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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전설, 항일장령 무정장군의 인생비화

리함

  • 2016-09-26 08:22:39

사천 로정현 경내 원조대도(해발 2044메터)에서 본 대도하와 량안 풍경. (2011년 7월 25일 현지촬영)

중앙홍군은 사천 면녕(冕宁)에서 류백승을 사령원으로, 섭영진을 정위로 하는 홍군북상선견대를 조직하였다. 선견대의 주체는 양득지(杨得志)를 퇀장으로 하는 홍1군단 1사 1퇀으로 이루어졌다. 1군단 1퇀은 대도하 강행도하 과업을 맡고 대도하를 160여리 앞둔 마을에서 대도하 안순장(安顺场) 강행군길에 올랐다.

홍1군단 1퇀은 하루 낮과 밤의 비속강행군을 거쳐 5월 24일 밤에 대도하 안순장을 10여리 앞둔 곳에 이르렀다. 때는 밤 10시 좌우 되는 시점, 양득지 등이 인차 당지 주민들을 찾아 알아보니 멀지 않은 안순장은 100세대쯤 되는 작은 진에 불과하고 안순장 남안에 2개 련의 적들이 주둔하면서 전부의 배를 없애버린데서 그자들이 강을 건너다니는 배 한척이 있을뿐이였다. 안순장 대안은 적 1개 퇀이 주둔하고있었다. 홍군의 사전의 정찰과 비슷하였다. 1퇀은 안순장 남안의 적 2개 련을 신속히 쳐부시고 안순장나루터를 점령하였다. 한데서 중앙홍군은 홍군북상선견대를 앞세우고 당의 민족정책을 에누리없이 시달하면서 사천 대량산 이족지구를 순조로이 통과할수 있었다. 무정도 홍3군단 팽덕회를 따라 량산 이족지구를 지나 대사하 남안의 안순장에 들어섰다. 안순장(安顺场)은 오늘의 사천 석면(石棉)현 소재지에서 대도하를 따라 12킬로메터 떨어진 안순향 안순촌을 가리킨다.

대도하는 사천과 청해 접경지대의 청해 경내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사품치는 큰 강이다. 대도하가에 다가들면 멀리서도 들리는 그 노호하는 물소리를 들을수 있다. 사천 경내에 흘러든후 장족지구의 대설산 구간을 따라 곧추 남으로 흘러 내리다가 지구급시인 아안시(雅安市) 석면현 구내에서 동으로 꺾어지며 세계적인 락산대불(乐山大佛)로 이름이 난 지구급시 락산시 락산대불가에서 민강(岷江)에 흘러든다. 전하는데 의하면 태평천국의 저명한 군사장령 석달개(石达开)는 이곳 안순장에 이르러 전군복멸의 비운을 겪었다.

력사를 보면 1863년 5월 태평천국의 익왕(翼王) 석달개는 군사를 지휘하여 대도하 안순장에 이르렀고 대도하를 건너 북상하려고 했다. 그러나 청군의 지꿎은 추격과 석달개의 력사의 제한성으로 하여 당지 소수민족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였다. 대도하 남안은 텅텅 비였고 당지 토사(土司)들이 도처에 진을 쳤다. 결과 석달개의 태평천국군은 이곳에서 전군복멸되면서 천고의 한을 남겼다.

국민당 장개석에게는 석달개의 전군복멸이 불어대기 좋은 조건으로 나섰다. 장개석은 수십만 대군을 풀어 홍군을 추격하는 한편 류문휘 등 사천군벌들을 독려하여 대도하를 지켜서게 하였다. 그리고는 뒤에는 금사강이요, 앞에는 대도하라 수십만대군이 좌우로 협공하면 홍군은 날개가 있어도 솟아나지 못한다고, 홍군은 두번째 석달개가 된다고 기고만장했다.

