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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풀리자 영화는 끝났다
□ 홍예화
날짜  2017-4-20 14:25:39   조회  226

우리는 가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절체절명의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여느때와 다를바가 전혀 없었던 평범한 금요일, 나는 마법에라도 걸린듯 “미녀와 야수”라는 영화에 빠져들었다. “세계가 기다려온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떠들석한 광고 카피때문만은 아니였다. 어려서부터 읽었던 내용이고 지어는 1991년에 디즈니가 개봉한 애니메이션도 테이프가 닳도록 돌려보았었던만큼, 구체적인 대사까지도 외울수 있는 영화였다. 그런 영화를 굳이 영화관에 가서 보고싶었던것은 왜서였을가? 그래야만할것 같은 절박함이 이상할 정도로 생경했다.

하루에 수백개의 새로운 영화들이 쏟아져나오는 현실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익숙한 영화를 찾아 금싸락 같은 금요일 밤에 꾸역꾸역 영화관에 모여든것을 보면 사람들의 욕구는 다양하면서도 대체로 비슷한 모양이다. 낯설고 새로운것이 주는 신선함과 짜릿함, 설레임도 좋지만 익숙함이 주는 안전함과 편안함 그리고 따뜻함에 위로를 받고싶은 사람들이 많아진거란 증거다.

영화의 129분 런닝타임 대부분 시간에 왕자는 마법에 걸려 야수로 변한 모습이였다. 왕자는 절망에 빠지고 주위 모든것이 무서울만큼 어둡고 불행했다. 하지만 마법이 풀리는 순간 모든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야수는 왕자로 돌아오고 주위는 밝아졌으며 얼어붙었던것들이 전부 살아났고 모두들 행복해졌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언제나 그러하듯 탄성을 자아내는 클라이막스 다음에는 어김없이 앤딩이 찾아왔다. 두시간동안 마법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는데 그 기다림이 무색할만큼 절정은 짧았다. 마법이 풀리자마자 끝나버리는 영화가 아쉬웠을가. 많은 관객들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것까지 묵묵히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어쩌면 내 인생도 영화속 왕자처럼 마법에 빠진것은 아닐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왕자가 야수로 변하면서 가진것 전부를 잃은것처럼, 일년전 나는 가장 소중한것을 통채로 잃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대답할수 있는 사람이 많을가? 그 일이 있기전까지 나는 이 질문에 즉시 대답을 내놓을수가 없었다. 행복한 순간들이 소소하지만 참 많았던것 같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바로 생각나지 않을만큼 말이다. 하지만 살면서 가장 불행한 순간을 경험한 날 나는 비로소 알게 됐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수 있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인생은 항상 이렇듯 아이로니하다. 그날 나는 생의 많은 일들은 결국은 한순간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기가 나를 찾아온것은 마법 같은 일이였다. 아기는 세상을 다 얻은듯한 행복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영원할것 같고 당연하게 생각되던 행복은 다섯달만에 어이없이 끝나버렸다. 내가 너무 거만했던것일가. 다섯달을 내 몸안에서 함께 했던 아기가 어느날 갑자기 떠났다. 그 순간의 아픔은 글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저 죽음과도 같은 암담함 뿐이였다. 삶의 전부라 여겨 아등바등 붙잡고있던 많은것들이 의미를 잃었고 나의 세상은 죽음 그 자체였다.

아기를 보내던 날, 나는 참을수없이 극심한 복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오히려 고마왔다. 육체적아픔에 몸부림칠 때는 비록 잠간씩이긴 하지만 심장을 에이는듯한 마음속 고통을 잊을수 있었기때문이다. 규칙적으로 몰려오는 아픔 사이에 필사적으로 붙잡고있었던 책에는 나의 운명을 예견한것처럼 이런 구절이 있었다. “행복이 식탁에서 너와 함께 하고있을 때 불행은 네 침대에서 너를 기다리고있다.” 그 구절은 마치 신전에서 들려주는 신탁처럼 나를 전률시켰다. 나한테 불행이 닥칠줄 미리 알았더라면 불행을 막을수 있었을가? 알수 없는노릇이다. 안타깝고 원망스러웠다. 그날의 많은 일들은 그렇게 터무니없이 흘러갔고 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살붙이를 나의 육신에서 떼여내여 다시 볼수 없는 곳으로 보내야 했다.

