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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씨비리쓰크에서 우쑤리쓰크까지

김인선

  • 2013-10-23 15:32:41

기자직업을 택한 덕분에 두루 여러곳을 돌아다니게 되였는데 그러다보니 나는 역전광장이 그 도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축도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였고 또 스스로 이 결론이 옳다고 인정해오고있는터였다.
제일 좋은 례로 연길역전광장만 보아도 이 작은 도시에 택시가 많다는 징표로 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쭉 깔려있지 않는가. 노보씨비리쓰크역전광장에는 각양각색의 람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로씨야에서 몇손가락안에 꼽히는 대도시인 노보씨비리쓰크가 이러하니 로씨야의 경공업이 얼마나 뒤졌는가를 첫눈에도 보아낼수 있는것이다. 좀 반반하게 입었다는 사람의 옷은 태반이 중국장사군들이 중국에서 날라온 옷들이다.
지구상에서 제일 추운 도시가 이르쿠츠크라고 한다. 이곳의 겨울기온은 일반적으로 섭씨 령하 60도이며 최저기온은 섭씨 령하 73도이다. 그러니 로씨야 씨비리일대가 너무 추워 로씨야인들이 술로 겨울에 언몸을 녹이는것일가 아니면 그들의 성격이 그들을 술 잘 마시는 인간으로 만든것일가.
이르쿠쯔크행렬차를 기다리며 노보씨비리쓰크역전광장에서 이런 작은 풍경 한폭을 보았다.
주정뱅이 하나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거리를 쓸며 가고있었고 그의 뒤에는 역시 그처럼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털리 까시시하고 밉게 생긴 개 한마리가 주인을 뒤따르고있었다. 우리와 멀지 않은 곳까지 왔을 때 그 개가 갑자기 뚝 멈춰섰다. 개의 배가 풀럭풀럭했다. 이윽고 개의 입으로부터 토사물이 쏟아져나왔다. 개는 술을 과음한 사람처럼 제법 토하더니 또다시 앞서가는 주인처럼 비틀걸음으로 따라가는것이였다. 술에 취한 주인의 토사물을 받아먹고 개도 취한 모양이였다.
“개마저 주정을 부리니 로씨야에 주정뱅이가 얼마인지 알만하지.”
우리는 배꼽이 튕겨나올 지경으로 웃었다.
9월 1일부터 외국인들은 일률로 딸라로 기차표를 사야 했다. 우리는 또 관용해오던 방법대로 돈을 더 넣어주고 표를 샀다.
로씨야렬차는 차바곤을 “삐삐”와 “꾸삐”로 나누는데 “삐삐”란 일반침대바곤이고 “꾸삐”란 연석침대바곤을 발한다. 우리는 운좋게도 “꾸삐”바곤표를 떼였다. 듣는 말에 의하면 “꾸삐”렬차는 제2차세계대전 쏘독전쟁배상금으로 독일에서 들여온것이라고 한다. 한옆에 복도가 쭉 나있고 바닥에는 주단을 깔았다. 복도창문쪽벽에는 려객이 보게끔 신문도 통에 꽂혀있었다.
량옆에 상하 두층으로 각각 2층 침대까지 있는데 침대는 아주 폭신하고 편안하였다.
그 이틑날인 9월 2일은 마침 배선생의 생일이였다. 우리는 렬차식당칸으로 갔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다.
“로씨야에서 서양음식으로 생일을 쇠는것도 별멋이구려.”
우리는 워드까, 맥주, 쏘세지, 흘레브 그리고 일년막에 닭고기를 볶아낸것 같은 이름모를 안주들을 청했다.
작은 병에 넣은 맥주는 후텁지근하고 씁쓸한게 정말 맛이 없었다. 안주도 속에 떨어지는것이 아니여서 그저 워드까를 마시는 재미뿐이였다.
계산대에 가니 2만루블이라는것이였다. 2만루블이면 어지간한 로씨야사람들의 한달 로임에 가깝다. 그러니 렬차의 식당에 손님이 없을수밖에.
이르쿠쯔크에서 내린 우리는 하루동안 장을 보면서 나머지 물건들을 팔아버리고 그 자리로 이르쿠쯔크기차역으로 갔다.
줄을 섰다가 차례가 오자 려권과 차표값, 거기에 웃돈으로 3만루블을 더 밀어넣었는데 되밀려 나왔다. 매표원은 외국인전문매표구에 가서 표를 떼라고 했다. 3층에 있는 외국인매표구로 가니 이르쿠쯔크로부터 우쑤리쓰크까지 기차표 한장에 68딸라라고 했다.
