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정책이 좋아 생활이 나날이 꽃핀다”

2022-06-01 08:33:30

연길시 진학가두 경하아빠트단지에 살고 있는 림업분야의 퇴직종업원 리계하(68세)는 쾌청한 날이면 어김없이 부근의 휴식광장을 찾아 벗들과 함께 한담도 하고 카드놀이도 즐긴다. 그녀는 어린 손자마저 학교에 입학하여 거의 매일이다싶이 벗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고향이 장춘시인 리계하는 1980년에 화룡림업국의 로동자와 백년가약을 맺고 고향과 멀리 떨어진 화룡시로 시집왔다.

“그때는 집을 사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물론 저축도 없었다. 결혼할 때 단위에서 집을 분배해 주었는데 단위를 그만두지만 않으면 거기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 리계하가 당시 분배받은 집은 20평방메터가량 되였는데 조건이 좋지 않아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웠지만 ‘내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고 한다.

그후 딸이 태여나 하루하루 커가게 되자 리계하는 집이  ‘비좁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 그리하여 리계하와 남편은 생활환경도 개변하고 딸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시구역에 집을 사기로 의논했다.

1987년, 마침내 그들 부부는 여기저기에서 돈을 융통하여 1만원을 주고 시구역에 60평방메터되는 단층집을 삼과 동시에 딸애를 화룡시공립소학교에 입학시켰다.

“역시 단층집이였지만 질이 참 좋았다. 원래 살던 집보다 몇배는 훌륭했다.”

지난 세기 90년대에 들어서서 리계하 부부의 사업에도 천지개벽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국유림구 개혁이 심화됨에 따라 가격경쟁에 의한 산도급, 자연림 보호 프로젝트 등  일련의 조치들이 실시되면서 망망한 림해에서는 목재를 운반하는 요란한 동음과 벌목공들의 절주 있는 영치기 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게 되였다. 대신 국유림구에는 전환 발전의 나팔소리가 울렸고 리계하 부부를 비롯한 대다수 벌목공들은 도끼와 톱을 내려놓고 ‘전면 전환, 전당 창업, 전민 치부’의 물결을 탔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식용균 재배, 인삼 가공, 합판 제조 등 업종 일로 분망히 보냈다. 

‘나무가 있으면 생존할 수 있겠지만 나무가 없어도 치부할 수 있는’ 변혁 속에서 리계하 부부의 수입은 해마다 늘어났다. 그들은 도심에 40평방메터 되는 아빠트를 구매하여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짓고 난방을 하던’ 고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뒤 몇년 사이에는 또 딸애가 순조롭게 학업을 마치고 취직을 하고 가정까지 이루었다. 2005년, 퇴직한 리계하는 연길시로 이사했다. 아예 연길시에 70평방메터 되는 아빠트를 사놓고 퇴직 후의  쾌적한 생활을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런 부담이 없는 리계하는 오늘도 광장에서 벗들과 마음껏 즐기고 있다. 그런 그녀이기에 지나온 경력을 돌이킬 때마다 그녀는 “당의 정책이 좋아 생활이 나날이 꽃핀다.”며 흐뭇해한다. 

정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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