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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세와 “차이뽀(踩包)”

김인선

  • 2013-10-16 13:53:48
사람들이 한덩어리로 마구 엉켜서 서로 밀고 밀리는 일은 필경 고된 중로동이 아닐수 없다. 수분하-그라제까와행 국제렬차에 오르고나니 온몸이 땀자루가 되였다.

이 국제렬차는 우리 나라의 일반렬차와 별반 다를바 없었는데 바곤은 다섯개였다. 마지막 사람으로 렬차에 오른 우리는 다섯번째 바곤에 앉았다. 차바곤은 크고작은 보따리에 사람까지 꽉 차서 미여질것만 같았다.

몇십분이면 가닿을수 있는 목적지이건만 고장난 시계처럼 가다가는 서고 섰다가는 가기를 반복하면서 두시간이 걸려서야 목적지인 그라제까와에 당도했고 첫번째 바곤부터 차례로 내리면서 로씨야측의 세관검사를 받다보니 다섯번째 바곤에 앉은 우리는 기차에 올라서 세시간만에야 로씨야의 땅을 밟을수 있었다.

로씨야, 얼마나 오고싶던 나라이고 얼마나 밟고싶던 땅이였던가! 뿌쉬낀, 똘스또이, 숄로호브, 챠이꼽스끼그리고 우리와 인연깊은 슬라브민족.

나는 도도한 시흥에 잠겨 완전히 무아경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그 흥도 잠시뿐, 로씨야측 세관출구에서 입경검사를 마치고 세관청사에 들어서면서부터 련속 들이닥치는 일때문에 그렇게 좋던 나의 기분은 삽시에 일락천장이 되고말았다.

보따리를 검사는 세관일군은 모두 다섯명이였다. 로씨야세관일군들은 자기의 기분에 따라 세관세를 마구 올리거나 낮춘다고 했다. 나는 될수록 기분이 좋아보이고 인자해보이는 세관일군을 찾으려고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늙수르레한 세관일군이 자기한테 오라고 나에게 손짓했다. 인젠 내가 세관일군을 고를 때가 아니였다. 나는 되도록 좋은 인상을 보이려고 얼굴에 웃음을 담고 그 세관일군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물건이요?

중국말을 어지간히 하는 모양이였으나 유럽이나 미국사람들이 중국말을 하는것처럼 억양이 매우 둔탁하였다.

“녀인들이 입는 치마입니다.

“몇견지나 되오?

“저, 백견지쯤 될겁니다.

나는 치마를 백견지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만약 그의 의심을 사서 그가 정말 보따리를 밑바닥까지 다 뒤지는 날에는 털실세타를 감춘것이 들통난다. 그러면 이 로씨야도깨비가 무슨짓을 할지 누가 알랴.

“열어보시오.

그가 손으로 보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묶었던 끈을 칼로 끊은후 큰가방의 쪼로로기를 두뽐 남짓이 당겼다. 보따리에 누런 털이 숭숭난 손을 쑥 밀어넣고 대충 안을 뒤적이던 그 세관일군이 “빠스뽈트”하면서 려권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나의 려권을 받아쥔 그는 어느 소설책을 찢은것인지 깨알같은 로어활자가 박인 종이쪼박 두장에다 무엇인가 끄적이더니 한장은 나에게 주고 다른 한장은 려권에 끼워넣고 검사대뒤로 가는것이였다.

“쥬완(9만루블이요).

세관세를 내라는 말이였다.

“무엇이라구요? 9만루블이라구요?

천루블에 인민페 8, 얼핏 환산해도 720원이였다.

“너무 비쌉니다. 이 치마가 3천원어치밖에 안되는데 세관세가 그 4분의 1이나 되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나는 내뒤에서 사람들이 검사를 기다리건말건 버티고 서서 한어로 세관세를 낮추어달라고 사정했다.

노란 눈알을 둬번 구을리던 세관일군은 “뺘찌!”라고 하면서 손가락 다섯개를 쫙 펴보였다.

배선생이 나한테 다가와 물었다.

“세관세가 얼마입데?

9만루블이라는걸 억지를 써서 5만루블로 만들었습니다.

“잘했소. 인차 밖에 나가서 인민페를 루블로 바꾸어서 그 세관일군에게 주고 려권을 빼내야 하오. 래일이면 그 사람이 김동무을 알아보지 못하기에 정말 9만루블을 낼수도 있으니까 말이오.

