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라이프

렌즈속에 빛나는 반세기

  • 2009-11-27 06:48:05
사진예술은 예술의 력사에서 가장 년소한 예술이라 할수 있다. 은반사진술의 탄생이 불과 200년밖에 안되는 력사속에 연변촬영가협회도 어언간 50돐을 맞게 되였다. 그 반세기의 경이로운 력사속에 연변촬영도 기타 쟌르들과 나란히 휘황찬란한 족적을 남겼다.

1948년에 《동북한보》에 기자 두남이 찍은 시리즈사진 7폭이 실렸다. 이것이 바로 광복후 처음으로 연변에서 발표된 사진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 사진은 신문보도로서의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문자보도의 밑거름으로 되였다.

1959년 3월 13일, 연변사진계는 잉태기를 마치고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의 제의와 중공연변주위 및 중국촬영가학회의 비준을 거쳐 중국촬영가학회 연변분회를 건립하였다. 중국촬영학회 연변분회 정식설립은 연변사진의 새로운 기원을 열어놓았다.

이 시기에 중국촬영학회 연변분회는 세차례의 연변사진예술전시회를 가졌으며 연변에서 처음으로 되는 사진집도 출판하였다.

1948년부터 1966년 그 시기 연변작가들의 사진작품들을 보면 흑백사진이 위주이고 사진기의 기계적인 재현수단에 의한 피사체의 재현에 충실했다고 볼수 있다.

1966년부터 연변사진은 문화대혁명의 영향하에 암흑기를 맞으며 개념화, 도식화의 틀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다가 1979년 일련의 새로운 문예정책의 제기로 연변사진도 비로소 해빙기를 맞고 자신의 현주소를 찾고자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탐색에로 렌즈를 돌리기 시작했다.

1978년 10월, 10년동란의 깊은 잠에 빠졌던 중국사진학회 연변분회의 회복과 함께 1980년 전창식의 사진작품 “춤”이 화란국제사진전시회에 입선되는 등 연변의 사진인들은 처음으로 연변을 벗어나 국내, 국제적인 사진문화장의 좌석에 앉았다.

1982년, 시장경제도입과 더불어 중공연변주위, 주정부의 방침, 정책에 보조를 맞추어 사진문화는 흥행기의 첫문을 열었다. 1982년, 자치주 설립 30돐 행사 연변촬영가협회 사진작품전이 북경 북해공원에서 열렸고 자치주 설립 30돐 대형화집 “연변”이 세상에 태여났다. 촬영가 41명이 동원된 이 책은 연변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위생, 체육 등 여러 면의 성과를 진시각으로 재현한 력사적인 도서이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는 연변사진문화의 변혁 및 흥행기였다. 사진기재의 변화발전과 부동한 미리의 렌즈의 출현은 사진가들이 사진기와 렌즈의 기능을 살려 확대촬영에 의한 세부묘사, 원근감의 대비가 과장된 시각적자극, 새로운 시각에 대한 시도 등으로 이미지표현의 형상탐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1987년부터 2004년까지 연변사진은 제12차로부터 19차로 되는 연변촬영대전을 이어왔으며 대전에 참가한 작품들은 연변사진의 변화와 새로움 및 시대적인 맥박을 보여주며 연변사진문화로 자리매김을 했다.

2003년 9월, 연변촬영가협회는 “민족문화정신을 진흥시키고 조화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우리 당의 방침에 따라 사진문화의 새로운 사상의 창출과 항목의 탐구와 전개를 목적으로 하며 연변사진의 건전한 발전과 번영을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였다. 그속에 수많은 우수한 작품들이 용솟음쳐나와 국내,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사진전에 입선되였으며 성공적으로 “진달래문화관광절”, “연변국제사진문화주간”, “세말북극대세배”, “중국북방관광교역회 국제관광풍경 사진대전” 등 대형사진문화활동을 주최하여 연변민속박람회, 동북아박람회, 극동관광교역회, 자치주정부 현, 시 투자지남 등 경제활동에 대량의 우수한 사진작품을 제공함으로써 연변의 경제, 문화 사업에 일조했다. 2008년 7월 연변촬영가협회는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로부터 “중국북방관광교역회 선진집단”상을 발급받았다.

