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동반하는 맛의 기억, 엄마의 음식
청춘리포트

2020-05-13 09:29:27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료리를 잘할 리가 없는데도 우리는 누구나 ‘엄마 손맛’을 잊지 못하고 ‘엄마가 어렸을 적 해준 그맛’을 평생 찾는다. 이처럼 나이가 들어도 잊을 수 없는 ‘엄마가 해주신 음식’은 우리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살찌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특히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집밥보다는 밖에서 간단하게 해결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엄마가 해줬던 음식도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모친절에 즈음해 기억에 가장 남는, 엄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을 소개한다.

손이 컸던 어머니


김명희 (37세·연길)

어렸을 적 어머니는 연길 서시장, 하남시장에서 순대장사를 할 때도 늘 제일 먼저 다 팔 정도로 음식을 맛갈지게 했다. 간혹 남을 때면 연변1중 부근에 가서 학생들에게 팔았는데 우르르 몰려오는 학생이 남 같지 않아서 듬뿍듬뿍 얹어주군 했다.

후에는 작은 식당과 더불어 만두껍질가공부를 운영했는데 음식맛은 물론, 통이 크고 손님들과 잘 어울려서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어머니가 해주셨던 순대와 물만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그립다. 특별히 인상에 남는 것은 시래기갈비찜이다.

만두껍질가공부에는 저녁이 되면 늘 돼지고기를 갈고 남은 갈비들이 넘쳐났다. 어머니는 그 갈비를 듬뿍 넣고 잘 말려두었던 시래기를 넣고 직접 담근 장을 넣어 보글보글 끓였는데 그렇게도 맛있었다.

어머니께서 만드셨던 소고기장졸임은 다른 집과 달랐다. 어머니는 기름 듬뿍 넣고 소고기를 볶다가 그 우에 말린 고추, 말린 장물당콩, 말린 민들레 등을 물에 퍼지웠다가 얹었다. 간장을 부은 후 약불에 물이 거의 졸아들 때까지 졸이고 나면 말린 채소에 양념의 맛이 잘 배여들어갔는데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소고기보다 말린 채소들이 더 빨리 달아나군 했다.

어머니는 또 메추리알을 간장에 졸여서 다시 기름에 구워냈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면서 짭쪼름해서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나도 해봤는데 메추리알은 껍질 발라내는 것부터 너무 손이 가서 애를 먹었다. 만들면서도 다신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부터 앞섰다. 그러면서 어머니께서는 밤을 패가면서 힘들게 해주셨겠는데 맛있어서 자꾸 해달라고 하니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해주셨을 그 마음이 이제야 헤아려졌다.

정작 나도 딸아이가 밥그릇을 싹싹 비우니 번거롭게 느껴졌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또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손맛은 이렇게 대를 물려가는가 보다.

민속음식의 달인인 어머니

리귀화 (36세·연길)

어머니는 부지런한 분이셨다. 때시걱이 끝나고도 늘 주방에서 움직였다. 어머니의 손을 거쳐서 나온 음식들은 하나같이 정갈하고 먹음직스러워서 가족들에게 인기였다.

친정부모와 3대가 함께 살다 보니 나는 지금도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음식을 원없이 먹을 수 있다. 주변에서는 내가 복이 있다고 부러워한다.

어머니는 계절마다 제철음식을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늘 제철음식을 밥상에 풍성하게 올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왔다. 봄철이면 의례 그러하듯이 민들레, 냉이, 달래, 물쑥 등을 뜯으러 가까운 야외로 나갔고 깨끗이 검질해서 데쳐서 랭동해두었다. 그러면 사철 내내 봄나물을 먹을 수 있었다. 평소에도 손이 많이 가는 골무떡, 언감자밴새, 팥죽 등 조선족 민속음식을 자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이 쑥개떡이다.

해마다 단오명절만 되면 어머니는 쑥개떡을 만들었다. 쑥은 만들기 전날 뜯어와서 싱싱한 것을 사용했다. 입쌀가루와 찹쌀가루는 5:1의 비례로 잘 섞었다. 쑥을 믹서기에 간 것과 물, 소금, 설탕을 함께 남비에 넣고 끓인 것을 쌀가루에 넣어 반죽을 한다. 반죽은 50그람 크기로 잘라서 동그랗고 납작하게 빚은 후 삶은 열콩을 곱게 박아준다.

