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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꿈 오페라 코치로 승화

조선족 피아니스트 김해의 눈부신 활약

  • 2018-06-12 17:09:09

연변 출신 조선족 피아니스트 김해(31세)가 우리 민족 음악계는 물론 중국 음악계에서도 아직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오페라 코치’(歌剧艺术指导)로 미국 메릴랜드 국립오페라단에 자랑스럽게 입성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동양인들에게는 희소한 오페라 코치, 그것도 중국에서 성장하고 대학교 교육과정을 받은 피아니스트가 미국 오페라단의 코치로 발탁된다는 것은 실로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해는 이란성 쌍둥이 자매중 동생으로 태여나 6살 때부터 노래, 무용과 손풍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7살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는 집에 피아노를 장만해놓고 쌍둥이딸들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소학교 5학년 때에 연변예술학교에 입학하기까지 김해는 거의 날마다 울면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피아노를 잘 치는 것만이 오직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 여기고 ‘운명처럼’ 피아니스트의 꿈을 받아들였다.

연변예술학교를 다니면서 김해는 우연히 국내외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중앙음악학원 한빙 음악가의 환상적인 피아노연주 모습에 매혹되여 꼭 그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16살이 되던 해에 그는 애써 수소문한 끝에 대학입시 10개월을 앞두고 한빙 교수를 찾아갔지만 교수는 선뜻이 그를 학생으로 받아주지 않고 ‘레슨을 받으면서 10개월 후에 다시 오디션을 보자.’는 반승낙을 해주었다.

허름한 피아노가 놓여있는 아빠트를 세맡고 김해는 매일 10시간씩 몰두하여 피아노련습에 매달렸고 하루종일 대화 한마디 나눌 상대도 없이 혹독하게 피아노와 씨름하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선생님을 찾아가 절실한 마음으로 레슨을 받군 했다.

드디여 김해의 피아노 실력은 폭풍성장해 선생님을 감동시켰고 급기야는 몇달 뒤에 한빙음악학원에 추천받아 솔로연주회를 열 수 있는 기회까지 잡게 되였다.

2005년, 김해는 오매불망 갈망하던 중국음악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김해는 전국의 크고 작은 피아노콩클에서 상을 휩쓸었고 전국 각지에서 10여차례 되는 피아노콘서트를 열었다.

2009년 2월에 그는 오스트리아 모짜르트음악대학이 북경에서 주최한 피아노콩클에서 일등의 월계관을 따냄으로써 비엔나 최고예술위원회 위원인 카프만 교수가 지휘하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짜르트 414="">를 협연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였다.

매번 몸과 마음과 시간을 쏟아부어 련습한 피아노곡을 들고 무대에 오를 때면 김해는 긴장하기보다는 “그동안 아낌없이 노력한 나 자신에게 상을 주는 시간이라 생각되여 흥분된다.”고 했다. 또한 “무대 우에서 음악에 완전히 몰입되여 피아노를 연주하는 순간 순간들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며 “피아노는 나의 인생의 전부”라고 말했다.

석사과정 2년차인 2010년 10월에 김해는 중국음악학원을 대표하여 미국 보스톤대학의 초청을 받고 피아노 솔로 콘서트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새로운 음악환경에 시야가 트인 그는 한빙 교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그해말에 서방 클래식 음악의 정수를 흡수할 청운의 꿈을 안고 태평양을 날아넘었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음악학원에서는 그에게 피아노 석박사 통합과정 6년간의 학비를 면제해주고 전액장학금은 물론 월급을 받으면서 피아노 예술감독 조교를 병행할 수 있는 행운도 안겨주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경험해봐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김해는 선후하여 2013년과 2016년에 바이올리니스트와 합작해 두차례 챔버뮤직 음반을 발표했다. 이에 힘입어 김해는 박사 졸업 후 <베토벤> 피아노 솔로 앨범을 출판할 야심찬 꿈도 갖고 있다.

‘피아니스트는 고독한 음악가’라는 타이틀을 벗어나 김해는 다채롭게 자기의 음악령역을 넓혀가면서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고 함께 연주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

김해는 우리들에게 그닥 익숙치 않은 오페라 코치를 “성악가들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들의 련습과정을 이끌어주고 다듬어주는 지휘자 또는 피아니스트”라고 정의했다.

그는 “지금 중국에는 오페라 코치가 시급히 필요하다. 경험을 많이 쌓고 조국에 도움이 되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며 꾸밈없이 계획을 전했다.

리화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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