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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전설, 항일장령 무정장군의 인생비화

리함

  • 2016-11-07 08:37:38

홍1방면군과 홍4방면군 선두부대가 첫 회사한 협금산 북쪽아래 대유향 대유촌의 라마절. (2011년 7월 28일 현지촬영)

교적진은 당년 중앙홍군선견대와 대부대가 협금산 등반을 앞두고 교적라마절과 라마 그리고 장족동포들의 다함없는 지지성원으로 통과한 지역으로서 홍1방면군 기념비와 모택동, 주덕이 머무른 택근촌거주지(泽根村旧址), 량수정 등 유적지들이 자리하고있다고 한다. 한편 숙박지인 야시라(娅西拉)호텔 장족주인을 통하여 협금산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얻을수 있었다. 오늘의 협금산은 물론 주변의 여러 설산들은 5월 이후면 눈들이 전부 녹아버려 실상 설산이 아니며 협금산으로는 세멘트포장도로가 통하여 차량들이 씽씽 넘어다닌다고까지 한다.

눈으로 덮혔다는 대설산-협금산을 어떻게 통과할가고 근심하던 저자로 말하면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다니는 뻐스는 있냐고 물으니 도로의 위험상 문제로 대형뻐스는 자제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이곳 협금산을 꼭 넘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느냐고 다시 물으니 자기가 련계하여 소형뻐스 한대를 마련해주겠다고 나선다. 그러는 장족주인이 고맙기만 하다.

7월 28일 오전 8시 반에 약속대로 한대의 소형뻐스가 호텔앞에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맘씨 좋은 장족 호텔주인과 작별하고 뻐스에 올랐다. 소형뻐스 운전기사는 길따라 저수지를 한바퀴 돌며 저수지의 한 구간 산언덕에 일어선 홍1방면군 기념비와 저수지의 한 변두리에 자리한 택근촌의 모택동, 주덕 거주지에서 차를 세워준다.

소형뻐스는 한참만에 협금산 아래 공지ㅡ찰각파(扎角坝)에 이르렀다. 중앙홍군이 협금산돌파 선서대회를 가지던 자리이다. 찰각파 공지와 바위절벽아래 량수정을 돌아보노라니 협금산넘기로 신심에 차있던 중앙홍군 장병들이 그대로 보이는듯싶었다. 무정이요, 양림 등 조선인 장병들이 막 달려오는 환각에도 빠져보았다.

밭으로 되여있는 공지에는 최근년간 사천지진후 문천사람들이 이주해와 버섯균기지를 꾸리고있었다. 찰각파구간을 벗어나니 신작로 왼쪽가로 깊은 골안이 뻗어있었다. 어구에는 바위돌에 분명 “협금산”이라고 새겨져있다. 운전기사는 당년 홍군대오는 저 왼쪽 골짜기를 따라 곧추 나아가다가 협금산으로 올랐다면서 신작로는 왼쪽 골짜기 오른켠 산을 안고 돌며 굽이굽이 올라야 한다고 동을 돌았다. 과연 소형뻐스는 신작로를 따라 높고 험악한 몇개의 산들을 안고 돌며 협금산 올리막구간으로 접근해간다.

오전 9시 50분경에 소형뻐스는 협금산 정상아래 북쪽산이 보이는 구간길에 이르렀다. 이어 뻐스는 협금산 첫 굽이 따라 산으로 치닫다가 풀로 덮이나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중간 산을 끼고 돌더니 본격적으로 협금산 첫 비탈 굽이굽이 갈지자 길에 들어선다. 그 다음은 좁은 지대를 이루는 또 하나의 갈지자 길, 그 갈지자를 이루는 구간에서 뻐스를 세우고 산아래를 굽어보니 당년 홍군이 이곳 산을 따라 협금산에 오르던 오솔길이 환히 보인다.

