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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조선족마을에 찾아든 믿음직한 “아들”

  • 2015-05-19 14:40:10

봄아씨가 아직 고집스레 버티고있는 5월의 중턱, 연길에서 302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오불꼬불 산고개를 몇번 넘으면 안도현의 동쪽 대문으로 불리는 석문진에 이르게 된다.

페부 끝까지 정화될것같은 공기를 마음대로 퍼주는 인심좋은 산골마을이건만 석문진도 여느 마을과 다를바없이 젊은이들은 빠져나가고 로인들만 남았다.

김호일씨(42세)가 이 그림같은 조용한 조선족마을에 파출소 소장으로 발령받았을 때는 8년전이였다. 혈기왕성하고 의욕이 충만했던 이 젊은이는 산이라도 옮길듯한 기세로 대뜸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지만 암탉이 알을 낳아도 이슈거리가 되는 마을에서 김호일씨는 자신이 계획해왔던 청사진을 바꿔야만 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어느새 동네 어르신들의 팔다리가 돼주고 있었어요.”

3년전에 거동이 불편한 마을의 문씨로인(69세)을 도와 유선TV를 놓아드린 이래 해마다 내는 료금은 김호일씨의 몫이 됐다. 형사구류를 당한 아버지때문에 달랑 집에 혼자 남겨지게 된 3살짜리 어린이를 데려다 파출소 민경들이 번갈아가며 보살피기도 했다. 풀려난 아버지가 감동에 눈물을 글썽인것은 나중의 이야기다.

그뿐이랴. 6.1절이면 마을에 몇 없는 어린이들에게 먹거리도 사주고 겨울이면 홀로 사는 로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땔나무가 장만됐는지도 살펴본다. 그러다보니 마을주민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무조건 김호일씨부터 찾는다. 아들이 따로 없다.

김호일씨는 파출소 민경들한테 늘 이렇게 말한다. “마을의 어느 집에 가든 친아들처럼 식사하자고 팔을 잡아끌만큼, 그만큼만 잘해드리자.”

몇해전부터 석문진을 가로지르는 고속철도건설사업때문에 마을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김호일씨는 민경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타향에서 고생하는 건설일군들이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도 필요한 수속을 할수 있도록 편리를 도모해줬으며 마을 주민들과 원활한 소통을 할수 있도록 안전생산선전과 더불어 법제선전을 틀어쥐였다. 석문진경내에서 주민과 건설일군들사이에 한번도 마찰이 없은 덕에 중국철도터미널그룹 대상부에서는 지난해 김호일 소장한테 금기까지 보내왔다.

인민경찰에게 뭐니뭐니해도 가장 뿌듯한 일은 사건해결일것이다. “지난해에는 석문진에서 사기극을 벌린 일당도 잡았답니다.” 내용인즉 하북성 장가구시의 일당들이 석문진에서 돌을 금광이라고 왕청사람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렸던것이다. 수사에 나선 석문진파출소에서는 일당을 쫓아 귀주성까지 추적했고 간발의 차이로 혐의자들을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이 사건은 법제프로로 제작돼 CCTV-12채널에 방영되기까지 했다.

사나흘에 한번씩 당직을 서야하는 사업특성상 가족들이 서운할것은 더 말할나위도 없을것이다. 룡정태생인 김호일씨, 정작 7년동안 설은 부모님이 계신 룡정이 아니라 석문진파출소에서 쇠였다.

“올해 아버지 어머니께서 선후로 몇차례 수술을 하셨는데 곁에 있어드리지도 못했네요.”

안해 조선옥씨 또한 묵묵히 모든것을 감내한다. 한달에 한번 석문진을 찾아 파출소 식구들에게 맛있는 밥 한끼를 대접하는것은 이미 관례처럼 되였다.

이 마을에 찾아든 믿음직한 “아들”의 사람좋은 웃음에 이 마을의 평화로운 기운이 덧새겨진다.

글·사진 리련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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