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서, 또 하나의 비범한 혁명가

2018-10-22 08:51:08

그해 1930년 5.30폭동의 주요발기자와 직접적인 조직자는 박윤서였다. 그는 상급의 지시에 따라 동만특별지부를 협조하여 광범한 조선족 혁명군중들을 붉은 5월투쟁과 5.30폭동에로 불러일으켰다. 동만특별지부에서 성위에 올린 5월 8일의 보고에 의하면 “이번 운동은 완전히 중국당의 호소하에 조직하였는데 운동 가운데서 파벌적 쟁의를 거의 볼 수가 없었다.” 1930년 5월 8일의 이 ‘보고’만 보아도 박윤서의 위인됨을 잘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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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원과 당조직의 급속한 발전

5.30폭동 후 얼마 안되여 투쟁의 시련을 이겨낸 원 조선공산당 여러 파의 당원들이 개별적인 수속을 거치면서 륙속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6월 한달 사이만 해도 당원수는 원래의 10여명으로부터 200여명으로 늘어났다. 1930년 9월에 이르러 연변의 당, 단원이 근 1000명으로 발전하고 5000여명이 혁명군중단체들에 참가하였다. 혁명조직의 영향 밑에 있는 군중은 5만여명에 달했다. 박윤서, 왕경, 한별, 김창일 등 동지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중공당원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당의 기층지부들이 련속부절히 조직되고 중공삼도구구위와 개산툰구위, 평강구위가 륙속 조직되였다. 그 가운데서도 박윤서가 친히 조직한 개산툰당소조, 박윤서와 중공동만특별지부가 지도한 평강벌 량안 당조직 건립과정이 생동한 실례로 다가온다.

력사를 헤아리면 1930년 4월, 박윤서는 중공만주성위 순시원(또는 특파원)으로 연변에 진출한 후  조선공산당 시절 동지들인 김철, 강학제, 소성규 등을 선참 중공당원으로 받아들이였다. 그리곤 김철의 안내하에 개산툰 삼개사 자동에 가서 일찍 자기와 어깨겯고 싸웠던 장자관, 정룡수 등 몇 사람을 당조직에 받아들이고 장자관을 당소조장으로 하는 개산툰의 첫 중공당소조, 5.30폭동 후 연변에서의 첫 당소조를 설립하였다.

개산툰당소조는 4월 하순과 5월 초순 사이의 일이다. 같은 시기 박윤서는 또 화룡현 장인강에 가서 원 조공당조직을 해산한다면서 한패의 동지들을 입당시키고 ‘중공연변당부 장인강지부’를 조직했으나 6월에 이르러 중공동만특별지부 서기 왕경에 의해 취소되였다. 박윤서의 독단적인 행동이 빚어낸 결과였다.

1930년 5.30폭동 이후 중공동만특별지부에서는 폭동의 세례를 겪은 연길현 평강벌 량안(그때 평강벌 구역은 행정구역으로 연길현에 속함)의 원 조공당원들을 제때에 중공당조직에 받아들이기 위하여 특별지부 서기 왕경(조선족)은 박윤서 등과 토의하고 원 조공당동만도 화요파 책임비서이며 중공당원인 김창일, 원 조공당 동만도 엠엘파 간부들인 고하경과 리주현 등 4명으로 평강벌순회소조를 조직하였다. 평강벌순회소조는 왕경과 박윤서 등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았다.

평강벌순회소조는 선참 화룡현 약수동을 찾았다. 약수동은 이해 5월 27일, 박윤서의 직접적인 지시와 동지파견으로 동북에서의 첫 인민정권-약수동쏘베트정부가 수립된 고장으로서 당의 조직토대와 군중토대가 좋았다. 약수동의 특징은 박윤서 등의 영향으로 원 조공당 엠엘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화요파가 소수를 차지하는 것이라 하겠다.

6월 10일, 평강벌순회소조는 약수동의 원 엠엘파당원 리봉삼의 집에서 수십명이 참가한 해당 회의를 가지고 국제공산당의 ‘1국1당’의 지시에 좇아 원 조공당이 엠엘파와 화요파조직을 해산하고 중공당에 합류한다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중공당가입은 집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되는 동지들은 하나하나 개별적 수속을 거쳐야 했다. 이같이 조직된 중공약수동지부는 명실공히 5.30폭동 후 조직된 연변에서의 중국공산당의 첫 기층당지부였다.

평강벌순회소조가 두번째로 발길을 멈춘 곳은 약수동 서쪽 여러개 산너머에 있는 장인강이였다. 남북으로 뻗은 이 수십리 골안을 통털어 장인강이라고 부르는 이 고장은 청일색의 화요파 조공당이였다. 원 조공당원들인 주현갑, 리동선 등 18명은 6월 12일과 13일 사이 개별적 수속을 거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면서 리동선을 지부서기로 하는 장인강지부를 조직하였다. 지부 안에 봉의동소조, 신풍동소조, 부흥평소조 등 3개 당소조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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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동, 장인강에 이어 세번째로 당지부가 조직된 고장은 이도구로 보인다. 정확한 자료는 찾을 수가 없지만 평강구위 제1임 선전부장 황룡문의 지난 70년대초 실증자료에 의하면 이도구지부 같다고 하였다. 이도구지부 산하 당소조는 수성촌, 쟈피거우, 어랑촌 3개 당소조로 나타난다.

