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하강특위 서기 황성식
리광인 2020-01-13 09:05:33
1937년 12월에 중공북만림시성위 청년부장 황성식은 중공하강특위 서기 중책을 짊어졌다. 중공하강특위(中共下江特委)는 송화강 하류지구 항일운동과 항일무장을 지도하는 당의 기관으로서 1936년 9월 18일 주하탕원련석회의 결의에 의해 중공탕원중심현위를 개편하여 조직되면서 중공북만림시성위의 지도를 받았다.
박길송 초기 항일활동과 그의 부인
리광인 2020-01-06 10:57:55
리옥순은 그번 식량구입에 나서지 않았고 최포되지도 않았다. 적들은 박길송에게 흑형을 들이댔으나 죽을지언정 굴하지 않았고 자기의 신분을 폭로하지 않았다.
리광인 2019-12-30 09:15:01
대회 후 수백명 농민형제들은 대렬을 지어 호호탕탕히 배초구의 현정부로 향하였다. 대렬 속에 끼인 박길송 등 영창동 아동단원들은 시위대렬을 따라 “지주의 착취와 압박을 반대한다!”, “감조감식을 실시하자!” 등 구호를 끊임없이 높이 불렀다.
리광인 2019-12-23 09:30:33
바이두(百度)나 기타 사이트에서 항일련군 장령 박길송을 검색하면 박길송의 활동지로 알려지는 흑룡강성 철력(铁力), 경성(庆城) 등지 전문가들 연구자료들이 많이 떠오른다.
동녕 로흑산 특별지부 서기 리경천
리광인 2019-12-16 09:00:16
1936년 4월 5일 우수한 반일회원 김영일이 로흑산 만보만에서 동녕헌병대에 체포되였다. 반일회원 30여명도 역시 붙잡히였다.
리광인 2019-12-09 09:26:55
팔녀는 중국혁명사에 빛나는 영웅집체이고 항일련군 제5군과 제4군의 녀전사로 무어진 항일련군 부녀퇀의 한갈래로 유명하다.
동녕 로흑산 특별지부서기 리경천
리광인 2019-12-01 13:21:54
1 지금으로부터 근 30년 전 1991년 7월, 민족출판사에 의해 출판된 조선민족발자취총서 4ㅡ《결전》에는 제4부분 <소부대활동과 항일련군의 개선>에 <피로 물든 로흑산>이란 리종수 서명글이 오른 바가 있다. 이 글은 지난 세기 30년대 초반부터 40년대 초반까지 근 10년 사이 흑룡강성 동녕현 로흑산과 그 일대 피어린 항일활동을 펼쳐 보이면서 상당한 편폭으로 중공로흑산특별지부 서기 리경천(李擎天,1896ㅡ1941)렬사를 다루어 깊은 인상을 주고있다.
왕우구 출신 항일련군 7군 녀전사 최용희
리광인 2019-11-25 08:43:00
최용희와 그의 남편은 농민협회, 반제동맹,호제회의 회원들과 함께 항일유격대에 량식을 운반하고 일제 '토벌대'의 군사정보를 탐지하여 전해주었다.
중공탕원중심현위 제1임 서기 리춘만
리광인 2019-11-18 09:11:32
탕원, 요하를 중심으로 하는 항일무장의 발랄한 흥기와 피어린 투쟁은 원 탕원중심현위 서기인 리춘만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그는 눈앞의 현실투쟁을 소재로 재빨리 6절로 된 가사 <엄마 울지 마>를 써내고 곡을 달았다.
리광인 2019-11-11 09:01:04
나무는 뿌리가 있고 물은 원천이 있다고 북만의 항일무장 투쟁사에서, 더우기 항일련군 제6군사에서 꼭 떠올려야 할 항일의 제1세대 인물들이 떠오른다.
탕원유격총대 참모장 리인근
리광인 2019-11-04 09:11:50
1932년 4월에 한때 끊어졌던 중공만주성위와의 련계가 이어지고 탕원중심현위가 재조직되면서 배치운이 중심현위서기를 맡고 원 중심현위 서기 리춘만은 새로 개척되는 안방하(安邦河)구위서기로 파견되였다. 이해 5월에 탕원현이 일본침략자들에게 함락되자 탕원중심현위의 사업중심은 무장투쟁에로 전환하였다.
리광인 2019-10-28 09:36:21
가렬처절한 북만의 항일무장투쟁력사를 펼치면 황포 출신으로서 항일련군 제6군의 건설에 디딤돌 역할을 한 공산당원 리인근 렬사가 서서히 떠오른다.
항일련군 재봉대 녀전사 김벽영
리광인 2019-10-21 08:41:21
심산 속에서 먹을 것도 얻기 어려운데 약품은 더구나 볼 수도 없어 부스럼은 보다 기승을 부렸다. 한번은 적토벌대와 조우하게 되였지만 두 눈이 보이지 않아 동지들이 깊은 산속으로 내뛸 때 김백문은 전우들의 소리를 따라 달릴 수밖에 없었다.
2019-10-12 09:04:35
김봉학, 그는 왕우구의 혁명군중이였다
리광인 2019-10-08 08:56:38
30년대 초반 그 험악한 세월에 일본놈들은 맥동에 수비대를 주둔시키고도 모자라 고성자와 련화촌에 자위대를 조직하였고 태양촌과 부암 등지에도 구룡평 자위대를 풀어서 감시하느라 야단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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