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에 티없이 맑은 맘 새기다

2019-04-26 09:21:55

퇴역군인 김춘섭의 이야기


김춘섭에게 어떤 일을 마땅히 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한 것도 요구한 부문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돈 부족, 인원 부족, 자료 부족, 건강상황 등 거절할 수 있는 리유가 더욱 많았다.

그러나 김춘섭은 여유로운 일상을 포기하고 항일영렬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사적을 발굴해 전기로 쓰는 사업을 주동적으로 짊어진지도 어언간 십여년이 흘렀다.

2005년, 김춘섭은 퇴직하고 길림성 왕청현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을 맡았다.

왕청현은 장백산기슭에 위치해있는데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속한다. 항일전쟁기간 이 현은 연변지역에서 가장 큰 전장이고 경내에서 105차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177곳의 항일렬사묘지와 항일련군 유적지가 있고 600여명의 항일전사가 이곳에 잠들어있다.

바로 이 렬사의 선혈로 물든 땅에서 김춘섭은 많은 아이들이 당년의 력사와 영웅들을 모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력사가 우리 세대에서 묻히고 대가 끊겨서는 안된다.”

김춘섭은 항일전쟁 유적지를 보호하고 영렬의 묘지를 보수하고 영웅사적을 정리하려 하였으나 인원과 경비가 모두 부족했다. 항일영렬의 발자국이 닿은 곳이면 그는 곧 찾아 떠났다. 차량이 통하지 않는 곳이면 걸어갔고 돈이 부족하면 한 단위 한 단위, 한개 기업 한개 기업씩 찾아다니며 돈을 모았다.

방조를 제공하거나 지갑을 열어줄 때면 김춘섭은 항상 같은 말을 했다. “이 땅에서 희생한 600여명의 렬사를 대신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적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중공왕청현위 서기 김상화, 자살로 평화념원을 표달하고 유격대에 대량의 탄알을 남긴 일본 공산당원 이타스케오… 김춘섭은 동료들을 이끌고 고난을 겪으면서 민간에 흩어지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영웅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수집, 정리했다.

2010년초, 김춘섭은 의외로 C형간염에 감염되였다. 병세는 심했고 약물 부작용까지 더해져 그는 밥도 먹지 못한 채 온몸이 간질거렸으며 머리카락이 한줌씩 빠졌다. 하지만 그 시기는 마침 동장영렬사릉원 건설 시공이 드바쁜 때였다.

동장영은 중공동만특위 서기를 담임하였고 희생 당시 27세였다. 한동안 장기간 방치한 탓에 그의 묘지는 잡초들이 무성했고 작은 목패로만 인식할 수 있었다. 동장영 렬사의 묘소를 다시 건설하는 것은 김춘섭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큰일로 되였다. 주위에서 어떻게 만류하건 그는 휴식을 마다하고 날마다 시공현장에 나타났다.

1년여 만에 릉원은 예상 대로 준공되였지만 김춘섭은 피곤과 병이 한꺼번에 닥쳐 몸무게가 10킬로그람이나 줄었다.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던 로병사가 김춘섭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선후로 4만여원을 기부했다.

10여년간 김춘섭은 선후하여 《백산흑수에서 싸우다》, 《왕청영웅렬사전》 등 40여권의 자료서적과 소책자를 편찬했고 여러편의 텔레비죤 선전영상, 전기영상을 조직하여 촬영했으며 길림성에서 첫번째로 현급에서 운영하는 ‘영웅렬사넷’을 창설했다.

“기념비도 세우고 력사자료들도 정리해냈으며 웹사이트도 설립했으니 항일정신도 수립되였습니다.” 김춘섭은 다년간 비록 고생했지만 영웅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사적을 발굴해 전기를 썼으니 삶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신화사 매상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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