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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 강하고 희생정신이 있는 남편”림각민
날짜  2018-4-16 7:17:02   조회  43

[복주=신화통신] 만약 정치가 투명한 태평시대에 태여났다면 그는 다정다감한 남편이였을것이다. 하지만 '이르는 곳마다 비린내로 뒤덮이고 거리마다 세빠드들이 욱실'거리는 봉건왕조 말기에 태여난 그는 천하의 백성을 위해 서슴없이 목숨바쳐 싸운 “의지가 강하고 희생정신이 있는 남편”이 되였다. 그가 바로 24세 어린 나이에 참혹하게 살해되여 사랑하는 안해 그리고 아직 태여나지 않은 아이와 무심하게 작별하고 타향에 파묻힌 “황화강 72렬사”중 한사람인 림각민이다.

림각민의 반신조각상은 그의 고향집안에 있다.

 

복주신해혁명기념관 관장이였던 리후위는 림각만의 일생은 짧았지만 빛나는 일생이였다며 헝가리의 시인 페퇴피의 "생명도 귀중하지만 사랑은 그보다 더 소중하다. 허나 자유를 위해서라면 둘 다 포기할수 있다"는 명언이 바로 생동한 해석으로 된다고 말했다.

림각민은 1887년 복건성 민현(오늘의 복주시구역)에서 태여났다. 림각민은 성장시기에 민주혁명 사상을 접했고 자유와 평등 사상이 그의 어린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1900년 과거시험에서 림각민은 아주 패기있게 시험지에 "소년불망만호후"(소년은 만호후를 바라지 않는다)란 일곱글자를 써넣고 자기는 공명을 함부로 하지 않음을 표시하고 시험장을 대범하게 떠났다

1905년 림각민이 나이가 들자 그의 아버지는 혼사를 정해주었는데 상대는 재능과 지혜가 많은 진의영이였다. 두 사람은 마음과 뜻이 서로 잘 통했다.

1907년 림각민은 일본류학의 길에 올랐다. 2년간 신혼생활며 처음 안해곁을 떠났다. 일본에서 림각민은 아주 빨리 서로 뜻과 지향이 같은 친구들을 만났고 함께 동맹회에 가입하였고 또 황흥을 비롯한 혁명자들과 인연을 맺게 되였으며 심각한 영향을 받고 혁명사업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바칠 각오를 이미 하였다.

1911년의 어느날, 림각민은 갑자기 집으로 돌아와 동맹회 여러 련락인들과 련계하고 은밀하게 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들은 비밀리에 대량의 폭발약을 만들어 향항으로 옮겼고 림각민도 혁명당원들과 함께 복주에서 배를 타고 향항에 가서 봉기 시각을 기다렸다.

때는 1911년 4월 9일, 그의 안해 진의영은 이미 임신 8개월이였다.

봉기의 책임자 황흥이 광주에 도착하였을 때는 모든 준비를 다 마친 후였는데 혁명당내에 반역자가 생겼다. 봉기는 아주 빨리 실패하였고 많은 혁명당원들이 체포되였다.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봉기를 앞당겨 일으키기로 하였다. 봉기전의 동원대회에서 림각민은 연설을 발표해 격앙된 어조로 "만약 이번 봉기가 실패하면 사망자가 틀림없이 많을것이나 분명히 동포들을 감동시킬것이다"고 말하였다.

그날 밤, 림각민은 멀리 복주에 있는 가족을 생각했고 자기의 안해와 아버지가 걱정되여 두통의 결별편지를 썼다.

4월 27일, 혁명당원들은 허술한 무기를 들고 광주 총독서를 공격하였지만 이때 량광총독인 장명기가 언녕 대피한뒤라 실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급히 철수하는 때 청조 순시군과 마주쳐 쌍방은 격렬한 시가전을 펼쳤고 전투에서 림각민은 부상을 입고 체포되였다.

며칠후 림각민은 사형장에 끌려나갔다. 그는 태연자약하고도 떳떳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24세의 림각민은 기타 71명 동지들과 함께 광주 황화강 언덕에 파묻혔다. 그들은 황화강 72렬사로 불리운다.

올해는 림각민이 순국한지 107년이 되는 해이다. 그의 고향인 복주는 청조말기 제국주의 "렬강"들을 직시하던 통상구연선으로부터 자유 무역구, 국가급 신구, 국가 생태문명시험구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핵심구 그리고 국가 자주혁신 시범구 등 여러 구가 겹친 국가정책집중지로 부상해 천재일우의 발전기회를 맞이했으며 전례없는 활력을 보이고있다.

"우리 나라가 갈수록 강대해지는것을 림각민이 황천에서 안다면 반드시 시름놓을것이다." 림각민을 추모하러 온 흑룡강 방문객 왕청천은 "돌아간후 나는 림각민의 정신과 이야기를 애들에게 들려주어 이 긍정에너지가 세세대대로 전해지게 할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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