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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구자, 메마른 골짜기의 마지막 추억

  • 2016-11-07 08:35:46

항간에서 그 1990년대 중반 옛 마을자리를 찾아 기념사진을 남긴 최명숙로인.
곳은 메마른 골짜기라는 의미의 간구자(干沟子)로 통하고 있었다. 간구자는 골짜기를 흐르는 시내물이 늘 말라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막상 장마철에 비가 한줄금 내리면 금세 시누런 흙탕물이 사납게 골짜기를 휩쓸었다고 한다.

“정말입꾸마, 물을 건너다가 밀려갈번했던 일이 있스꾸마.”

누군가 골물에 빠져 하마트면 물귀신이 될번했던 일은 최명숙(86세)로인의 기억에 깊은 골짜기를 파고있었다.

기실 이름이 마른 골짜기이지 예전에는 사내들이 자주 물에 들어서서 고기잡이를 했다고 한다.

“세치네가 많았스꾸마. 한종지를 제꺽 잡았스꾸마.”

“세치네”는 말 그대로 세치도 되지 않는 잔물고기를 이르는 말이다.

최명숙로인의 조부는 광서(1875~1908)년간 경상남도 밀양에서 홀로 이 고장에 이민을 왔다고 한다. 최명숙로인이 어섯눈을 떴을 때 벌써 여러가구가 생겨나 옹기종기 골짜기를 메우고있었다. 조선인이 10여가구 되였고 중국인이 2가구 있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여러 골짜기에 갈라져있었다. 골짜기마다 그들의 성씨를 따서 팡개골(方家沟)이요, 왕개골(王家沟)이요, 춘개골(春家沟)이요 하고 이름을 지어 불렀다.

그러든 말든 메마른 골짜기라는 후날의 이름처럼 땅이 척박했다. 조와 보리 등속의 잡곡을 심었는데 별로 소출이 없었다. 보리고개에는 쌀독이 텅텅 비여서 하루건너 끼니를 걸러야 했다. “말도 맙소. 밭에서 김을 매는데 맥이 없어서 호미질을 할수 없었스꾸마.”

배고픔은 마치 호미로 창자를 올올이 긁어내리는것 같았다. 최명숙로인은 이야기를 하다가 부지중 눈시울을 붉혔다. 부친은 형제자매가 열다섯이나 되였지만 세파에 부대끼다보니 나중에 셋만 겨우 살아남았다고 한다.

“화는 홀로 오지 않고 복은 쌍으로 오지 않는다.”

후더분한 성미의 조부는 선뜻 이웃집의 대출보증을 섰다가 빚을 한 꾸레미나 지게 되였다. 그들이 나 몰라라 하고 타향으로 솔가도주를 했던것이다.

희비극의 인간사는 그렇게 시내물처럼 골짜기에 흘러갔다. 물이 흐르면 도랑이 생기듯 날이 갈수록 골짜기에 정이 들었다. 초가는 엉성할망정 그들의 보금자리였고 골짜기는 메마를망정 그들의 삶의 터전이였다. 나무가 자라서 수림을 이루듯 최씨네는 어느덧 10여명의 가족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1937년경,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골짜기어구에 내려와 이사짐을 풀게 되였다. 일본의 괴뢰인 만주국정부가 항일군과 백성들의 련계를 차단하기 위해 여기저기 산재한 가구들을 한데 집중시켜 집단부락을 만들었던것이다. 그때는 박달나무가 떵떵 얼어터지는 동지섣달이였다. 11살의 어린 나이었던 최명숙로인은 엉성한 오두막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어제처럼 또렷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땅우의 눈을 치고 앞뒤에 나무기둥을 세웠으며 잔가지들을 서까래처럼 용마루에 걸쳤다. 오두막에는 숨구멍처럼 뙤창문이 간들간들 달려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장작불에 언몸을 쬐이는 사람들은 흡사 야인시대로 다시 돌아간듯했다.

이런 움막은 이듬해 봄을 맞아 눈석임처럼 사라졌다. 나중에 산기슭에 2~30가구의 초가가 올망졸망 줄지어 늘어섰고 그 주위에는 키를 넘는 목책이 길게 나타났다. 이때 집단부락은 황페한 작은 골짜기라는 의미의 “소황구툰(小荒沟屯)”이라고 불렸다.

일본 순사들이 자주 마을에 들락거렸다. 제복을 입고 하얀 장갑을 낀 그들이 나타나면 어린 최명숙은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순사들은 이따금 산에서 내려오는 늑대처럼 공포의 대상이였던것이다. 그들은 농가에 들어와서 흰 장갑으로 살창문을 쓱 문질러보기도 했다. 흰 장갑에 시꺼멓게 때가 묻어나면 그 무슨 벌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순사에게 잡히면 하다문(哈达门)에 가서 군도로 목을 친다고 합더꾸마.”

솔직히 황당한 얘기였다. 그때 순사가 얼마나 험상궂게 굴었으면 이런 이야기까지 나왔을가싶다.

순사들은 마을에서 약 20리 상거한 하다문의 훈춘국경경찰대에 있었다. 하다문은 만족말인데 원명은 “하다마(哈达玛)”라고 한다. 출입 문“门”은 마노 마“玛”의 음역이다. 하다(哈达)는 만족말로 “산”이라는 뜻이며 마노 마는 “산간의 평지”라는 뜻이니 하다마는 “산 둔덕”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실제 하다문 지역은 북부가 거개 산이며 골짜기가 가로세로 거미줄처럼 늘어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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