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에 능란한 발동기 전문가

2019-11-06 09:08:16

자동차연구소에 일본인 못지 않게 일본어를 잘하는 허순길 고급공정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기자는 그를 찾아갔다. 젊은 시절에 일본에 류학해 일본어를 잘하는가 여겼는데 알고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1939년 10월 생인 허순길씨는 고향이 화룡시 진달래촌이며 1965년에 길림공업대학 자동차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곧바로 제1자동차공장 소속 장춘자동차연구소 발동기연구부에 입사하여 1999년 퇴직하기까지 35년 동안 오로지 자동차발동기 연구에만 진력해온 고급공정사이다.

“우리 집은 다문화가정입니다. 며느리는 일본인이고 사위는 한족입니다. 아들이 일본 녀자친구와 사귀여 결혼식을 치르게 되였지요. 일본 결혼식장에서 량가 부모로부터 답사가 있을 때의 일인데 자식들은 편안하게 중국어로 말하라고 하더군요. 그때까지 아버지의 일본어 실력을 잘 몰라 자식들이 근심돼서 그랬지요. 그래서 너희들이 한번 지켜보라고 했지요. 저는 미리 준비한 발언고도 없이 류창한 일본어로 결혼식에 참석한 래빈들에게 즉석 인사말을 올렸지요. 좌중의 일본 래빈들은 눈이 휘둥그래지더군요. 그날 례식이 끝나고 사회자가 저를 찾아와서 중국인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옳으냐, 어떻게 일본어를 일본사람 보다도 잘할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일본어는 나의 애호라고 말했더니 크게 놀라더군요.”허순길 고급공정사는 이렇게 아들의 일본 결혼식에서 있었던 한단락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자동차연구소에서 허순길씨의 일본어실력은 정평이 나있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후 국가에서 해마다 일본에 인재를 파견했는데 1984년 자동차공장에 처음으로 명액이 하나 떨어졌고 그 명액을 연구소에 줬다. 너도나도 가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 지도부에서는 일본어시험을 쳐서 실력자를 일본에 보내기로 했다. 결과 허순길씨가 거의 만점으로 1등을 했고 지도부에서는 그를 파견하기로 결정, 동료들은 그저 부러워할 뿐이였다. 이렇게 그는 그해 10월에 대련외국어학원에 가서 전국 자동차업종에서 온 기타 기술일군들과 함께 심도있게 일본어를 학습, 졸업시험에서도 역시 모든 이들을 거뜬히 제치고 1등이라는 성적을 따냈다.

규슈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체류하던 시절의 허순길씨.

1986년 10월부터 1989년 1월까지 허순길씨는 국가교육부의 파견으로 일본에서 유명한 국립대학인 규슈대학 공학부에서 방문학자로 있으면서 학습과 연구를 병행했다.

규슈대학에서 허순길씨는 실험실의 일본 동사자들과 손잡고 두편의 론문을 각각 미국과 일본의 간행물에 발표했으며 일본 공학분야에서 손꼽히는 지도교수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에서의 학습을 끝마치고 연구소에 돌아온 후 허순길씨는 그 즉시로‘CA6102’ 자동차 발동기 질문제를 해결하는 난관공략 임무를 맡았다. 당시‘CA6102’자동차 발동기는 엄중한 질문제가 존재하여 자동차공장의 말밥에 올랐다. 허순길씨는 난관공략소조 성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본인이 장악한 자료와 실험수치를 바탕으로 질에 문제가 존재하는 근본원인과 이를 해결할 구체적인 방법까지 상세히 소개하여 다른 연구일군들의 열렬한 토론을 불러일으켰으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허순길씨는 근 2년 동안 동사자들과 협력하여 1990년말에 최종적으로 자동차발동기에 존재하던 질문제를 원만히 해결했다.

“저는 한 연구과제를 15년 동안이나 해온 적도 있습니다. 1965년에 자동차연구소에 들어와서 삼각형회전피스톤발동기 연구개발소조에 참가했습니다. 선배 연구일군들의 소개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설계도와 견본 발동기가 전무한 상황에서 외국의 한 과학잡지에 실린 그림과 발동기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토대로 시작을 뗐다고 했습니다. 연구일군들은 온갖 난관을 돌파하면서 1963년에 드디여 견본 발동기를 만들어냈습니다. 1970년에 연구소에서는 나젊은 저에게 이 책임을 맡겼습니다.”

지휘봉을 넘겨받은 허순길씨는 동사자들을 거느리고 난이도가 지극히 높은 이 과제를 풀어나갔다.

“1979년에 우리는 과제를 원만히 완수하였고 이 기술은 당시 세계선진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 과제의 총책임자로서 저는 1982년 국가기계공업부로부터 과학기술성과 2등상을 받았습니다. 한 과제를 이렇게 오래도록 한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퇴직 후에도 허순길씨는 2009년까지 꼬박 10년 동안 바쁜 일상을 보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자신의 일본어 능력을 발휘하여 제1자동차공장 중일합작회사에서 일본어 통역과 기술자료 번역을 책임지고 선후하여 120여장의 도면 번역과 단행본으로 58권에 달하는 일본공업표준을 중국어로 번역하였으며 리사회의 동시통역을 하거나 총화보고 등을 일본어로 작성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탄복시켰다. 그 후에도 허순길씨는 제1자동차공장 전동축유한회사 기술부에서 기술고문을 맡고 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부품의 질관리를 책임졌으며 북경화태자동차회사 발동기연구실의 주요 책임자로 있으면서 우리 나라 자동차공업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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