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진흥을 위해 해외서 귀국한 전략과학가 황대년

2021-08-02 09:08:53

광서 남녕시 원호로소학교 황대년동지 선진사적 교양기지의 한 졸업기념부 사본에는 “중화진흥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라고 쓴 황대년의 글이 있는데 모교 사생들의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겨져있다.

황대년은 1958년에 광서 남녕에서 태여났으며 후에 부모를 따라 치벽한 산골에 하방되였다. 대학입시 첫날에 그는 거의 하루 동안 산길을 걸어 20킬로메터 밖에 있는 시험장에 도착했다. 1978년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장춘지질학원(지금의 길림대학)에 입학하여 응용지구물리학부에서 공부하면서 본과와 석사 학업을 완수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았다. 그의 동창생 모상남은 지금까지도 황대년이 1982년에 그의 공책에 써주었던 “중화진흥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라는 졸업증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황대년

1992년에 황대년은 ‘중영우호장학금프로젝트’의 전액지원으로 영국에 가 박사학위를 전공하게 되였으며 당시 30명의 국비로 파견된 출국류학생중의 일원으로 되였다. 출국 전에 황대년은 동창생들에게 “나는 반드시 외국의 선진기술을 갖고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6년에 황대년은 영국 리즈대학 지구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황대년은 영국 캠브리지의 한 항공지구물리회사에서 지구물리탐사분야의 깊은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는 연구팀을 거느리고 해양과 륙지의 복잡한 환경에서 쾌속이동방식으로 대지투과식 정확한 탐사를 실시하는 기술돌파를 실현했다.

해외에 있는 10여년간 의학공부를 한 그의 안해는 자신의 진료소를 설립했고 딸도 학업을 마치여 일가족의 생활은 안일했다. 하지만 황대년은 조국에 대한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고 늘 모교를 념려하면서 자주 답방하여 교류하면서 사생들의 국제시야를 넓혀주었다.

국가에서 ‘해외 고차원 인재유치 계획’ 즉 ‘천인계획’을 가동하면서 중점분야에서 고급인재를 유치하여 핵심기술을 돌파하고 신흥학과를 이끌어갈 수 있는 과학자와 선두인재들이 귀국하여 혁신, 창업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지원했다.

황대년은 소식을 들은 뒤 결연히 가족을 설득하여 직무를 그만두게 했다. 2009년말에 황대년은 국가‘천인계획’특별초청 전문가의 신분으로 모교인 길림대학 전임 교수직을 맡고 지구탐사 프로젝트에 관한 수석과학가로 선정되였다. 이 프로젝트는 길림대학을 중심으로 전국 400여명의 대학교와 과학연구원에서 온 우수한 과학기술인원들을 조직하여 ‘고정밀도 항공중력 측량기술’과 ‘심부탐측 관건 의기 장비 연구제작과 실험’ 두가지 중대한 프로젝트의 연구를 전개했다.

2016년, 여러명의 원사 전문가로 구성된 검수회의에서 그가  이끄는 연구팀은 6년간의 각고의 노력으로 난관을 돌파하여 이룩한 성과가 국가과학기술혁신성과전에 입선되여 도유유 등 여러 유명 과학자들의 성과와 함께 순위에 올랐다.

황대년은 험난했던 길을 회상하면서 “나는 나라에서 키워낸 사람이기에 조국이 필요하다면 나는 반드시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자랑스러운 성과의 배후에는 힘든 노력이 있다.

귀국하여 7년 동안 그는 팽이처럼 피곤함도 모르고 빙빙 돌면서 잠자는 것과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군 했다. 2016년 11월 29일 새벽 황대년은 출장도중에 또 까무러쳤다. 장춘에 돌아온 뒤 단위에서 그에게 강제로 건강검진을 하도록 배치했으나 검진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그는 또 북경으로 출장갔다.

장춘으로 돌아와 아직 숨을 돌리지도 못했는데 황대년은 담관암으로 입원치료를 권장하는 통지를 받았다. 2017년 1월 8일 황대년은 병환으로 치료에 효험을 보지 못하고 장춘에서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황대년의 조수인 우평은 조문을 발표하여 다음과 같이 애도했다. 문화광장을 지날 때마다 지질궁 5층 창문을 쳐다보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일반적으로 등불은 밤 10시 이후, 심지어 더 늦게까지 켜져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나는 다시는 불빛을 볼 수 없게 되였다. 그것은 불빛을 밝히는 사람이 피곤하여 쉬고 싶었기 때문이였으며 그리고 자신에게도 기한이 없는 련휴를 주었기 때문이다…

교원과 학생들도 잇달아 조문을 발표하여 “위대한 강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 해외동포는 격정을 안고 돌아왔다. 설령 앞길이 험난할지라도 그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업에 대한 추구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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