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자’ 김성규씨, 사전 사랑 엮다
사전 편찬자 김성규씨.

2019-11-20 09:17:56

1983년 당시 중앙민족대학 조선어학과 3학년생이던 김성규(1962년생)씨는 시간 날 때마다 훑어보는 《조선말사전(6권사전)》 속의 낯선 외래어에 점차 호기심을 갖게 되였다. 그 호기심을 해결하는 방법도 간단했다. 사전 속의 외래어들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베껴보는 것.

무작정 베끼다 보니 어느 사이 4000여개의 외래어를 접하게 됐다. 워낙 언어면에 애착이 있었기에 그는 그 외래어에 상응한 중국어도 알고 싶어 취미로 외래어 단어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후날의 사전 편찬으로 이어지고 평생 직업으로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대학교 4학년 때이다. 우연 속에도 필연이 있다고 했던가? 졸업실습을 출판사에서 하게 되였고 출판업무를 접촉하면서 외래어사전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마음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1984년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출판업계가 아닌 정부기관에 배치받았다. 그러나 사전에 대한 애착은 가셔지지 않았다.

김성규씨는 낮에는 맡은바 사업을 착실히 완수하는 한편 저녁시간을 리용하여 사전편찬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사전 편찬은 인내력과의 싸움이였다. 표현의 자유가 무한한 문학작품과 달리 사전 편찬은 티끌만한 상상력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였다. 무미건조하게 기계적으로 한페지 한페지씩 쌓아가는 과정이 혹독한 마음 수련의 과정이였다. 출근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6~7시간 정도 사전편찬에 심혈을 몰부은 결과 1년 만에 원고를 마무리지었다.

들뜬 마음으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으나 결국‘퇴짜’를 맞았다. 무어라 간곡하게 당부하던 편집선생의 말씀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공든 탑이 일조일석에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다시는 이런 헛고생을 하지 않겠다고 원고를 트렁크 속에 처박아두고 몇년 동안 필을 놓았다.

그런 와중에 중국과 한국간에 민간래왕의 문이 차츰 열리면서 김성규씨는 신문과 간행물을 통해 다시 낯설은 외래어를 접촉하게 되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사전편찬’이란 소망이 또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중한 교류에 외래어사전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다시금 사전편찬 작업에 뛰여들었다.

원고작성에 이어 조판까지 스스로 마쳤다. 리유는 단순했다. 활자조판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는 여기저기서 모은 돈으로‘386 컴퓨터’ 한대를 마련하고 조판프로그램을 깐 후 직접 조판에 들어갔다. 드디여 《한중외래어사전》이 1996년 료녕민족출판사에 의해 출판됐다. 150만자에 달하는 이 사전은 국내 여러 대학의 조선어(한국어)학과로부터 필수 도구책으로 선정되여 각광을 받았다.

사전 편찬에서 성취감, 행복감을 느낀 김성규씨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 생활을 아예 접고 출판사로 자리를 옮겨 매일매일 사전을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다가 2001년 출판사에서 사직하고 지금까지 자유작가로 지내고 있다.

《한중외래어사전》을 시작으로 김성규씨는 계속해서 2000년 《한중외래어사전(중한대조편)》, 2001년 《영-한-중 컴퓨터용어사전》(공저), 2005년 《뉴밀레니엄 한국어외래어사전》, 2011년 《신편 한국어외래어사전》, 2019년 《포켓 한국어외래어사전》 등 다종 사전을 펴냈으며 큰 공을 들인 《중한대사전》(공저)도 현재 출판을 앞두고 있다.

총 1000여만자에 달하는 사전들을 펴낸 김성규씨는 지금도 매일 사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휴식 삼아 텔레비죤 방송을 시청할 때도 새 단어들이 나타나면 꼭꼭 메모하군 한다. 사전이 나오는 순간에도 세상에 새로운 말들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사전 편찬은 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남자 성공의 절반은 녀자의 공로”라는 말은 김성규씨에게 꼭 들어맞는 말이다. 자신의 모든 정력을 사전 편찬에만 쏟아붓는 김성규씨를 응원하기 위해 그의 안해가 소리없이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았고 짬만 나면 책상에 마주 앉아 원고를 정리해 주기도 했다. 안해의 든든한 뒤바라지가 그에게는 크나큰 힘이 됐다.

사전과 수십년간 인연을 이어오면서 비록 부와 지위 등 세속적인 성공을 얻지는 못했지만 김성규씨는“후대들에게 무언가 남겨줄 수 있는 보람찬 삶을 살고 있다.”면서 자신을 ‘마음의 부자’라고 칭했다.


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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