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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시련속에서도 삶은 행복해…

  • 2016-04-20 15:55:43

양부모님,남편과 함께 행복한 순간을 보내는 박혜숙씨 (오른쪽 두번째 사람).

양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정신과 남편의 지고지순한 애정 그리고 더불어사는 사회의 온정에 1급지체장애인 박혜숙(49살)씨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맙고 행복하다.

그런 그녀를 찾아간것은 지난 14일 저녁이였다. 하반신이 마비된데다 두손까지 다 잘 쓰지 못하는바람에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집문도 열어주기 힘든 신세라 그녀의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려서였다.

“저는 복이 많은가봐요.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여나도 행복한 삶을 살고있으니깐요…”

침대에 앉아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하는 말이다.

친부모가 누군지도 모른채 태여나자마자 입양되였고 입양되여 며칠만에 선천성대뇌발육불정상으로 인한 1급지체장애라는 진단을 받게 되였다는 그는 그녀를 부양하기로 마음먹은 양부모님이 그의 기구한 운명을 바꾸어놓은 천사와도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당시 양부모님은 장애아이를 키워 무얼하겠냐며 되돌려주라는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도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은 아이를 어찌 되돌려보낼수 있겠냐며 피덩이인 그를 가슴으로 포근히 감싸안아주었다. 그리고 장애라는 리유때문에 그에게 영향이 미칠가봐 다른 자식도 더 키우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 가는 일이였다.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 그를 업고 다녀야 했다.당시 양아버지 박로식씨가 황니허림업국 조직부 부장으로 드바삐 보내는바람에 황니허림업국 종업원식당에서 료리사로 일하던 양어머니(전록순)가 직장을 그만두고 전문 그를 업고 학교에 다녔다.두시간에 한번씩 학교에 가서 그를 화장실에 데려다주면서…

이렇게 장장 6년이란 시간이 흘러지났다.그런데 양어머니가 고혈압 등으로 몸이 불편해지자 그는 부득불 중학교진학을 포기하는수밖에 없었다.

“제가 중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자 양아버지가 글이라도 익히라며 교과서랑 중외고금의 명작이랑 많이 사다주었어요.이것이 제가 독학으로 지식을 배우고 글쓰기취미를 가지는데 큰 도움이 되였어요.”

그는 16살 때부터 불편한 손으로 짬짬이 글을 써 연변일보,길림신문.연변텔레비죤신문 등지에 소설이나 산문을 발표했다. 그가 발표한 200편 좌우의 작품가운데 상을 받은 작품만 해도 10여개에 달한다.그중 인생의 묘미에 대해 쓴 글은 전국산문대상콩클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것이 양부모님이 저를 훌륭히 키워주었기때문입니다.”

그는 바다보다 더 깊은 사랑을 주신 양부모님이 고맙기 그지없는 가운데 그런 하늘같은 사랑을 주신 양어머니가 5년전에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여 마음이 더없이 아프고 허전하다고 했다.

“양부모님 같은 사람이 없어요.지금도 양아버지는 내가 걱정되여 나를 보살피겠다며 우리 집옆에 세를 맡고 왔어요.그리고 마음씨 착한 새 어머니와 함께 수시로 드나들며 남다른 관심을 돌려주고있어요.”

그는 양부모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더불어 백년해로를 결심한 건강한 남편(허자일, 55살)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이루 말할길 없다.

27년전에 지인의 소개로 한고향에 살고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난 그는 당시 아무런 하자가 없는 남편에게 일시적충동일수도 있으니 심사숙고한후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씨 곱고 문학적기질이 다분한 그녀에게 마음이 동한 허자일씨는 결국 그녀를 설득하여 일년만에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였다.

“남편은 천성이 부지런하고 착해요. 손재주도 많구요. 때시걱은 물론 빨래에 거두매에 집안의 모은 일을 혼자 도맡아해요…”

그는 남편이 언제 한번 얼굴을 찡그려본적이 없다고 한다.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달고사는 남편은 현재 로교수병원에서 후근일을 하고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아침밥과 점심밥을 갖추어놓은외에 출근전에 따뜻한 세수물을 떠다놓고 안해의 머리까지 빗어주군 한다고 했다.

결혼 2년만에 기적같이 아들을 본 그는 “아들이 부모님의 좋은 유전자를 닮아 1.81메터의 키꼴이 장성한 청년으로 자라났다”면서 “그 아들이 작년에 길림경찰학원 한국어전업을 졸업하고 현재 연길 모 한국기업에서 한국어번역을 하고있다”며 이젠 세상 부러울것이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주지체장애인협회와 사회 각계의 애심단체와 애심인사들이 그한테 많은 사랑의 손길을 주어 더없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죠.”

현재 인터넷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토보에 인터넷가게를 오픈하여 나름대로의 약간의 수입도 얻어들이고있는 그는 몸은 불편해도 마음만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가족과 더불어 행복한 꿈을 이루어가는 박혜숙씨, 지난해부터 불편한 손을 놀려가며 쓰기 시작한 장편소설이 이제 일년후면 빛을 보이게 된다면서 긍지와 자랑에 찬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녀에게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기를 바란다.

글·사진 차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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