상기 세 지부가 해란강 이북이라면 해란강 이남은 룡두산부터 나타난다. 룡두산은 지금의 화룡시 룡수평 서남쪽에 위치했는데 평강벌순회소조가 이 고장에 나타난 것은 1930년 6월 14일이다. 이날 룡두산과 팔가자 쪽 초남구의 엠엘파 계통 동지들이 개별적 수속을 거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녀성혁명가 홍혜순을 서기로 하는 룡두산지부를 내왔다.

이튿날 6월 15일, 대동구(지금의 화수)와 진풍동(지금의 석국)의 원 조선공산당원 20여명이 대동구의 강변 버드나무 속에 모이였다. 그 자리에서 입당심사가 시작되고 한패의 동지들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선거를 거쳐 황룡문이 대동구지부 서기로, 박금택이 진풍동지부 서기로 되였다. 황룡문이 구위간부로 되면서 김응수가 제2임 서기로 되였다.

6월 18일 밤에 대동구장대 봇나무 한그루가 있는 곳에 통지를 받은 소오도구, 내풍동, 수평동, 대오도구, 비암촌 등지의 원 조선공산당원 40~50명이 모이였다. 어떤 자료는 근 100명이 참가하여 100명 회의라고도 하는데 진실한 회의 이름은 중공합류대회였다. 이 밤의 지부별 소조회의와 전체회의를 거쳐 중공내풍동지부가 정식으로 조직되였다. 백창헌이 지부 서기로 추대되고 지부 산하에 내풍동소조, 소오도구소조, 비암소조 등 몇개 당소조를 두었다.

이렇듯 왕경과 박윤서 등이 지도한 평강벌 순회소조의 맹활약으로 1930년 6월 한달 기간에 5.30폭동의 세례를 거친 평강벌 해란강 량안의 조선족 선진분자 70여명이 첫패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당의 12개 기층지부가 조직되였다. 당의 구위를 조직할 토대가 마련되여갔다.

1930년 7월 10일부터 이틀간 연길현 수신향 약수동(오늘의 화룡시 투도진 약수동)에서 제1차 평강구 당원대표대회가 열리였다. 박윤서 등 중공동만특별지부의 동지들과 8개 당지부의 20여명의 당원대표들이 회의에 참가하였다. 주현갑이 조직의 위임을 받고 그번 대표대회를 사회하였으며 중공평강구의 제1임서기 겸 평강구군사혁명위원회 정치위원으로 당선되였다.

중공평강구위를 선후하여 중공삼도구구위, 중공개산툰구위가 고고성을 터치였다. 새 시기에 적응될 당의 통일지도기구를 조직할 문제가 급선무로 나서면서 1930년 7월 하순, 연길현 의란구 남동의 남쪽골짜기 빈집에서 중공연화중심현위를 내오기 위한 당원대표대회가 열리였다. 8월 13일에는 화룡현 평강구 약수동에서 왕경 등 19명(그중 출석대표 9명, 참가자 7명, 방청 3명)이 참가한 제1차 연화당원대표대회가 소집되였다. 대회는 4일간 계속되였는데 7명 위원과 2명 후보위원을 선거하고 연화중심현위를 정식으로 건립하였다. 두번 회의에 모두 참가한 박윤서는 중공연화중심현위 제1임 군사부장으로 위임되였다.

중공연화중심현위의 건립은 동만혁명투쟁의 새로운 발전을 표징한다. 연화중심현위는 건립된 후 연변 지방폭동을 조직할 문제를 중심과업으로 내세우고 현위의 주요성원들은 현내각지에 가서 이 폭동을 지도할 당의 기층조직 확대사업을 활발히 벌리였다. 중공연길구위, 로투구구위, 룡정구위, 하마탕구위, 옹성라자구위, 훈춘구위가 우후죽순마냥 일어섰다. 신생한 연화중심현위는 산하 9개 구위를 지도하게 되였다. 박윤서는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뛰고 또 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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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약수동쏘베트정부

1930년 5월 27일, 동북에서의 첫 인민정권—약수동쏘베트정부가 탄생하였다. 약수동쏘베트정부는 누가 발기하고 조직했을가, 장시기 이래 연변 력사분야에서는 약수동쏘베트의 조직자가 신춘인 것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약수동쏘베트에 대한 필자의 다년간 연구에 따르면 신춘은 표면에 나선 지도자였을 뿐이고 발기자와 지도자는 실상 박윤서였음이 알려졌다.

