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 한 일생

2018-12-19 08:30:28

제인 구달은 1934년에 영국 런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여났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아버지는 군대에 입대했고 남은 세 식구는 번머스에 있는 외할머니집에서 살았다. 제인은 외할머니집에서 닭이 알을 낳는 것을 보기 위해 닭장에서 몇시간이나 기다린 일화로도 유명하다.

1942년 크리스마스 때 외할머니는 제인에게 책 《돌리틀 박사 이야기》를 선물로 사주었다. 제인에게는 동물을 사랑하는 주인공의 삶이 자신의 미래처럼 다가왔다. 그후 제인은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당시에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타잔》이였다.

구달은 14살에 ‘악어클럽’을 뭇고 그들과 바다에서 자연을 관찰한 후 그 결과를 공책에 적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악어클럽 소식지’를 만들었는데 그 대부분은 구달의 작품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구달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진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어머니는 비서교육을 받으면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다보면 아프리카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구달은 1951년에 런던의 퀸스 비서학교에 입학했으며 1년 뒤에 비서자격증을 받았다. 기회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열렸다. 1956년 5월에 고등학교 동창인 클로가 자신의 가족이 케니아에 농장을 샀으니 한번 놀러오라는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1957년, 케니아에 도착한 구달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동물을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클로는 동물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나이로비에 있는 코리든 박물관(현재 케이나 국립박물관)의 관장을 맡고 있는 루이스 리키를 찾아가라고 귀띔했다.

1957년 5월 24일, 구달은 루이스 리키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리키는 아프리카동물들에 관한 구달의 폭넓은 지식을 높이 평가했고 그녀를 비서로 채용했다. 구달은 리키 부부와 함께 올두바이 협곡을 조사하러 다녔는데 한번은 루이스 리키가 구달에게 침팬지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보라는 제안을 했다. 구달은 침팬지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탐독하면서 침팬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후 구달은 다시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녀는 탄자니아의 곰비 국립공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캠프를 차린 후 매일같이 침팬지를 찾아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침팬지가 구달의 캠프에 찾아왔다. 구달은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데이비드는 구달이 보고 있는데도 야자수 열매를 먹었고 탁자우의 바나나를 집어갔다.

데이비드는 다른 침팬지들도 캠프로 데려왔다. 구달은 침팬지 하나하나를 금방 구별할 수 있었고 각각 이름을 붙여주었다

구달의 연구가 무르익어가자 리키는 구달이 비록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곰비에서 보낸 1년 동안의 눈부신 성과가 충분히 대학교육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캠브리지대학측을 설득했다. 구달은 1966년에 동물행동학 전공으로 캠브리지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구달은 곰비에서 침팬지의 행동을 관찰하는 동안 두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침팬지를 채식동물로 알고 있었지만 구달은 침팬지가 육식을 즐긴다는 점을 알아냈다. 침팬지는 고기를 아주 좋아하며 고기를 먹을 기회가 생기면 치렬한 경쟁을 벌리였다. 침팬지 수컷이 암컷을 유혹할 때 고기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였다. 그것은 구달이 데이비드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였다. 이러한 발견은 오직 인간만이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한다는 당시의 통념을 뒤집었다.

구달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내셔널 지오그래픽협회가 구달의 연구에 자금을 후원했다. 구달은 1963년에 <야생>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었고 구달과 침팬지가 함께 있는 장면을 담은 사진들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후 구달은 곰비로 돌아와 침팬지를 연구했다. 침팬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손잡기, 껴안기, 입맞추기 등과 같은 행동을 했다. 또한 인간의 말과 다르긴 하지만 서로 다른 뜻을 가진 소리를 30가지 이상 낼 줄도 알았다.

1971년에 구달은 자신의 관찰일지를 바탕으로 《인간의 그늘에서》를 발간했다. 길들지 않은 동물들과 야생에서 사는 녀성의 이야기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책은 미국과 영국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47개 언어로 번역되여나갔다.

1974년에 구달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에 접했다. 침팬지 사이에서 동족을 살해하는 사례가 처음 관찰되였던 것이다. 이를 목격한 구달은 침팬지에 대한 자기의 선입견을 고치게 되였다. 침팬지도 충분히 잔인해질 수 있으며 인간에 못지 않게 어두운 본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구달은 1986년에 들어와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마감하고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녀는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정부당국이나 환경단체를 만나 진지한 토론을 벌렸다.

1991년에는 탄자니아 10대 청소년 12명이 구달을 찾아왔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두고 구달과 상담을 마친 후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기로 결의했다. 이로써 인간, 환경, 동물의 공존을 위해 작은 일부터 시작하려는 ‘뿌리와 새싹’ 운동이 출범했다. 이 운동은 현재 수십만개의 청소년 모임들로 련결된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구달은 1987년에 외국인 최초로 탄자니아 정부의 킬리만자로상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기초과학에 대한 권위 있는 상인 교토상, 1995년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협회가 위대한 발견이나 탐험에 수여하는 허바드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DBE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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