나는 끝내 9만루블을 내고야말았다. 그날 인차 루블을 바꾸어서 5만루블을 물면 려권을 빼내올수 있었는데 우리가 로씨야에 도착한 그날부터 로씨야정부에서 1993년이전에 발행한 레닌의 초상이 박혀있는 루블을 페지했기 때문에 그날 서뿔리 바꾸지 못하고 이틑날에야 인민페를 루블로 바꾸어서 세관세를 물었던것이다. 우리 일곱사람가운데서 모두들 세관세가 3 ~ 6만원이였는데 나만 9만루블을 냈다.

그라제까와세관을 빠져나오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우리는 나오려 하고 또 한무리의 중국사람들은 들어오려고 하다보니 그 작은 복도가 미여질 지경이였다. 언제나 남을 밀줄 모르며 살아온 나로서는 처음 보는 생소한 광경이였다.

로씨야밀리쯔(경찰)들이 들어오려고 밀쳐대는 사람들을 곤봉으로 마구 때리고있었다. 그러나 그 한무리의 중국사람들은 작은 가방따위로 머리를 겨냥해 날아오는 곤봉을 요리조리 막으며 계속 밀고들어오고있었다.

겨우 세관역을 빠져나오니 자그마한 광장이였다. 광장에 바자처럼 빙 둘러선 사람들 틈에서 박씨의 너부죽한 얼굴이 눈에 띄였다.

“선생님들이 끝내 건너왔구만요. 려권에 쇠도장을 맞지않아 건너오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박씨와 우리는 수분하에서 면목을 익힌 사이였다. 그는 우리들 대부분이 지식인인걸 보고 우리에게 로씨야장사에 관해 이것저것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였다. 산이 크면 그림자도 크다더니 우둑지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그는 퍼그나 믿음이 가는 사나이였다.

“역전대합실에서 자고 래일 세관세를 물고는 직접 이르쿠쯔크로 가는게 어떻겠소?

누군가 제의했다.

“먼저 그라제까와에서 며칠 묵으면서 장사형편을 알아본후 떠나기오.

배선생이 잘라 말했다. 결국 의논은 그라제까와에서 며칠 있자는것으로 아퀴를 지었다.

“자, 그럼 여기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자리를 뜹시다. 제가 가서 택시를 불러오지요.

박씨가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를 거들어준후 탟를 부르러 갔다.

보따리를 놓고 끌수있도록 접었다 펼수있게 만든 작은 손수레를 가지고 간 나는 세관역전앞 아스팔트길에서 한결 수월했다.

우리가 구름다리를 향해 가는데 웬 청년 셋이 우리의 뒤를 따라오고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무심하게 여겼다.

“이 보따리에 무슨 물건이 들어있소?

8월의 찌는듯한 날씨에도 채양 짧은 중절모를 눌러쓴 키가 작은 청년이 한어로 물어왔다.

“치마와 털실세타요.

강상필이 대답했다.

우리는 큰길옆에 있는 나무그늘밑에서 박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중절모가 강상필에게 딱 달라붙으며 계속 물어왔다.

“헌데 그 옆구리에 찬건 무엇이오?

이번에는 도전적인 말투였다. 여차하면 싸움이 일어날것 같은 불길한 징조였다.

“손칼이지 뭐겠소.

“그걸 가지고 다녀선 무얼하오?

“장사하는데 두루 쓸 일이 있을것 같아 지참했소.

“쓸 일이 많다구? 싸움질 할 때 쓰겠구만.

우리는 일이 완전히 글렀음을 느꼈다. 광장의 오른손편에 경사진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에 들쭉날쭉하게 옷차림을 한 예닐곱사람이 앉았거나 서있는것이 보였다. 그들은 먹이를 본 매의 눈으로 우리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로씨야 땅을 밟자마자 이런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은 봉변을 당하다니. 너무나 억이 막혔다.

중절모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뱉었다.

“이 보따리 그리고 저 보따리 그 옆의 보따리까지 나기고 가오.

우리는 한동안 입을 딱 벌린채 아무 말도 못했다. 이 보따리 세개를 합치면 인민페로 만원돈이 넘는다. 배원장이 서투른 한어로 사정했다. “우리는 다 지식인들인데 처음으로 로씨야에 오다보니 아무것도 모르오. 구경삼아 온것인데 좀 사정을 봐주오.

“뿌시잉!

중절모가 딱 잘라 말했다.

“여보, 아재, 가서 좀 경찰을 불러주오.

배원장이 길 저쪽으로 지나가는 조선족인듯한 녀성들을 보고 소리쳤다.

물에 빠진 사람이 찌푸라기라도 잡는다고 나는 우리 모두가 그 녀성들에게 막연한 기대나마 걸고있음을 느꼈다.

“메이융!(소용없소)

이 청년들은 조선말을 완전히 알아듣고있다. 이 청년들은 조선족들이다.