루블로 원래 기차표 한장에 5천루블이였으니 인민페로 35원인 셈이다. 그러던것이 68딸라로 올랐고 루블과 딸라의 태환률도 천30루블 대 1딸라이던것이 천 900루블 대 1딸라로 뛰여올랐으니 로씨야장사도 인젠 다 파먹은 김치독이였다.
68딸라로 기차표 한장을 산다는것이 억울하였고 억울한대로 루블로 딸라를 바꾸자니 어디에 가서 바꾸는지도 알수 없었다. 우리는 계속 로씨야매표구에 가서 기회를 엿보았으나 행운의 신이 어디에서 잠을 자는지 시종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매표청사밖에서 장춘에서 온 중국류학생을 만났다. 그는 복장모델처럼 체격이 미끈하고 얼굴이 시원스레 생긴 로씨야처녀와 함께 중국에 갔다 돌아오는 한학급의 동무를 기다리고있는중이였다. 우리는 그 중국류학생이 무척 반가왔다. 나는 내가 기자라는것을 말하면서 차표를 사지 못해 애를 먹는다고 말하고 그의 도움을 청했다. 그는 식지로 코등에 흘러내린 안경을 춰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류창한 로어로 로씨야처녀와 무엇이라고 말을 주고받는것이였다.
“이 로씨야처녀가 쪽지를 써주겠다고 합니다. 쪽지를 가지고 매표구에 가서 한번 시험해보십시오.”
내가 목책과 원주필을 주었더니 로씨야처녀는 로어로 한획두획 보기 좋게 쓰고는 그 중국류학생더러 우리의 려권에 박힌 이름을 하나하나 읽게 한후 로어발음으로 적어 내려갔다.
“내가 번역해드릴게요. 들어보십시오. 친애하는 동지, 수고하십니다. 우리가 세곱으로 차표값을 드릴테니 사양 마시고 두곱을 당신이 가지고 차표 여덟장만 끊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걸 넣어서 안되면 딸라로 차표를 끊을수밖에 없군요.”
우리는 그 로씨야처녀에게 감사한 마음에서 돈을 주려고 했으나 그녀는 극구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고 헤여졌다.
쪽지를 루블속에 끼우고 려권과 함께 매표구에 디밀었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매표구의 그리 크지 않게 뚫린 구멍만 주시했다. 먼저 려권이 나왔다. 3분쯤 지나 기차표가 나왔다.
잠자는 행운의 신을 그 천사같이 아름다운 로씨야처녀가 깨워가지고 우리한테로 모셔왔다. 로씨야장사길이 막히기 사작하니 하루라도 로씨야에 머무르면 그만큼 돈을 팔게 될것이였다 이번 장사길이 밑진 걸음인것은 뻔했다. 한시라도 빨라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반대합실은 로씨야의 술주정뱅이나 불량배들이 자주 나타나 우리는 일인당 백루블씩 내고 깨끗한 귀빈대합실에 들어가 밤을 새웠다. 대합실에 앉은뱅이 큰 저울이 있었다. 저울에 올라서니 73킬로이던 몸무게가 68킬로밖에 안되였다. 5킬로나 떨어진것이다.
그 이틑날 우리는 울라지보쓰또크행 씨비리렬차에 올랐다. “삐삐”였다. “삐삐”면 어떻고 “꾸삐”면 어떠랴. 렬차에 오른것만도 다행이였다.
우리는 소리를 죽여가며 트럼프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긴 려행길에 너무나 무료하여 도저히 시간을 보낼수 없었던것이다.
한 역에 이르니 우리가 탄 바곤으로 울라지보쓰또크로 가는 해병들이 가득 오르는것이였다.
키가 엄청나게 큰 해병 하나가 우리한테로 오더니 “리핀(선물)”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리핀 네뚜다.(선물 없다)”
우리들중의 하나가 이렇게 까박을 주자 머쓱해진 키다리해병은 내밀었던 손을 어색하게 거두어들이며 자기의 침대가 있는 곳으로 물러갔다.
점심때가 되자 우리는 라면을 먹기 위해 물끓이는 곳으로 갔다. 로씨야기차의 물끓이는 쇠화로는 매우 작았고 석탄으로 가열하고있었다.
선물을 달라고 했다가 까박을 당한 그 키다리해병은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던지 슬금슬금 다라와서 끓는 물을 받은 우리를 방해주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수도꼭지를 열어놓으면 되틀어놓군 하면서 애를 먹였다.
