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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찍지 못한 려권사증도장

김인선

  • 2013-10-18 10:17:32
우쑤리쓰크에서 돌아온 나는 사증도장을 맞아야 할 필요성과 긴박감을 절실히 느꼈다.

우리가 로씨야에 온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그때까지 우리의 려권에 사증도장이 박히지 못한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로씨야에 건너와서 세번째날 배선생이 우리 일곱사람의 려권을 걷어가지고 그라제까와외사판공실로 갔었다. 그날이 그들의 공휴일이였고 그 이틑날에는 온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허탕을 치고말았던것이다.

려권에 사증도장을 맞지 않으면 장사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도장이 박히지 않으면 무조건 벌금이다. 그것도 오늘 잡히면 오늘 벌금, 래일 검문에 걸리면 래일 또 벌금이다. 악성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때라 단속이 더 심해졌던것이다.

나는 우리 셋의 려권을 가지고 그라제까와외사판공실로 갔다. 려권사증도장은 기중기로 들어다놓은 작은 철제상자같은 사무실에서 찍어주고있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우리를 골려주기라도 하는듯 하늘도 푹 흐린채 잔잔한 비를 내리고 있었다. 손가락만한 구멍도 없이 검은 구름이 꽉 덮인 하늘은 온종일 비를 내릴상 싶었다.

새벽 어둑어둑해서 나갔는데 벌써 20여명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맨 앞자리에 서있는 사람은 새벽 1시에 나왔다고 했다.

오늘 삼십명쯤은 도장을 맞을수 있겠지. 내가 스무한번째이니 오늘 일이 풀릴것 같군. 도장을 맞으면 저녁에 워드까나 푹 마시고 늘어지게 자야지.

꼬장꼬장했던 나의 마음이 어느덧 흐물흐물해지면서 저녁의 좋은 일을 생각하고있었다.

출입문에 사무시간을 적은 종이장이 붙어있었다.

오전 10시 — 12

오후 14시 — 16

비는 멈출줄 모르고 계속 내리고있었다. 앉지도 못하고 줄을 선채로 서있자니 상상력이 풍부한 나도 이 생각 저 생각 다 굴리고 밑굽이 나서 갑갑해 죽을 지경이였다.

책이라고 있으니 보겠는가 언제나 지참하고 다니던 반도체라지오도 주숙집에 두고 가지고 오지않았다.

할수 없이 알건 모르건 옆에 선 사람과 말을 건네면 그들은 완연히 경계하는 눈치이다. 그들은 모르는 사람과는 알은체하지 않고 따라서 속마음을 수월하게 터놓지 않는다. 그저 응부의 한마디로 대화가 끝난다.

10시가 다 되여서야 작달막한 키에 앙파처럼 몸이 옆으로 퍼진 사나이 하나가 여드레 팔십리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오더니 철제상자같은 작은 집의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이 사나이는 만족인데 한어와 조선어로 대화를 능란하게 했다.

첫사람이 철제박스같은 사무실안으로 들어갔다. 10분이 되여서야 들어갔던 사람이 나오는데 손에 려권이 가득 쥐여져있었다.

인형아기처럼 깜찍하게 생긴 로씨야처녀애가 쫑드르르 오더니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그 사내가 처녀애를 따라 외사판공실 본관청사대문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전화를 받는 모양, 20분이 좋이 걸려서야 나온 그 사나이는 찬비를 맞으며 떨고있는 중국사람들은 자기가 알바가 아니라는듯 느릿느릿 손동작도 아주 곱게 자물쇠를 열고 철제박스같은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는것이였다.

몇몇 사람이 철제사무실로 슬몃슬몃 모여갔다. 이윽고 얼모즈 하나가 철제박스뒤에서 걸어나오더니 물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선 줄은 30여분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나는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 알겠다. 그가 지금 고약한 짓을 하고있구나.

정상적인 수속은 3천루블이면 된다. 그런데 그 얼모즈가 만루블씩 받고서 뒤문으로 거래를 해주는것이다. 줄을 선 사람들은 그 얼모즈를 욕하였다. 그러나 욕한들 어쩌랴. 그가 양파사나이와 진작 짜고든 일이고 또 정작 시비가 붙어도 로어를 모르는 우리에게 도리가 있어도 항변할 재간이 없는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나는 철제사무실의 작은 창문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양파사나이는 글을 쓰는것이 아니라 수놓이를 하고있는듯 했다. 글씨를 어찌나 느리게 쓰는지 보는 내가 막 속이 재가 될것만 같았다. 거기다가 필을 내려놓고 머리를 두손으로 쓸어올리는 동작도 5분에 한번씩 하는것 같았다. 온 하루 비를 맞으며 밖에서 너털수밖에 없었다.

오후 4시가 되자 그 사나이는 어김없이 철제사무실 출입문에 자물쇠를 잠근후 가려고 했다.

나의 앞에 네사람이 있고 내 뒤에도 긴 행렬이 있다.

아주머니들이 사정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장사를 못한건 둘째치고 녀자들이 이렇게 찬비를 맞으며 온종일 서있기란 참 힘든 노릇인데 하느님앞에서 좋은 일을 한 셈치고 도장을 좀 찍어달라고 애걸하는 아주머니들의 말은 얼음으로 빚은 보살의 마음도 녹일수 있으련만 양파사나이의 철석간장은 녹일수 없는 모양이였다.

“퇴근시간이 되였소. 난 퇴근해야겠소.

그날 정문에 선 사람들을 그는 15명밖에 접대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얼모즈가 몇번이나 드나들었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한 사람에게서 7천루블씩 떨어진다고 하자. 10명이면 7만루블, 백명이면…

그 이틑날도 전날의 계속이였다.

중국을 외국사람들은 “만만디중국”이라 한다. 그렇다면 로씨야는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우리 일행에서 여러 사람이 려권에 사증도장이 찍히지 않아 벌금을 물었다.

사증도장을 맞지 못하면 바쟈르에서 늘 밀리쯔들의 눈을 피해다녀야 하기에 장사에 영향을 끼치는건 둘째치고 자칫하면 24시간내에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추방령으로 검은색 도장을 박아주는것이다.

로씨야장사에서 단맛을 본 사람들은 로씨야장사가 한국나들이보다 돈벌기가 낫다고 한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동족한테서 오는 위험부담과 루쓰키강도한테서 오는 위험 그리고 려권에 사증도장을 맞지 못해 늘 밀리쯔들의 눈을 피해다녀얗 하는 실정을 잘 모를것이다.

나는 끝내 려권에 사증도장을 맞지 못한채 로씨야 이곳저곳을 굴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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