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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집거구의 형성과 동북의 개발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1)

  • 2008-08-04 08:33:09
민족은 인류사회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의 산물로서 력사적범주에 속한다. 공동한 지역, 공동한 경제생활, 공동한 언어, 공동한 심리자질 이 4대특징이 바로 민족의 형성표준이다. 이 4대특징은 유기적으로 련계되고 제약하는 통일적인 총체로서 고립적으로 뜯어서 서로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중국조선족은 조선반도에서 형성된 단일민족이며 후에 중국경내에 천입한 과경민족으로서 중화민족중의 소수민족으로 되는 하나의 긴 력사적과정을 거치였다. 기원 17세기 중국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에 조선반도 북부지역의 변강인들은 <<월강죄>>도 무릅쓰고 중국 동북지역에 잠입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860년부터 1870년사이 조선북방지역이 련속 엄중한 자연재해를 입으면서 조선의 대량의 난민이 비법적으로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동북지역에서 황무지를 개간하였다. 동시에 청나라는 동북지역에서 봉금해제를 하고 이민정책을 실시하였다. 기원 1881년 청조는 훈춘에 개간총국을 설치하고 중국동북의 조선이민들이 정착하여 황무지를 개간하도록 비준하였다. 뒤이어 1885년 청조는 두만강이북에 길이 700리, 너비 50여리에 달하는 전문개간구역을 설치하여 연변지역 조선족개간민들의 집거구형성에 공간을 제공하였다. 기원 1890년부터 청조는 조선개간민들에게 새로 입적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비록 많지는 않지만 동북경내에서 조선개간민들이 실제상 토지소유권과 중국국적의 정치적권리를 향수하여 중국공민으로 되였다.

기원 1911년 연변지역의 조선개간민은 무려 2만 4300세대 12만6000여명에 달하여 조선개간민집거구를 형성하였다. 연변지역집거구의 형성은 조선족사회의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 후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선족은 연변집거구를 중심으로 하여 점차 동북의 전반 지역으로 확장되여갔다. 1911년 동북지역의 조선족인구는 무려 25만 6900여명에 달하였다.

조선족은 한족 등 타민족과 함께 동북이란 이 공동지역에서 함께 개발, 건설하고 함께 반제반봉건투쟁을 진행하고 함께 고락을 나누면서 밀접한 교제를 통하여 중화민족의 주류문화와 결합하였다. 따라서 조선민족심리자질도 변화를 가져와 점차 중화민족의 공유한 민족적자질특점을 구비하게 되였다. 한족 등 타민족과 함께 중국과 중화민족의 동질감, 향심력, 응집력을 점차적으로 형성하고 결과적으로는 중화민족대가정의 하나의 비교적 젊은 성원으로, 중국에서 비교적 젊은 소수민족의 하나로 되였다.

조선족이 중국 동북에 천입한후 한족 등 타민족과 함께 동북지역을 공동개발, 공동건설하고 변강을 공동보위하였다. 조선족은 동북지역의 초기 개발과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하였다. 농업은 물론이고 공업의 발전에서도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그중 농업에서 논을 개발하고 벼재배를 한것이 가장 뚜렷하다. 조선족은 벼농사에 능란한 전통을 가지고있는바 논농작의 경험으로 수리조건이 구비된 고장이면 대담하게 대량으로 논을 개발하여 동북지역의 개발에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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