5월 25일 이른 새벽, 퇀장 양득지의 직접적인 지휘하에서 1퇀 2련 련장 웅상림(熊尚林)을 비롯한 용맹한 17명의 용사가 홍군의 강력한 화력엄호하에 배 한척에 올라 대도하를 강행도하하면서 강 대안의 적들을 물리치고 강 대안을 신속히 점령하였다. 그러나 대도하가 그러하듯 이 구간 대도하는 물살이 세고 파도가 높아 도저히 부교를 놓을수가 없는데 배 또한 한척뿐이여서 한번에 40명밖에 태울수 없었다. 또 작은 배 몇척을 구하긴 하였으나 사천군벌 양삼(杨森) 등 부대들이 장개석의 명령으로 대도하를 막아나서고 설악(薛岳), 주훈원(周浑元) 등 부대들이 끈질기게 뒤를 무는데서 3만여명의 중앙홍군이 몇척의 작은 배로 신속히 도강한다는것은 말이 아니였다. 적들을 따돌리고 금사강에 이른 그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튿날 모택동 등 동지들이 안순장에 이르렀다. 1군단 정치위원 섭영진의 회고에 따르면 모택동 등은 선견대 지도동지들을 찾아 안순장 도강의 어려움을 들은후 그 자리에서 홍군대부대가 로정교쪽으로 강행도하하기로 결정하였다. 모택동의 부서는 이미 대도하를 건넌 일부 홍군부대는 대도하 동안(大渡河东岸)에서 로정교로 진군하고 건너지 못한 중앙홍군 대부대는 대도하 서안(西岸)에서 로정교(泸定桥)로 진군하는것이였다. 안순장에서 로정교까지의 로정은 320리 길, 명령은 이틀 반 사이 로정교에 이르도록 되여있었다. 무정소속 홍3군단은 대도하 서안의 중앙홍군 대부대를 따라 행군하였다.

대도하 서안에서의 로정교행 선두부대는 홍1군단 2사 4퇀으로 이루어지고 4퇀은 5월 27일 아침에 먼저 안순장을 출발하였다. 그 뒤를 따라 대도하 동안과 서안을 따라 진군하는 중앙홍군 부대들은 서로 지지하고 성원하면서 북쪽의 로정교쪽으로 나아갔다. 서로의 함성과 손짓으로 대안의 적정을 서로 통보하니 행군길이 보다 유쾌하고 보다 빨라졌다. 로정교탈취과업을 맡은 제4퇀은 지속되는 강행군끝에 5월 29일 아침 6시에 로정교 서안에 이르렀다. 적들이 로정교의 나무판을 거두어버린데서 몇갈래로 이루어진 철삭교가 대도하를 가로지르고있을뿐이였다.

5월 29일 오후 4시 4퇀 2련 련장 료대주(廖大珠) 등 22명으로 무어진 강철의 용사들은 아군 화력의 엄호하에 목숨을 내걸고 철삭교로 된 로정교천험을 돌파하기 시작하였다. 생사의 박투끝에 로정교는 드디여 홍군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따라서 대도하 동안으로 북상하던 1사의 몇개 련들도 로정성밖에 이르러 2사 4퇀의 로정교탈취를 호응하여 나섰다. 로정교 대안의 적 한개 퇀은 전면 무너지고 홍군은 로정교를 날아넘어 국민당 수십만 대군의 포위, 추격과 저지, 차단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홍군을 제2 석달개로 만들려던 장개석의 미몽은 철저히 분쇄되였다.

무정은 홍3군단속에서 홍1군단 2사 4퇀이 피로써 열어놓은 로정교에 올랐다. 6월 2일, 홍3군단을 망라한 중앙홍군 전부가 천험 로정교를 따라 대도하를 넘어섰고 천전(天全), 로산(芦山)과 보흥(宝兴) 방선을 잇달아 돌파하였다. 북으로 북으로 한없이 이어가는 사천땅 장정길에서 조선인 무정도 한걸음 한걸음 행군의 발걸음을 조여가고있었다. 2011년 7월, 필자는 사천땅 중앙홍군 장정길을 답사하면서 쏴~쏴 소리지르며 흘러내리는 금사강 교평도도 돌아보고 금사강 북안 회리현성과 석면현성에도 가보고 대도하 안순장과 로정교에도 가보았다. 로정교 철삭교가 대도하를 가로지른 로정성(泸定城)은 오늘 사천 감자(甘孜)장족자치주 산하 한개 현 현 소재지로 되여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사품치며 포효하며 쏟아져내리는 대도하를 답사하노라니 조선인 무정도 걸어가고 양림도 걸어가고있었다. 북으로, 북으로 한없이 이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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