소형뻐스는 협금산 정상아래로 산을 넘은 신작로 정상부로 씽씽 치닫는다. 협금산 정상과 정상부아래 일정구간은 과연 눈이 보이지 않고 나무 한그루 없는 푸른 풀로 덮히여 장족들의 숱한 모우가 느릿느릿 다니며 풀을 뜯는다. 홍군장정 시절과 판이하게 다른 평화로운 고산환경이 펼쳐진다. 장족동포들이 생활하는 홍군장정길 어딜 가나 보게 되는 털이 부시시하고 검스레한 모우들이다. 신작로 정상부에는 신작로를 지켜선 양로공들과 지방특산물을 파는 사람들로 한적하지가 않다. 그러나 협금산 정상에는 자주 짙은 안개가 끼며 찬기운을 몰아오며 찬바람이 세여 신작로 정상부도 오래 머무를 곳이 못되였다.

시침은 오전 10시 50분을 가리켰다. 소형뻐스는 협금산 북쪽비탈을 따라 가볍게 내리기 시작했다. 운전기사의 말에 의하면 협금산은 남쪽올리 30킬로메터, 북쪽내리 15킬로메터여서 오를 때는 힘겨워도 내릴 때는 가벼워 반시간이면 족하다고 한다. 평소 2~3시간이면 협금산을 넘어 협금산너머 다른 하나 현소재지인 소금현소재지까지 이를수 있다. 그러면서 운전기사는 협금산 북쪽골을 채 빠지기전 한 장족마을에 이르러 또 소형뻐스를 세우더니 이 마을 이름이 협금산을 뜻하는 협금촌이라고 알려줬다. 210성도(省道) 159킬로메터에 위치한 이곳 마을은 아담하게 꾸려져있고 마을 한복판에 협금산을 넘은 장정군체기념비가 우뚝 솟아있었다.

산을 다 내리니 홍1방면군과 홍4방면군이 회사한 장족마을-대유촌이 나타난다. 그제날 대유촌은 지금 소금현(小金县, 홍군장정 시절의 무공-懋功-지구) 대유향으로 되여있었다. 금방 산을 내린 길가에 세워진 대유회사기념비와 대유회사교를 살펴보고 운전기사의 안내로 언덕으로 된 마을의 한 구간에 자리잡은 이곳 대유라마절을 찾았다. 라마절 정문이 잠겨있어 동네 한 어르신의 허락과 운전기사의 도움으로 정문옆 철란간을 넘어 라마절 마당에 들어가 보았다. 주인 없는 라마절에 들어서기가 저어되여 절의 마당에서 이모저모를 디지털카메라에 부지런히 담아보았다.

이곳 라마절 마당이 1935년 6월 14일 밤, 1방면군과 4방면군의 회사련환야회가 펼쳐졌던 자리, 무정과 조선인 홍군장병들이 련환야회의 참석성원으로 노래 부르며 춤 추며 빙빙 돌던 자리였다. 감수가 새로왔다. 무정, 양림 등 발자취 따라 금사강, 대도하, 협금산을 넘어 대유에 이르렀으니 쉽지 않은 홍군장정 답사길이다.

소형뻐스 운전기사는 교적진에서 생활하는 30대의 석뢰(石磊)였다. 그는 필자를 대유향에서 서쪽으로 떨어져있는 소금현소재지까지 안내하고서야 돌아섰다. 대유향과 소금현소재지 사이는 소형뻐스로 반시간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소금현소재지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직후이니 협금산 남쪽 보흥현 교적진에서 협금산 북쪽 소금현소재지까지 무려 4시간 반이 걸렸다. 도중에 가끔 멈춰서지 않았더면 3시간이면 완전 가능한 거리, 말 그대로 100킬로메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소금현소재지는 홍군장정시절 무공현(懋功县)으로 불리웠다. 청장고원의 동부변연지대, 사천성 서북부, 아파장족챵족자치주 남부에 위치한 이 고장은 장정도중의 홍1방면군과 홍4방면군이 회사한 력사적인 고장이여서 찾을만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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