너무 더워서 웃통을 벗어던진 현철이가 떡돌처럼 탄탄해보이는 자기의 가슴을 주억으로 탕탕 치면서 꽥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모두 모여들자 키다리해병이 비실비실 뒤걸음질쳤다. 배원장이 앞으로 나서며 그 키다리해병을 향해 주먹을 내흔들고는 “에 네 볼쏘이다.(주먹의 위력이 크지 않다는 뜻으로 말했음)”라고 하고는 다시 옆구리에서 권총을 뽑는 시늉을 하면서 “이게 볼쏘이다(권총의 위력이 크다는 뜻으로 말했음)”라고 조선어에 로어를 범벅해 손시늉까지 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실 아무런 방어무기나 칼따위의 쟁기는 없었다. 있다면 체인자물쇠뿐이였다. 체인자물쇠를 가지고 다니면 보따리들을 한곳에 놓고 자물쇠를 채울수 있거니와 혹시 예측 못한 싸움이 일어난다 해도 무기삼아 휘두를수가 있어 여러가지로 편리했다. 그래서 로씨야장사를 간 중국사람들은 대부분 체인자물쇠를 가지고 다녔다.
오후 세시가 되여 해병 하나가 우리한테로 오더니 배영만에게 그 손목에 찬 시계를 달라고 했다.
“쳇, 이게 낯가죽이 소가죽이네.”
배영만의 이 말에 그 해병은 주먹을 흔들어대며 차바곤이음칸으로 가자고 배영만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그의 옆에 또 로씨야해병 하나가 서있었다.
우리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태가 대뜸 긴장해졌다. 이때 저만치에 앉아있던 40대의 로씨야녀인이 다가오더니 그 해병을 꾸짖는것이였다. 그녀의 입에서 밀리쯔란 말이 자주 나왔다. 시계를 달라고 하던 그 해병이 물러갔다.
사실 우리는 최악의 경우가 아니면 꾹 참고 싸움같은건 하지 않기로 했다. 싸움끝에 뜻밖의 사고라도 당하면 우리만 랑패를 볼것이 뻔했던것이다.
렬차원은 스무살이 될가말가하 야들야들한 처녀였다. 그녀는 진종일 해병들속에 끼여있었다. 그리고 또 젊은 녀자 하나가 더 있었다.
렬차바곤이 “삐삐”였기에 칸막이를 하지 않아 침대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모두 보였다. 얼마후 칸막이대용으로 탄자가 걸렸다.
담배를 피우려고 바곤이음칸으로 가는데 대충 걸어놓은 탄자의 빠꼼히 열린 틈으로 해병의 모습이 보였다. 아래침대의 해병이 손으로 렬차원처녀의 몸을 마구 주무르며 키스를 퍼부어대고 웃층침대의 해병을 얼굴을 아래로 내리드리고 그들의 애무하는 동작을 보면서 실실 웃음을 흘리고있었다.
또 한 침대에 탄자가 칸막이로 걸렸다. 로씨야에서 렬차를 타고 가노라면 렬차원녀자들이 려객과 술을 마시고 눈을 맞추면서 마구 놀아대는 장면과 맞띠우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뜨거운 애무끝에 절정에 이르면 둘이 함께 렬차변소에 가서 처리한다고 한다. 어느 한변 나는 렬차변소에서 남녀가 잇달아 나오는것을 보았다.
그라제까와의 록상청에서는 마음대로 섹스장면을 찍은 포르노비디로을 방영하고 노보씨비리쓰크의 널판자로 만든 상점에서는 미국에서 들여온 포르노화보를 팔고있었다.
노보씨비리쓰크로 갔을 때 우리보다 먼저 간 한 청녕이 노보씨비리쓰크텔레비죤방송이 토요일 밤 12시부터 포르노비디오를 방송한다고 했으나 우리는 시간이 맞지않아 누구도 보지 못했다.
우쑤리쓰크역 플래트홈을 빠져나온 우리는 공공뻐스를 타고 장거리뻐스부로 갔다. 마침 장거리뻐스부역사 방금 곁에 큰 백화상점이 있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로씨야물건이나 사려고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먼저 모조장신구매대에 가서 안해와 딸애의걸로 액세서리 두점을 샀다. 판매원에게 물으니 한국에서 수입해들인것이라고 했다. 그다음은 소매가 짧고 줄무늬가 선명한 샤쯔를 샀다. 구입할 때는 로씨야산 제품이려니 했는데 밖에 나와서 포장을 뜯어보니 “CHINA”라는 글자가 박힌 상표가 붙어있는것이 아닌가.
중국사람이 로씨야에서 중국제품을 산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로씨야인들의 체구에 맞게 만들었기에 헐렁하여 통풍이 잘되였고 특히 줄무늬가 보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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