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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사업은 나의 꿈인걸요”

연길시희망복리원 량민건원장

  • 2014-02-17 16:14:10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선사업을 포기하려는 생각은 못해보았습니다. 이 생명 다할때까지 자선사업이라는 꿈을 꼭 실현하고싶습니다.” 15년래 8채의 아빠트를 팔고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해 49명의 고아와 의지가지 없는 사람들을 무료로 입양한 연길시 희망복리원의 량민건원장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이다.

거리에서 류랑하는 고아나 의기자기 없는 사람을 볼때마다 량민건은 이들에게 비바람을 막아주고 따뜻한 밥을 먹을수 있는 아늑한 집을 마련해주고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일었다. 결국 그는 1997년에 연길시 오도저수지부근에 복리원을 세우고 희망복리원으로 명명했다.

설립초기 희망복리원은 특수한 대가정속의 성원마다 성격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달라 이런저런 마찰이 끊기지 않았다. 량민건은 복리원의 의지가지 할데 없는 로인들을 자신의 부모로 고아들를 자신의 자녀로 생각하고 생활속의 어려움을 도와주는한편 모두가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하게 된 소중한 인연을 서로 고맙게 생각하고 화목하게 지내야 하지 않겠냐며 일깨워주었다. 차츰 복리원에는 년장자를 존중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복리원을 세우기 전에 량민건은 록화공사 등을 도맡았고 안해 김선미가 경영하는 식당도 영업이 잘 되다보니 1997년전만해도 이들 부부는 아빠트 8채, 승용차 한대가 있었다. 그러나 자선사업을 견지하기 위해 그는 륙속 아빠트를 판매해 복리원을 지을 땅을 사고 복리원의 일상소비에 사용했다. 안해 김선미는 그를 지지하기 위해 식당을 그만두고 복리원에 와 그를 도와주었으며 자금이 결핍하자 또 미국에 가 고생스레 번 돈을 전부 복리원에 부쳐보내 운영자금으로 쓰도록 했다.

2005년은 량민건에게 있어서 무척 힘든 한해였다. 5명의 로인들이 선후로 사망했고 한 로인의 전렬선수술에 목돈을 밀어넣다보니 아이들의 학습비용과 기타 성원들의 생활비가 바닥이 났다. 량민건은 부득이 시내에 있는 자신의 모든 집을 팔아버렸다. 그러면서도 복리원의 아이들이 취업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량민건은 아이들에게 불도저, 굴삭기 및 작업차 등을 사주는 등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는 일에 아낌없이 투입했다.

2011년에 미국에 다녀온 량민건은 미국의 복리원들처럼 공장을 꾸려 희망복리원의 아이들도 금후 자주창업을 할수 있도록 도와줄 계획을 세웠으며 사회적으로도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고아와 의지가지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어 이들이 사회의 사랑을 받기 바란다고 밝혔다.

최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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