우리는 왜 이런 아픈 경험을 해야 하는것일가? 마법사는 왜 왕자를 야수로 만들어버렸을가? 왕자를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려고? 진정한 사랑이 뭔지 알게 하려고? 누군가는 말한다. 아픔을 딛고 일어나면 더 단단해지고 성장한다고. 하지만 그런 리유라면 아프고싶지 않다. 세상의 그 어떤 신일지라도 나를 성장시키려는 의도로 나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는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영원히 백치에 머물지언정 이런 식의 시험은 천번만번 사양하련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심지어 강의중에도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말하는 자체가 나에게는 슬픔이였다. 그런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듯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조금씩 견딜수 있게 됐다. 사는게 만족스러웠을 때 나는 오만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한 사람들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불행한 사람들을 멀리 했다. 정작 불행을 당하고보니 불행한 사람들이 힘이 됐다. 내가 원하는것을 이미 이루고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을 얻고 상처를 치유 받은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아픈것이 아니라 남들도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산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고 서서히 아픔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렇다고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나를 짓누르는 고통에서 해방된것은 아니였다.

남들은 아기를 낳으려고 입원한 병실에 나는 아기를 보내려고 입원했다. 나도 출산의 고통을 겪었는데 다른 산모옆에는 아기가 있고 내옆에만 아기가 없었다. 왜 남들은 저렇게 쉽게 얻는것을 나한테만 안 주냐고, 나는 보이지 않는 신을 원망했다. 그때 한 산모가 나한테 다가왔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던 둘째를 수술도 못 시켜보고 3살에 잃고 그 고통에 정신줄을 놓고있던 그 이듬해에 열여섯살이던 첫째를 교통사고로 잃었으며 제대로 사랑해주지도 못하고 보냈다는 자책감에 몸부림치다 결국 배속에서 거의 키운 셋째를 잃게 된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그녀는 나한테 털어놓았다. 일면식도 없는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수술로 아기를 낳은 몸이라 많이 불편할텐데도 굳이 나한테 다가와서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해준 그녀는 괜찮다고 다 좋아질거라고 나를 위안했다. 3년 사이에 세 아이를 잃고 수도없이 죽고싶었지만 그래도 살아내야 하기에 마흔셋에 힘들게 아이를 가져 넷째를 낳았고 그 아이가 바로 나로 하여금 신을 원망케 했던 그 아기였다. 그녀의 상처를 들으면서 나는 숙연해졌고 그녀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면서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다 울고나니 전보다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내 아픔이 그녀에 비해 작은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그것이 한번이든 세번이든 똑같을것이다. 그러고보면 다들 털어놓지 않아서이지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는것 같다.

사람들은 그 많은 불행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가? 불쑥불쑥 목이 메여오고 울컥울컥 눈물이 날 때, 그것은 아이가 나를 그리워하는거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렸다. 더는 웃을 일도 없고 살 리유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 그래도 가끔은 웃으면서 살고있다. 새로운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곧 마법이 풀려 해피앤딩이 올것임을 관객들은 알고있었다. 때문에 지루할법한 기다림도 쉽게 견뎌내지 않았을가. 마법으로 자신이 누리던 모든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린 왕자도 마법이 곧 풀려 다시금 왕자로 돌아갈것임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야수의 생활을 좀더 긍정적으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녀자들은 가끔 죽고싶을만큼 힘든 생리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것때문에 죽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루, 이틀만 버티면 끝나버릴것을 알고있기때이다. 우리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것이 아니라 곧 끝날것임을 안다면 우리도 좀더 담담하게 견뎌낼수 있을것이다. 살면서 힘들 때 그것을 마법에 걸렸기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가. 마법은 언젠가 풀릴것이고 마법이 풀리면 모든것이 제자리로 돌아갈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왕자를 야수나 개구리로 바꿔버려 일생을 송두리채 흔들어놓는 마법, 즉 강력한 타자에 의한 폭력적인 마법이 존재한다. 흔히 진정한 사랑이 마법을 푸는 열쇠다. “미녀와 야수”의 야수도 아름다운데다가 똑똑하기까지 한 소녀 “벨”을 만나면서 진정한 사랑에 눈 뜨게 되고 결국 마법이 풀린다. 하지만 절대자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마법보다 훨씬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꾸준하게 우리 인생을 지배하는 마법은 바로 우리 스스로가 자신한테 걸어놓은 마법이다. 례컨대 자신을 가두는 아집, 스스로를 불태우는 욕망, 욕심등이 우리를 마법과 같은 굴레안에 빠뜨린다.

