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의 수령 민족의 영웅 류지단

2019-03-11 15:44:45

류지단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의 가방에는 담배 6대와 반토막짜리 연필 한대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무런 재산도 남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혁명에 참가하면서 모든 재산을 적들에게 빼앗겼지만 가장 진귀한 정신적 유산을 우리한테 남겨주었다. 즉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하는 사상과 군중과 밀접히 련계하고 모든 것은 실제로부터 출발하는 작풍 그리고 또 치욕을 참고 무거운 책임을 지며 전반 국면을 돌보는 고귀한 품성이다.” 영웅 류지단의 딸 류력정이 아버지 탄신 100돐 기념 문장에 적은 글귀이다.

류지단은 1903년 10월 섬서성 보안현(오늘의 지단현) 금탕진에서 태여났다. 1922년 유림중학교에 입학했고 1924년 겨울 중국사회주의청년단에 가입했다. 1925년 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그해 겨울 당의 파견을 받고 황포군관학교 제4기 학생으로 공부했다. 1926년 가을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북벌전쟁에 참가했다.

1927년 대혁명이 실패한 후 류지단은 중공 섬서성위에서 비밀교통사업을 책임졌다. 1928년 4월, 위화봉기에 참여하고 령도했으며 서북로농혁명군 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았다. 그해 가을, 중공 섬북특위 군사위원회 서기를 맡고 섬감변에서 병사운동사업에 종사했다. 

1931년 10월, 류지단과 사자장 등은 서북반제동맹군을 건립하고 부총지휘관을 맡았다. 후에 중국로농홍군 섬감변유격대로 개편하고 류지단이 총지휘를 맡았으며 조금, 남량을 중심으로 하는 섬감변혁명근거지를 개척했다. 그후부터 섬감변 홍군림시지휘부 부총지휘 겸 참모장, 홍26군 42사 사장, 중공 섬감변군사위원회 주석, 섬북혁명군사위원회 주석을 력임하고 섬북, 섬감변 두개 쏘베트구역을 하나로 련결시켰으며 장정 후에는 중공중앙과 각지 북상 항일홍군들의 락착점으로 되였다.

1938년 9월, 류지단은 홍15군단 부군단장 겸 참모장을 맡았고 로산전역에 참여하고 지휘하였다. 후에 북로군 총지휘 겸 제28군 군장, 중공중앙 소재지 와요보경비사령을 맡았다. 그는 경상적으로 부대를 교육하여 전반 국면을 돌보도록 하였고 중공중앙의 령도와 파견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였다. 그의 영향하에 섬북홍군과 중앙홍군은 한결같이 단결하여 공동으로 적과 싸웠다.

1936년 3월, 류지단은 홍28군을 거느리고 동정전역에 참가했고 산서성 서북에 진출해 적들을 련이어 물리쳤다. 4월 14일, 류지단은 중양현 삼교진전투에서 전선에 직접 나가 적정을 정찰하다가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33살밖에 안되였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중공중앙과 섬감녕변구 정부는 보안현을 지단현으로 개명하기로 결정했다. 1940년, 중공중앙은 서북국과 섬감녕변구 정부가 류지단 고향에 렬사릉원을 건설할 것을 지시했다.

2017년 3월, 연안시 지단현에 위치한 류지단렬사릉원은 전국 애국주의교육 시범기지로 명명되였고 해마다 청명절과 렬사기념일이 되면 많은 당원간부와 군중,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와 선렬을 추모한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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