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패션시계의 최강자가 된 연변 사나이
패션시계 20년 개척자 심수시가마시계유한회사 박룡남 리사장

2020-12-02 09:06:56

◆도전, 인생 역경

많은 사람들은 성공의 꿈을 안고 도전한다. 능력은 벼락치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룡남도 실패를 통해 배웠고 역경을 거치며 강해졌다.

1988년 9월 남방 심수역, 19세 시골청년 박룡남은 덜컥 겁이 났다. ‘큰물’에서 배우고 싶다며 호기롭게 기차를 탔지만 난생처음 본 심수시의 인파는 어마어마했다. 그 속에서 자신이 갈길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룡정시 지신진 선교촌에서 태여난 박룡남은 1988년도의 첫 대학입학시험에 락방된 후 어머니가 재학하라고 준 돈 700원을 들고 가만히 친구와 함께 심수행 기차를 탔다. 19세 박룡남을 받아준 곳이 한군데 있었다. 작은 시계줄조립공장이다. 손톱이 까지도록 열심히 일하면서 깡으로 3개월을 버티고 뛰쳐나왔다. 손에 쥔 돈이 없어 그는 3일간 물배를 채웠다. 어쨌든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다시 완구공장에 취직하여 그곳에서 한국 농산물 무역을 하는 한 사장을 알게 되였다. 그게 끈이 되여 심수시수출입회사에 자주 드나들게 되였고 나중에 아예 그 회사 무역1과에 옮겨앉아 사무를 보는 회사원이 되였다. 심수시수출입회사는 정부가 주도하는 대기업이다 보니 활동무대가 엄청 컸고 취급 물량도 어마어마했다. 그때 심수에서 전국적인 무역박람회의가 자주 있었다. 1992년에 있은 박람회에서 한때 연변에서 기업인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연변대외무역국의 책임자를 만나게 되였다. 광동성을 중심으로 하는 주강삼각주지역의 무역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지라 연변에서 온 무역상들에게 박룡남은 인기가 높았다. 눈독을 들이던 연변대외무역회사에서 그를 스카웃했다. 그는 4년 만에 고향땅을 다시 밟게 되였다. 약속 대로 백산호텔에 연변양천무역회사가 차려졌고 그는 전문 조선 관련 무역업무를 보게 되였다. 그는 자기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실 없이 3년간 분주히 돌아치기만 했다. 그는 다시 연변에서의 모든 것을 접고 1995년에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에서 몇개월간 무역 관련 공부를 하면서 사업, 경쟁, 시장을 배웠고 시장조사를 하던중 재고옷장사를 하면 돈이 될 듯한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서 약혼녀더러 심수 해연복장시장에다 매대 하나를 신설하게 하고는 보따리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따리장사로 시작해서 나중에 규모가 커지면서 컨테이너로 실어날랐다. 하지만 재고품이 생기면서 이 장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옷장사를 접고 심수 번화가에 커피숍을 차렸다. 10년 남짓한 기간 가슴을 졸이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도전, 매출액 6억원

1999년에 한국에서 시계사업을 하는 리정균 사장을 만난 그는 그해 9월에 박룡남을 법인으로 한 자그마한 규모의 시계공장을 오픈하게 되였다. 2006년까지 자체의 브랜드가 없이 한국 오다만 취급하는 공장을 가동하였다. 당시 리정균 사장은 ‘줄리어스’라는 브랜드 패션시계로 남대문시장에 전문매대를 두고 있었는데 꽤나 반응이 좋았다.

리정균 사장의 제안으로 박룡남은 줄리어스 브랜드를 중국에 팔아볼 의향으로 큰 결심을 내리고 광주 시계도매시장에 가게를 차렸다. 6개월이 지나서부터 조금씩 줄리어스를 알아주는 고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주식제 경영모식이 도입이 되면서 후불제전략으로 광주를 중심으로 한 여러 매대에 줄리어스가 깔리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줄리어스를 알아주는 고객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3년은 2000만원이 목표였는데 2년도 안되여서 년 2000만원을 돌파했다. 그 뒤로는 기하급수적으로 5000만원, 2012년에 영업액이 1억원을 돌파했다.

박룡남은 한번 통이 크게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새로운 마케팅공략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줄리어스는 과감히 전통을 깨고 2012년부터 토보나 웨이보, 위챗을 리용한 온라인판매를 가동하면서 새로운 판매전략에 열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2015년부터는 한국의 인지도가 높은 인기스타들을 전속모델로 내세워 홍보효과를 극대화하였다. 줄리어스가 대박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2015년에 영업액이 2억원을 돌파하면서 해마다 1억원 이상 뛰여올랐다. 지난해 매출은 5억 8000만원을 넘어선 것이다. 그는 중국 패션시계시장에서 절정에 올랐다. 전통시장 판매와 온라인 판매가 25대75로 온라인판매가 바닥을 치고 일어서면서 올해 8월에는 매출액 7200만원을 돌파했다. 지금 심수시가마시계유한회사(深圳市佳马钟表有限公司)는 1300개의 제품모델을 가지고 있으며 산하 100여개 하청업체에 오다를 주면서 조립 위주의 판매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요즘 타겟마케팅(精准营销)이라는 수단을 리용해 최소한 적은 비용으로 제품홍보를 멋스럽게 하고 있다.

◆도전, 세계시장

업계 선두를 지키며 살아남으려면‘기존 사업의 유지’와 ‘미래사업의 실험’이라는 두가지를 동시에 잘하는‘량손잡이 경영’을 해야 한다.

박룡남은 시계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앞으로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부터 10년의 계획을 짜고 있다. 이미 줄리어스를 브랜드화했고 류통망도 어느 정도 구축해놓은 상황에서 시계만이 아닌 기타 상품을 개발해 줄리어스를 업고 가는 이른바 줄리어스토탈패션화 전략을 세워두었다. 앞으로 시계는 아주 잘나가는 모델만 남기고 거기에 안경, 목걸이, 귀걸이, 우산, 양산, 핸드백, 끌신, 모자, 양말, 티, 반바지… 하여간 려행에 필요한 패션세트상품을 개발해 해외 관광지 공략을 기획하고 있다.

이미 심수시 부근에 선정한 1만 5000평방메터의 사업부지에서 5만평방메터 건물이 건설되고 있으며 수천만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되여 각종 제품의 샘플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의 사업전략에 따라 맨먼저 국내인들이 많이 다니는 해외 관광지가 주무대로 된다. 그는 2년 안으로 말디브, 로마, 프랑스, 이딸리아 등 나라의 관광지에 20여개 줄리어스 전문매장을 차리고 국내에 500개의 전문점을 들여놓으려 한다. 현재 줄리어스토탈브랜드를 각 나라에 상표등록을 하고 있는중이다.

이미 심수시 10대 패션소비품브랜드의 영예를 지닌 줄리어스시계는 2018년에 제8회 중국 시계문화주 혁신브랜드상을 받아안았으며 박룡남 자신은 상해교통대학 현대브랜드전략과 마케팅EMBA반 심수반의 우수학원의 영예를 받아안고 있다. 그는 회사 직원들과 그들 가족의 어려움을 풀어주며 회사 발전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 종업원들을 포상하기 위하여 어머니 명의로 회사에 ‘류숙자기금회’를 설립하고 2016년부터 5년간 매년 백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명쾌한 미래 사업계획을 갖고 있는 박룡남 리사장은 세계시장을 공략하려는 불타는 열정으로 오늘도 왕성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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