렬화 속에서 단련된 대장부 리학충

2019-03-13 08:52:52

리학충

88년 전, 일본군국주의는 9.18사변을 발동하여 우리 나라 동북지역을 점령했다. 민족을 생사존망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가면서 헌신적으로 싸웠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정치부 주임 리학충이 바로 그중의 한 사람이다.

리학충은 또 리종학이라고도 부르며 1910년에 산동 액현에서 태여났다. 일찍 생계를 위해 동북에 갔고 후에 길림 등지에서 혁명활동에 종사했다. 1931년 9.18사변 후 쏘련에 가 학습했으며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4년 겨울, 리학충은 귀국하여 사업했다. 1935년 5월 30일,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이 정식으로 설립되였고 왕덕태가 군장, 위증민이 정치위원, 리학충이 정치부 주임을 맡았다. 리학충의 주관하에 제2군 정치부는 <민중들에게>과 <각>을 발표하여 광범한 군중과 인민혁명군 등 항일무장들이 련합하여 여러가지 반일투쟁을 전개하고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여 항일구국의 위대한 임무를 실현할 것을 호소했다.

그때 항일무장근거지는 투쟁형세가 아주 준엄하였다. 5월부터 일본침략자들은 많은 병력을 집결하여 근거지에 대해 대규모의 봉쇄와 소탕을 진행했다. 적군의 봉쇄를 타파하기 위해 더욱 많은 항일력량을 집결하여 설립된 지 얼마 안되는 제2군은 서부정벌을 시작했다. 리학충은 주동적으로 청원하여 두개 련의 150여명을 거느리고 원정팀을 구성하고 양정우의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과 련계가 닿기를 기대했다. 간고한 행진과 여러차례의 피어린 전투를 거쳐 10월초 리학충의 원정부대는 몽강 나얼훙에서 양정우부대와 승리적으로 합류하였다. 동만, 남만 두개 유격구는 그때로부터 긴밀한 련계를 가졌다. 이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과 남만성위의 설립을 위해 훌륭한 토대를 닦았다.

1936년 3월,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은 동북항일련군 제2군으로 개편되였고 리학충은 정치부 주임을 맡았다. 그해 8월, 그는 부대를 거느리고 료녕성 무송현 대감장 병기공장에서 사업을 전개하다가 일본군 ‘토벌대’의 습격을 받았다. 리학충은 부대를 지휘하여 영용하게 반격하였고 치렬한 싸움과정에 리학충은 중상을 입고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26살밖에 안되였다.

1985년 7월, 중국항일전쟁 승리 40돐이 되는 해에 무송현인민정부는 푸르른 송백나무로 둘러싸인 양지쪽에 리학충을 위해 기념묘비를 세웠다. 지금까지 이곳은 이미 당지의 홍색교양기지로 되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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