순간 눈시울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듯 했다. 나는 뼈마디마다에 다져온 민족심이 여지없이 긁히워나감을 느꼈다. 동족끼리 어쩌면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이역땅에서 말이다. 의협심이 없고 가볍고 눈앞의 작은 먹이를 탐내 동족끼리 깔아뭉개는 조선족! 나는 우리 민족이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해올 때 우리의 할아버지네들도 작은 땅뙈기를 놓고 이렇게 동족끼리 서로 빼앗기를 하지 않았을가고 생각했다.

아무리 손이 발이 되게 사정해도 소용이 없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들은 무리가 많으며 칼은 물론 총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우리 일곱사람에게 마구 달려드는 그들이니 억울하게 보따리를 빼앗긴 사람들은 얼마이랴.

박씨가 택시를 불러가지고 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 그 자리로 되짚어가서 그라제까와에서 세력이 제일 큰 조선족 한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는 그 무더운 날에도 우리 나라 군인들의 솜외투를 어깨에 걸치고있었다. 군용솜외투가 중절모에게 이 사람들은 자기의 친척과 같이 왔으니 놓아주라고 했다.

중절모는 안된다고 딱 잡아뗐다. 군용솜외투가 중절모를 한옆에 끌고 가서 조용히 무엇인가 말을 하는것 같더니 그제야 놓아주겠다고 했다. 군용솜외투가 우리를 보고 “차이뽀”들은 덮쳤던 먹이를 빈손으로 놓아주는 법이 없으니 담배나 두어보루 사주라고 했다.

배원장이 달려가서 200원을 주고 “555”표담배 두보루를 사가지고 와서 중절모에게 건네주었다. 쉰을 훨씬 넘긴 분이 자식또래의 새파란 청년에게 공손하게 담배를 바치는, 코미디연극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 연출되고있었다. “차이뽀”들은 그닥 달갑지 않은듯 씩씩거리며 자리를 뜨는것이였다. 우리는 박씨가 데리고 온 군용솜외투에게 거듭거듭 감사를 드렸다.

박씨는 우리를 데리고 구름다리를 건넌후 우리가 세집을 잡는것까지 따라와 도와주었다. 세집이라야 로씨야의 농가였다.

“거기에서 택시를 기다릴 필요없이 곧장 걸어서 구름다리를 건너왔을걸 그랬습니다. 오늘부터 레닌의 초상화가 있는 루블을 페치해버렸기때문에 요즘 그런 일이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선생님들이 맞띄웠으니 말이지 다른 사람들은 <차이뽀>라는걸 모르고 지냅니다.

박씨는 그날 저녁 우리와 함께 워드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가 잡은 세집에서 자기까지 하였다. 그후 우리는 또 관건적인 시각에 박씨를 만났는데 그 이야기는 뒤의 글에서 쓰기로 한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침 나는 진짜 “차이뽀”를 보았다. 그날 어둑어둑한 새벽에 그라제까와바쟈르(장마당)로 나갔는데 밖은 아직도 먹물을 풀어놓은듯 캄캄하였다. 사람들은 손전지를 비춰가며 물건들을 고르고있었다.

이때 트럭 한대가 칙-하고 멈춰서더니 대문짝같은 보따리를 세개나 부리워놓는것이였다. 되거리장사군들이 벌떼처럼 욱하고 몰려들었다. 잘 팔리는 운동복이였다. 두사람이 보따리 하나를 가운데 놓고 흥정이 붙었는데 그들중 하나가 보따리를 딛고 올라서는것이였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웨쳤다.

“자, 내가 몽땅 사겠소.

이것이 바로 진짜 “차이뽀”였다. 그후로 물건의 원값은 돌려주고 웃돈을 벗겨가던것이 인젠 완전히 강탈로 변해버렸던것이다. 중국사람끼리 돈과 재물을 빼앗는 수단은 다양하다. 제일 로골적인것이 총이나 칼로 위협해 직접 빼앗는 것이고 그다음은 또 려권을 보자고 해놓고는 순진한 사람이 정말 꺼내놓으면 빼앗아가지고 며칠까지 돈 얼마를 가져와야 려권을 돌려준다는 식의 강도짓이다. 려권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갈수 없기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예정된 날까지 가져가야 하는것이다. 또 서로 사기를 치는 수단이 많기도 하다.

“차이뽀”는 “할빈차이뽀”, “해림차이뽀”, 연길차이뽀“, ”왕청차이뽀“ 이렇게 지방별로 이름을 지은 무리가 있다. 그들이 자기 고향에서 온 사람의 보따리는 빼앗지 않는다고 하나 나는 그들이 고향사람이든 타향사람이든 다 빼앗는것을 보았다. 같은 중국조선족의 물건이면 다 빼앗으니 고약하기 짝이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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