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류학 후,종착역을 찾다

2018-10-31 09:11:52


◆목표치와 현실 사이 괴리 느껴


전명화 (36세, 상해, 회사 근무)

학창시절부터 학급 일등은 의례 그녀의 몫이였다. 모범생 정석 코스를 밟아 중점 중학교, 고중을 거쳐 북경의 명문 대학교를 졸업한 후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류학 지원, 준비 과정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공립대학 관리학부에 입학했다. 탄탄한 외국어 실력을 기반으로 기한내에 무사히 석사과정을 마친 후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임 없이 귀국을 택했다. “현지에서 마주한 새로운 발전 기회와 비전 있는 회사의 러브콜에 전혀 흔들리지 않은건 아니였어요.” 둬차례의 좋은 취직기회를 뒤로 하고 국내에 터를 잡은 가장 큰 리유는 가족,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휴대폰 영상통화로만 달래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싶어서였다.

귀국 후 부모님은 대학교나 연구 기관에 취직하기를 원했지만 사업 절주가 빠르지만 이에 정비례하듯 곳곳에 도전과 기회가 도사리고 있는 회사 생활을 선택했다. 현재 모 투자회사의 주요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데 업무량에 반해 월급이 해외 동종 분야에 비해 적은편으로 생활 질과 월급 수준 모두 귀국 전  목표치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그래도 국내 월급 및 국내 생활 수준 향상으로 귀국 초반에 비해 거리감이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또한 끊임없는 자기암시와 심리조절로 괴리감을 해소했다. 예기했던 목표치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류학생활이 외국 바이어들과의 담판, 해외 시장 개척, 확장 등 업무에 탄탄한 밑거름이 되면서 동료들과의 실력 겨룸에서 우위를 점했다. 현재 회사의 주축으로 회사 성장에 보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삶에 대한 지향과 목표 바뀌여


김성철 (가명 33세, 연길, 대학 직원)

심양에서 대학교를 마친 후 오스트랄리아의 한 유명 대학원에서 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높은 학비와 물가를 부분적으로 충당하여 부모님의 부담을 덜기 위해 학업을 이어가는  내내 아르바이트를 겸했다. 고임금의 유혹을 뿌리치고 귀향길에 오른 가장 큰 리유는 장차 태여날 아이에게 민족교육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어서였다.

귀국 후 상해의 한 전자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현재 대학교에 취직했는데 사업 방향과 절주가 지향했던 삶에 근접해있다. 시간적 여유도 충족하여 가족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현재 월급은 대도시의 월급에 비해 세동강, 네동강이 나버린 수준이지만 소비를 월급에 걸맞는 수준으로 통제했다. 쌓은 스팩에 비해 보수가 적지 않냐는 주변의 시선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되였지만 알찬 류학생활을 통해 당장 눈앞의 리익을 우선시했던 마인드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소소한 과정을 즐기는 데로 바뀌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 상황에 안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직 고향의 공업발전이 일선도시에 비해 더딘편이다. 선진국가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로 고향발전에 기여할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실천해나갈 계획이다.


◆전반 삶 업그레이드 원천


진영 (39세, 북경, 회사 근무)

할빈에서 본과를 마친 후 한국의 한 공립대학교에서 언어학 석사 코스를 밟았다. 본과를 비인기학종으로 선택해 취직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류학계획을 잡았을 때부터 남자친구와의 약속으로 귀국을 념두에 두었다.  귀국 후 북경에서 외국계 미디어회사에 취직하여 7년째 마케팅 분석직에 몸담고 있다. 귀국 당시 해외 류학파의 귀국을 격려하는 정책으로 운 좋게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로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의 힘으로는 격차를 줄이거나 뛰여넘을 수 없는 상대를 가리키는 말이다.)인 북경 호적을 취득했고 월급도 만족스런 수준이다. 곧 부문 책임자로의 승진도 앞두고 있다.

번화가는 아니지만 회사 지근지처에 작은 평방수의 아빠트도 마련했고 알뜰히 모아둔 월급으로 가끔 부모님에게 넉넉히 용돈을 드리고 해외 관광도 여러차례 보내드렸다. 부모님에게 효성스런 딸로, 친지들 가운데서는 시골아이가 수도에서 ‘성공’한 자랑거리가 됐다. 3년간의 해외 류학 경험이 인생을 역전시켰다고 해도 내겐 과언이 아니다.


◆종착역은 고향, 애향심으로 귀국


오인철 (34세, 연길, 사업단위 근무)

연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조교로 근무하다가 한국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여 기계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유명 전자회사에서 6년간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 대신 배척심리가 강하게 갈마들었다. 전공 선택이 애착이 아니라 취직을 념두에 두었기 때문이였다. 그러던차 부모님의 건강상황이 악화되면서 귀국할 생각을 굳히게 됐다. 비발치는 주위의 반대를 뒤로 한 채 안해와 아이 셋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왔다.

현재는 우리 주 ‘천인 계획’ 시험을 통해 도문시 한 사업단위에서 투자 유치 관련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월급은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십분의 일에 겨우 미치는 수준이다. 안해가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지만 아이 셋을 양육하기 록록치는 않다. 그러나 귀국한 선택에는 추호의 후회가 없다.

기계학과는 무관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류학생활과 외국회사 생활을 통해 터득한 일을 보다 능률적으로 배치하는 법을 사업에 적용하고있다. 기계설비, 전자 등 생산업체와의 투자유치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류학경험을 토대로 회사상황을 잘 파악하고 보다 타당한 건의를 내놓기도 한다.

어린시절 외국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정작 나이가 들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뀌였다. 철없던 시절 짙었던 고향에 대한 불만도 어느덧 고향건설에 이바지하려는 동력으로 바뀌고 있다.


◆고생 감내하면서 마음 단단해져


박진수 (가명, 44세, 연길, 창업)

수년간의 일본류학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돌아와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기발한 아이템이나 전망이 밝은 직종을 바로 창업에 접목시켰지만 쉽지는 않았다. 직장인의 마인드와 창업인으로서의 립장의 편차가 퍼그나 컸기 때문이다. 귀국 후 창업을 선택한 류학생수가 7.9%에 그친 관련 통계만 봐도 귀향창업의 어려움을 알 수 있다. 그러던차 지난해부터 맥주 공방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사전준비를 기반으로 가게가 제법 자리를 잡으면서 올해부터 외국에서 받던 월급과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내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겸하면서 학업을 이어가느라 고생을 수두룩이 겪었다. 류학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인고를 감내해내는 것으로 웬만한 어려움은 거뜬히 넘기군 한다. 그만큼 마음이 단단해졌다. 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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