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첫 조선족 첩보극 작가 전용선

2019-06-04 15:18:04

집필한 드라마 ‘벼랑’, 제18회 상해국제TV절 백옥란상 극본상 수상


2012년 한편의 드라마가 여러 채널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용선 작가가 극본을 쓴 ‘벼랑(悬崖)’이라는 드라마다. TV드라마권 관계자들 모두 드라마 ‘벼랑’은 2012년 첩보극의 대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드라마 ‘벼랑’은 알아도 이 드라마의 극본을 창작한 전용선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2015년 12월 26일 전용선 작가는 제1회 단군문학상 시상식 무대에 올라 “어머니께서 제가 한복 차림으로 시상무대에 오른 것을 보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가요.”라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중국의 주류문단과 드라마계에 진출해 모두를 놀래운 그는 다름 아닌 조선족이다.

첩보극 ‘벼랑’으로 제2회 소호(搜狐)영상TV축제에서 상을 받고 있는 전용선(가운데) 작가.

전용선 작가는 1966년 흑룡강성 이춘시에서 태여났다. 한어를 류창하게 구사했던 그의 어머니는 교양있는 집 자식으로 보이게 하려고 동북사투리가 섞이지 않은 표준어를 아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의 소학교 시절 꿈은 료리사였지만 18살 때는 가수가 되고 싶어 했다. 뿐만 아니라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부른 경력도 있고 강습반을 꾸리기도 했다.

1985년 흑룡강성 가목사시 제2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커다란 배낭 하나를 메고 전국 각 지를 누볐다. 해남, 심수, 무한... 장강과 황하를 끼고 방랑하며 그곳에 살고 있는 젊은 남녀들의 생활에 무한한 호기심과 동경을 품었다. 똑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삶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그들을 알고 싶었다. 이런 자유로운 생활과 문화의식이 후날 전용선 작가에게 풍부한 창작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스무살이 되던 해 그는‘중국야인고찰연구회’의 일원으로 호북성 서부 신농가의 정글속에서 꼬박 3개월을 지냈다. 그때의 경력이 자신이 극본 ‘벼랑’에서 항일련군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은 원인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야인 고찰도 해봤고 기자도 해봤으며 시,소설도 써봤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작가는 영화에 대해 남다른 흥미를 갖고 있다. 일찍 한국에서 지낼 때 그는 공영방송사에서 방송하는 세계적 경전 영화를 즐겨 보았다. 전작가는 한국어에 대해 미숙하지만 그것이 영화에 몰입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1993년 한국에서 돌아온 후 반년간 일보사에 취직했다가 갑자기 북경영화학원에 취학했다.

‘벼랑’은 그의 네번째 극본 작품이다. 동북에서 근 30년간 생활한 전작가는 어렸을적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얘기와 많은 시간을 들여 수집한 력사자료들을 하나하나 엮어나갔다. 그는 이 작업을 즐겼고 관중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고모가 할빈에서 살고 있어 저를 자주 데리고 할빈에 왔었지요. 작은 마을에서 태여나 자란 저에게는 할빈이란 도시가 꿈의 도시였습니다. 거리에서 울리는 음악이나 서점에서 파는 책들이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들 모두 어린 저에게는 그저 무료할 뿐이였습니다.”면서“그 뒤로 80년대에 제가 다시 할빈에 왔을 때 저는 크게 놀랐습니다. 과거의 중앙거리가 활기로 차넘쳤습니다. 나팔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청년들이 거리를 활보했고 손에든 록음기에선 디스코 음악이 흘러 나왔습니다. 소녀들의 헤어스타일도 크게 바뀌였을 뿐만 아니라 금발의 외국인들도 볼 수 있었구요. 그 후 저는 저의 기억속 할빈에 대해 무언가는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장편소설 《홀 와트거리》를 쓰게 되였고 이 소설이 첩보극 ‘벼랑’으로 촬영 제작되였습니다.”라고 밝혔다.

언어가 쉽고 해학적이며 대범하고 평온함 가운데서 인생의 참뜻을 나타내고 인간의 모든 감정을 아우르며 진정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전용선 감독의 문풍은 독자적인 일파를 이루었다.

드라마 ‘벼랑’은 일찍 2012년에 동방위성TV, 천진위성TV, 흑룡강위성TV와 CCTV-1채널 황금시간대에 방영됐다. 드라마가 방영된 후 ‘소리소문 없던’소설가는 대뜸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제18회 상해국제TV절 백옥란상 극본상을 수상했다.

전용선 작가의 작품은 많지 않지만 쟝르는 많다. 소설, 시가, 산문, 그리고 띄염띄염 써두었던 수필들까지… 그는 일년에 겨우 한 두 편의 소설과 2-3수의 시, 예닐곱편의 수필을 쓴다고 했다. 다산 작가가 아닌 그는 엄격한 의미에서 자신은 합격된 작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정신적 상품은 금전으로 가늠할 것이 아니라 독특한 가치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용선 작가, 그래서 그의 다음 작품이 유난히 기대된다.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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