주지하다싶이 중공만주성위 순시원으로서의 박윤서는 농촌 토지혁명 가운데서 쏘베트정권을 수립해야 한다는 중앙과 성위의 지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기에 그는 붉은 5월투쟁 가운데서 조선공산당 엠엘파 동지이고 금방 입당한 중공당원 소성규와 신춘을 약수동에 파견하여 쏘베트건립에 착수하도록 하였다.

약수동은 투도구 서쪽으로 약 20킬로메터 되는 곳에 있다. 그때 상촌, 중촌, 하촌 등 몇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약수동은 호수가 약 100세대 정도였다. 이곳은 20세기 20년대 초기부터 혁명이 생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그가운데서 박상활과 같은 사람들을 선두로 하는 진보적 청년들은 련이어 혁명에 뛰여들었는데 그들중의 대다수는 룡정 동흥중학교의 학생들이였다. 약수동의 곳곳마다에 표어와 삐라들이 나붙었으며 반제동맹, 농민협회, 청년회, 부녀회 그리고 소년회와 같은 혁명적 군중조직이 선후하여 조직되였다.

약수동에 이미 이러한 혁명의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신춘이 오자마자 온 마을에서 마른 나무에 불이 달리듯이 혁명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5월 1일에 룡정의 수백명 로동자들이 솔선적으로 파업을 단행하여 붉은5월투쟁의 서막을 열어놓자 약수동의 수백명 군중들은 로동자들의 파업에 호응하여 신춘 등의 령도 밑에 즉시 제국주의, 봉건주의를 반대하는 시위행진을 단행하였다. 5월 하순에 이르러 약수동 일대의 투쟁열의는 더욱더 높아갔다.

5월 27일에 약수동 그리고 그 린근 마을의 군중들은 약수동 상촌의 어느 집 큰 뜨락에 모여 쏘베트정권을 세웠다. 이 대회에서 신춘은 보고하면서 약수동쏘베트정권이 수립된 의의와 그 력사적사명을 이야기하였다. 회의 후에 성세호대한 시위행진을 단행하여 조직된 농민들의 큰 힘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시위행진은 3일 동안 지속되였다. 천지개벽의 그 나날에 군중들은 극악무도한 친일주구를 몇놈 처단하고 지주와 고리대업자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빈곤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또 토지문서와 고리대문서를 불살라버리였다.

약수동쏘베트정권의 수립은 동만 붉은5월투쟁의 고조를 상징한다. 쏘베트수립기간에 박윤서는 소성규, 신춘과 같이 수차 약수동에 가서 쏘베트정부수립을 지도하고 이끌었다. 그만큼 약수동쏘베트정권은 연변 뿐만아니라 전 동북에서도 첫 인민정권이였다. 약수동쏘베트정부의 성원들은 박윤서, 신춘 등의 지시와 지도하에서 쏘베트의 령도하에 있는 광범한 농민군중들과 농민무장대오를 령솔하고 투도구로 진군하여 기세 드높이 일어난 해란강량안 5.30폭동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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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하반년의 중공중앙과 만주성위, 동만특별지부의 해당 문건들을 찾아보면 투쟁의 중심과업은 폭동이고 또 폭동이였다. 당내 ‘좌’경로선의 필연적 산물이였다. 하기에 박윤서는 약수동쏘베트정부가 수립된 후 동만특별지부를 도와 평강벌 기타 지방과 개산툰일대에 쏘베트정부를 세우려고 동분서주했지만 결과를 보지 못하였다.

이에 비추어 중공동만특별지부에서는 만주성위 순시원 박윤서의 발기하에 국제반제운동기념일인 8월 1일을 계기로 돈화에서 대규모의 8.1길돈폭동을 단행하기로 결정하고 박윤서를 총지휘로 하는 ‘8.1길돈폭동총지휘부’를 내왔다. 헌데 1930년 12월 17일의 ‘중공동만특위통지 제6호’는 그가 8.1길돈폭동에서 성위명의를 절취하여 돈화폭동을 지휘하였다는 것을 첫째 ‘죄상’, 주요한 죄상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실은 어떠한가, 박윤서는 성위순시원 또는 특파원의 신분과 폭동총지휘의 신분으로 돈화에 나타나고 ‘중공동만특별지부 길돈선림시당부’의 이름으로 활동했지 만주성위의 이름을 빌지 않았다.

실상 8.1길돈폭동은 박윤서 개인이 아니라 동만특위에서 조직한 폭동이였다. 1930년 8월 1일에 동만특별지부에서는 길돈선림시당부의 이름으로 ‘8.1길돈폭동’격문을 내여 ‘결사혈전’으로 ‘개정권’을 짓부시고 ‘우리 로농의 정부’를 수립하라고 호소하였으며 이날에 또 8.1길돈폭동 구호를 제출하였다. 8.1길돈폭동이 박윤서의 일방적인 행동이 아니고 동만특별지부의 결의로 행동한 것은 불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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