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지구에서 외적을 물리친 조일만

2019-03-13 15:08:12

조일만

지난해 9월 17일 저녁, 대형 화극 ‘조일만’이 의빈학원에서 공연되였다. 500여명 되는 렬사 고향의 사생들이 현장에서 렬사의 영웅사적에 감동을 금치 못했다.

사천성 의빈시 서주구(지금의 의빈현)와 사천인민예술극단에서 공동으로 창작한 대형 화극은 5년간의 노력끝에 2016년 8월 성도에서 첫 공연을 선보였고 지금까지 이미 북경, 흑룡강과 사천성에서 70여차례 공연했다.

조일만은 원명이 리곤태이며 1905년 10월 25일 사천성 의빈현의 한 지주가정에서 태여났다. ‘5.4’운동 폭발 후 조일만은 《향도》, 《신청년》, 《부녀주간》 등 혁명간행물을 열독하였고 새로운 혁명사상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1923년 겨울, 조일만은 중국사회주의청년단에 가입했고 1926년 여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같은해 11월 무한중앙군사정치학교에서 공부했다.

1927년 9월, 조일만은 쏘련에 가서 모스크바 중산대학에서 공부했고 그 이듬해 귀국한 후 의창, 남창과 상해 등지에서 비밀리에 당의 사업을 전개했다.

1931년 ‘9.18’사변후 조일만은 동북지역에 파견되여서 항일투쟁을 발동했다. 그는 선후로 만주총공회 비서, 조직부장, 중공 빈강성 주하현 중심현위 특파원, 철북구위 서기를 력임했고 로동자들을 령도해 파업운동을 진행했으며 청년농민 반일유격대를 조직해 적들과 싸웠다. 그녀는 문무를 겸비하였고 지혜가 뛰여났다. 로동자, 부녀들의 각오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녀는 종종 일부 문예작품을 창조하였고 불법간행물을 통해 발표하였다.

1935년 가을, 조일만은 동북항일련군 제3군 1사 2퇀 정치위원을 맡았다. 11월 기간, 한 산간지대에서 일본군, 괴뢰군과의 전투에서 조일만은 부대의 포위토벌을 엄호하다가 몸에 중상을 입었으며 치료하던 중에 일본군에 발각되여 재차 부상을 입고 혼수상태에서 체포되였다.

일본군은 조일만에게 혹형을 들이댔지만 그녀는 죽을지언정 굴하지 않았으며 일본군의 침략죄행을 호되게 규탄하였다. 자백을 얻기 위해 일본군은 조일만을 병원에 보내 집중간병치료를 받게 하였고 병원에서 그녀는 항일구국의 도리를 적극적으로 선전하였고 간호사와 감시인원을 교양했다. 1936년 6월 28일, 조일만은 병원 간호사와 감시인원의 방조하에 병원을 벗어났지만 아주 빨리 적들에게 다시 체포되였고 더욱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1936년 8월 2일, 조일만은 압송되여 주하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최후의 시각을 알아차린 그녀는 사형을 앞주고 ‘붉은기 노래’를 높이 불렀다.“민중의 기발, 진붉은 기발은 전사의 시체를 감싼다. 시체는 식지 않았지만 붉은 피는 기발을 물들인다…”조일만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중국공산당 만세!” 등 구호를 높이 웨치며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나이는 31살밖에 안되였다.

조일만을 기념하기 위해 할빈시는 한 주요거리를 조일만거리로 명명하였고 그의 고향 의빈시에서는 조일만 생가, 조일만기념관 등을 건설하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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