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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십자로에서 비춰본 거울
□ 평 강
날짜  2017-5-18 15:49:37   조회  252

동남아로 려행을 갔다. 려행은 자기의 익숙한 마당을 벗어나 다른 낯선 마당에 들어가는 시간이며 자기집 마당을 담너머로 들여다볼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낯선 자리에서 낯선 눈빛으로 “나”의 익숙함을 돌아보는것, 그것이 려행의 묘미이다.

동시에 귀로만 듣던것을 확인하는것 또한 려행의 재미가 된다. 머리속에 알고 그렸던 익숙함을 눈으로 “낯설게” 익히는것이다. 이번 려행은 이러한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각들을 만난게 수확중 하나라고 하겠다.

말라카해협(马六甲, Malacca)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국제해상수로이며 중국, 일본, 한국 등 지역의 "해상생명선"으로 불릴만큼 중요한 교통중추이다. 싱가포르에서 항공편을 환승하면서 하늘에서 내려다 본 말라카해협의 제일 좁은 구역은 생각보다 굉장히 좁았다. 이 좁은 수로로 해마다 5만척 이상의 배들이 통과하고 여기를 통해 운송되는 석유중 85% 이상이 중국을 향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동서양의 십자로”라는 표현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였다.

싱가포르는 말라카해협 중에서도 멱살에 해당하는 요충지이다. 이런 지리적 위치에 있으면 도시가 발전하지 않을래야 발전하지 않을수가 없을것이다. 물론 정치적 지원도 뒤받침 되여야 한다. “동북아의 금삼각지”로 불리는 훈춘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정학적 력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금 떠올랐다.

목적지인 인도네시아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였다. 생판 모르는 낯선 곳이라 걱정돼 오기전 미리 셰청(携程)사이트에서 현지 중국어 운전수의 공항픽업 서비스를 예약했었다. 그래서 만난 이가 황씨성을 가진 인도네시아 화인(华人)이였다.

호텔로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았다. 그는 남양에 이민한 중국인의 제4세대 후예였다. 증조부는 귀주 사람이었는데 일찍 인도네시아 수마트라(苏门答腊) 섬에 이주해 정착했으며 중의사였다고 한다. 아들이 넷 있었는데 누구도 중의를 가업으로 잇기를 원하지 않아서 맥이 끊겼으며 모두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다고 했다.

황씨도 한어를 몰랐다. 하지만 중국인 유람객들이 많아지면서 최근 한달사이에 다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제야 위챗으로 교류할 때 음성으로만 교류했던 리유를 알수 있었다. 그의 어휘량은 제한돼 있었지만 빠르게 중국어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중에 있었다.

조선족 교육이 계속 문제시 되고있다. 특히 관내로 진출한 후 그곳에서 태여난 조선족 아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배우기가 굉장히 어려운 여건속에서 대부분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그게 현실이다.

나는 중국으로 이주해 온 조선족 4세대이다. 동시에 조선족 관내 진출 1세대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소수자로, 경계인으로 살면서 집거지인 고향에서도 비집거지인 관내 대도시에서도 정체성과 교육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져왔다.

현 시점과 시각으로 바라보면 위기론이 대두되는것이 정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좀 더 긴 시간과 흐름을 본다면 이것 또한 한 단면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것은 아닐가.

나의 대학교 동문중에는 대도시에서 태여나 우리 말과 글을 모르고 자란 조선족들도 적지 않다. 그중 일부는 재학시절에도 그런 상태로 있다가 한국에 류학을 다녀오면서 오히려 우리보다 더 표준적인 “한국어”를 구사하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는 문화 혹은 민족이라는 그 끈의 끈질김을 과소평가하고 있는것은 아닐가. 동아시아에서 조선반도의 존재는 몇천년동안 소위 중화문명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곁에서 독립성을 잃지 않고 존속되어 온 몇 안되는 사례이다. 그만큼 이 문화의 저력이 실제로 살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요즘에도 그것은 반도문제라는 국제정치적 이슈와 한류라는 소프트파워로 계속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정체성이 소실되였나 싶던 조선족들도 알게 모르게 그 끈을 다시 부여잡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것이다.

중국 유람객 “덕”에 자신의 뿌리를 다시 더듬게 된 인도네시아 화인 운전수 황씨, 그에게서 엿보이는 낯설게 익숙한 우리 모습의 조각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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