‘5.30’참안이 발생한 후 그와 진보적인 청년들은 ‘청호참안 남창치욕회’를 발기, 조직하고 경상적으로 현성 연안에 있는 부두와 교통요도에서 외국상품을 취체하고 간상배들을 엄벌하였다. 6월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였고 9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후에 광주에 가 선후하여 황포군관학교 제4기 중앙정치강습반에서 학습했다. 1926년 6월에 졸업한 후 국민혁명군 제8군 제1사 정치부에서 사업했으며 북벌전쟁에 참가했다.

1927년 대혁명이 실패한 후 단덕창은 남현, 화용, 석수, 공안 등지에서 혁명활동을 진행했다. 일찍 중공 공안현위 서기로 임직하고 공안현의 년말폭동을 령도했으며 또 국민당군 호남독립 제5사 1퇀 퇀장 팽덕회를 소개해 중국공산당에 가입시켰다. 1928년 6월부터 단덕창은 중공 악서특별위원회 위원, 악서유격대대 중대장, 유격총대 참모장, 독립사 사장을 력임하고 부대를 거느리고 감리, 면양 접경지역에 유격근거지를 창건했다. 1930년 2월 후부터 선후하여 중국로농홍군 제6군 부군장 겸 제1종대 사령, 제2군단 제6군 정치위원, 군장, 상악서쏘베트구역 련현정부 홍색경위대 총대장을 맡았고 홍호를 중심으로 한 상악서쏘베트구역 창건과 공고, 확대 사업에 참여했다. 1931년 4월, 단덕창은 홍3군(홍2군단 개편) 제9사 사장을 맡고 부대를 거느리고 삼관전, 사강, 보제관, 학혈, 왕가교, 룡왕집, 문가돈, 신구취 등 전투에서 련속 승리를 거두면서 상악서쏘베트구역 군민들로부터 ‘무적의 상승장군’으로 불리웠다.

그해 가을, 국민당군의 대규모적인 ‘포위토벌’ 아래에서 홍3군은 할 수 없이 홍호쏘베트구역을 떠났다. 그는 9사를 거느리고 적들의 공격을 막고 퇴로를 차단하는 등 간고한 임무를 수행했으며 3500여킬로메터를 종횡무진하면서 12월 하순에 상악변경지역에 도착했다.

1933년 5월, 단덕창은 장렬하게 희생되였는데 그때 나이는 29살밖에 안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 모택동 주석은 그의 가족들에게 중앙인민정부 제1호 ‘혁명 희생군인 가족 영예증서’를 서명, 발급하였다.

호남성 남현 단덕창평생업적진렬관의 부지면적은 800여평방메터이고 주체 건축물의 면적은 1500여평방메터이다. 중요한 명절 때마다 당지의 각계 인사와 사회단체들은 자발적으로 덕창공원을 찾아와 단덕창 동상과 기념비에 꽃다발을 진정하고 렬사를 추모한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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