2009년 8월, 연변촬영가협회는 공화국 창건 60돐과 연변촬영가협회 설립 50돐을 기념하여 제3차 중국연변국제사진문화주간과 중국두만강국제사진문화관광절을 대행하였다. 36명의 국내외 사진가의 개인사진전과 연변 8개 현시의 사진예술전시회, 개혁개방 30돐 사진전시회 등 도합 2000여폭의 작품이 이날 선보였는데 참가인원, 참가작품수는 연변사진력사의 기록을 또 한차례 갱신하였다. 연변국제사진문화주간활동기간에 300여명의 사진가가 참가한 연변국제사진세미나가 백산호텔에서 열렸으며 행사의 일환으로 화룡 남평, 룡정 삼합, 도문해관, 훈춘사구공원 등지에서 3일간의 “중국두만강국제사진문화관광절”의 다채로운 민속문화 사진창작활동을 조직하였다. 그밖에도 연변촬영가협회는 연변박물관에서 중공연변주위와 연변문련에서 주최한 “공화국 창건 50돐 경축 미술, 촬영, 서법 사진전시회”를 대행, 100점의 사진작품을 전시하였다.

세계적으로 아날로그 수용성(水容性) 칼라사진 현상공예는 30년대 중반으로부터 걸음마를 탔지만 연변에서는 1979년에 와서야 서툰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1983년 새로운 칼라프린트 사진현상 자동설비가 연변땅에 들어옴에 따라 선진적인 사진술의 도입 특히는 포토샵프로그램과 디지털사진의 공예와 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은 연변사진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연변사진계에는 대중적인 전시보다는 사진의 부동한 풍격과 개성을 추구하는 사진가들의 개인전시회가 우후죽순마냥 진행되였다. 연변지구에서 이미 40여명의 연변사진가들이 부동한 내용과 부동한 형식의 사진전시회를 가졌다.

20세기 80년대말, 사진학과 대학졸업생들의 출현으로부터, 특히 1992년 중한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연변의 사진예술에 대한 탐구의 지름길이 열리면서부터 연변사진가들의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고 지역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풍경사진 창작에만 모를 박던 연변사진가들속에서 리광평, 차광범을 대표로 하는 다큐멘터리, 리종걸의 누드에 대한 시도, 그밖의 심학철 등의 간판사진 시리즈, 회색연길 시리즈, 김광영의 관념사진 “세상시리즈” 등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있다. 중한 량국의 문화교류가 날로 밀접해짐에 따라 우리의 사진가들은 지역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단단한 실력을 바탕으로 직접 한국, 로씨야, 일본 등 나라에서 사진전시를 할수 있었다. 이와 같이 사진가들의 국내외 진출은 개혁개방 30년간 연변사진의 발전에 자못 큰 기여를 했다.

2009년 6월, 중국 연변촬영가협회는 한국사진가협회 강릉지부협의회와 사진예술교류협의 조인식을 가졌다. 연변촬영가협회 설립 50돐과 강릉지부협의회 창립 30돐이 되는 오늘날 중한 량국의 사진예술교류협의는 중국 연변과 한국 강릉의 유서깊은 사진문화의 발전에 훌륭한 밑거름으로 된다.

21세기초, 아날로그사진술이 멀어지면서 인터넷혁명과 디지털사진술의 성수기가 도래되였다. 이에 대학교 사진학과 설립을 재촉하였다. 연변도 례외가 아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은 대학 사진학과 개설 난류를 타고 2000년 9월 미술계에 사진전업학과를 설치했으며 이미 5기의 본과졸업생들을 사회에 배출하였다. 연변대학 예술학원 사진학과는 앞으로 연변사진계 및 조선족사회에 유능한 촬영전문인재를 양성하는데 든든한 디딤돌이 될것임에 틀림없으며 연변사진계에 끊임없는 생기와 청춘을 주입하는 거대한 풍력으로 기대되고있다.

현재 사진은 결코 몇 사람의 사진가들의 특허가 아닌바 디지털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사진으로 하여금 대중문화 일부분으로 되게 하였다. 이와같은 시대적흐름에 발맞춰 연변촬영가협회는 2009년초에 포토샵프로그램강습반을 조직하는 등 후기 사진영상 제작과 응용의 기초적인 기술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또한 2009년 7월부터 연변촬영가협회는 김광영을 통하여 “매달 하루”라는 사진강의를 조직하는 등 연변의 대중사진문화교육의 장을 열고있다.

연변촬영가협회가 걸어온 반세기는 그 걸음마다 연변사진의 성장사를 담고있다. 새로운 시기에 발맞춰 부단히 자기탈피하는 연변촬영가협회는 오늘도 아름다운 세상을 작은 렌즈속에 담아내기에 바쁘다.

리련화 김인선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