그렇다면 인생의 마법을 풀고 모든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열쇠는 무엇일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가장 슬픈 순간으로 변해버린 내 인생의 가장 큰 고통에 대한 깨달음은 마치도 마법처럼 어느날 문득 홀연히 나타났다. 우리는 불행한 순간이 언제 닥칠지 예측할수도 없고 못 오게 대항할수도 없다. 우리의 힘으로 할수 있는건 오로지 행복한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극대화해서 언제 올지 모르는 불행에 대비하는것, 마치 핸드폰 밧데리를 충전하듯, 은행에 예금을 하듯, 차곡차곡 쌓은 행복했던 순간들의 기억으로 불행한 순간을 이겨내고 버텨내고 살아내는것뿐이다. 행복한 순간들을 반복해서 느끼고 학습해서 행복이 습관이 되고 몸에 배게 해야 한다.

그러고보면 나는 아주 오래동안 자신이 믿었고 꿈 꿨고 욕심냈던것속에 갖혀있었다. 그것들을 마음에서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나를 묶었던 마법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을수 있었다. 신혼때 나는 “여자니까 무조건 양보받고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내 생각이 맞다고 믿었기때문에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싸우기도 했지만 그런 마음을 전부 내려놓고나니 오히려 더 큰 사랑을 얻게 되였다.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서도 짚어주지 않으면 큰일 날것 같아서 나섰다가 싸움으로 번지군 했는데 이제 상대의 실수마저도 그 사람의 삶이라고 느긋하게 바라볼수 있어 나도 편하고 상대방도 편해졌다. 싸우는것도 습관이고 안 싸우는것도 습관인것 같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기때문에 오히려 많은것을 돌려받을수 있었다. 잃고나서 모든것을 가졌다고나 할가, 나는 나 자신을 버리고 나 자신을 다시 찾은 셈이다.

슬픔이 행복보다 훨씬 더 인간의 성숙도를 높여준다고 한다. 사람들은 큰일을 겪고 내가 성숙해졌다고 말들하지만 그건 너무나 리상적인 표현이다. 나는 세상이 한결 무서워졌을뿐이다. 가장 소중한것을 순식간에 잃을수있다는 사실이 무섭고 그러고도 우리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다. 그래서 삶이 조심스러워졌다.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노력만 하면 모든것을 가질수 있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을 버렸다. 한편, 앞으로 어떤 슬픈 일이 생겨도 자식을 잃은 슬픔에는 비할수 없다는 생각에 세상이 만만하게 보이는 점 또한 없지 않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아픈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면서 아픈 감정을 순화시킨다. 아기는 살아야 했던 시간보다 짧았던 생명의 시간에 내가 아는 모든것보다 한없이 우월한 빛을 주고 갔다고, 아픔을 알게 했고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게 했다고 말한다. 그래도 힘들 때 나는 고통을 견디고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이라 믿으면서 슬픔을 덜어내려고 애쓴다. 고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아픔을 이겨내야 하고 살아내야 하기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으면서 견딘다.

자신에 의한 마법이든 타인에 의한 마법이든 그것을 풀 열쇠는 꼭 있기 마련이다. 마법이 풀리면 모든 고통과 아픔이 순간에 사라질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은 즐겁게 노래하고 춤 추고 하나같이 반짝반짝 빛날것이다. 하지만 마치 영화가 그랬듯 우리 인생도 그쯤에서 아쉽게 끝나버릴수도 있다. 그러고보면 인생은 허무한것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마치 영화의 아름다운 순간처럼 최선을 다해 자기 배역을 살아내야함은 “생명”이 삶과 죽음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듯 시작도 끝도 모두 인생의 한 부분이기때문이라고 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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