이것을 다시 찜통에 넣고 20분간 찌면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인 쑥개떡이 완성된다.

우리 집은 단오명절만 되면 의례 어머니가 해주신 쑥개떡을 먹는 줄로 알고 있다. 나의 아들도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고 자라다보니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을 먹기 좋아한다. 나도 어깨너머로 하도 보다 나니 눈 감고도 레시피를 달달 외울 수 있다. 내 주변의 또래 주부들은 우리 민속 음식을 좋아는 하지만 정작 만들 줄은 몰라서 나에게 자주 묻군 한다. 이제 나도 어머니의 모습을 본받아 어머니가 우리에게 해주었듯이 우리 아들에게 해줄 것이다.

경제의 주축이였던 어머니

현청화 (39세·광주)

우리 집은 삼남매였다. 삼남매를 키우려니 어머니는 집안 살림과 경제의 주축까지 되여 항상 바삐 돌아쳤다. 나에게 지끔까지도 가끔씩 떠오르는 료리는 어머니가 해주신 감자볶음이다. 한창 자라는 우리 세 남매를 위해서 아마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감자볶음이 가장 쉽고 빠르게 해줄 수 있는 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감자볶음은 항상 기름을 넉넉히 둘러서 밑에 있던 감자가 살짝 구운 느낌이 나게 눌어붙은 게 포인트이다. 그 누룽지 부분이 유난히 맛있어서 언니, 동생과 싸운 적도 많았다.

감자볶음은 등교하는 날 아침에 자주 해줬다. 아침을 대충 먹고 등교하면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배가 고프다고 늘 아침을 풍성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먼저 감자를 얇게 썰거나 혹은 채칼에 썰기도 했다. 물에 10분간 불린 후 남비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파를 볶다가 감자를 넣는다. 감자가 반쯤 익은 다음 소금을 넣고 거의 익을 무렵이면 다진 마늘을 넣어 센 불에 볶았다. 감자볶음은 적당히 눌어붙어 노긋노긋하고 윤기가 자르르했으며 씹는 식감이 쫀득쫀득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붙이고 눈 코뜰새없이 바삐 돌아치다 보니 경상적으로 배달음식을 시켜먹었고 어머니가 해주신 감자볶음은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노곤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집밥이 그리워 날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료리가 바로 어머니가 해주신 감자볶음이였다.

어느덧 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둘째가 두돌이 지난 후 드디여 어머니에게 감자볶음 레시피를 물어 아이들에게 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마 탓인지 기름을 적게 둘러서 그런지 누룽지가 붙는 그런 감자볶음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줘서 그나마 위로가 됐다.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어머니가 그때 해주신 그 료리 뿐인 것이 아니라 그 료리를 맛있게 먹었던 동년의 추억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맞잡이였던 아버지

천정련 (33세·천진)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부부셨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아버지에 비해서 어머니는 당직을 서는 일이 많아서 식사시간을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 일이 적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머니가 해주신 료리보다 아버지께서 해주신 료리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내 동년의 ‘엄마가 해주신 그 맛’은 아버지께서 만들어주셨다.

그때는 한집 건너 외국 로무를 떠났지만 우리 부모님은 올곧이 출근을 하면서 두 자식을 키워냈다. 그러다 보니 아마도 가격이 착한 감자가 밥상에 자주 올랐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감자를 채를 썬 후 물에 헹구지 않고 약불에 오래오래 볶았다. 평가마에 볶으면 그 맛이 안나거나 실패하기 일쑤라 꼭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해서 거의거의 마사져가는 전기채가마에 볶았다. 가끔씩 감자료리에 고추가루를 넣기도 했는데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아마 우리 또래 애들이 누구나 다 자주 먹었고 즐겨먹었던 료리가 감자료리일 것이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감자료리는 우리 동년의 추억 한페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료리인 것 같다.

대학교를 다녀서부터 14년간 외지생활을 하면서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부모랑 가까이에서 사는 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나는 또 자연히 감자료리를 떠올리게 된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아들도 감자료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무리 흉내를 내보려 해도 어렸을 적 먹었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거의거의 마사져가는 전기채가마가 없어서일가… 아니면 아버지의 사랑과 손맛을 닮지 못해서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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