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감옥가> 작사가 리진과 녀동생 리신옥

2019-03-25 08: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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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년대 연길 국자가의 하남다리 어구에는 부르하통하에 흘러드는 악취 풍기는 시궁창이 있었다. 1934년 여름의 어느 날 부근 연길감옥의 죄수들이 이 시궁창을 가셔내게 되였다.

그 무렵에 ‘기모노’를 입은 한 일본 ‘귀부인’이 계집애의 손을 쥐고 한들한들 걸어왔다. 뒤에는 털에 기름기 반지르르한 개 한마리가 꼬리를 살살 저으며 따랐다. 일본 ‘귀부인’은 길가의 떡장사한테서 기름구이 하나를 달랑 사들고 개를 먹이려다가 그만 땅에 떨구었다. 개가 주둥이를 가져가자 일본 ‘귀부인’은 황급히 개를 쫓아버리고 기름구이를 나무꼬챙이에 꿰여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는 죄수들한테 던졌다. 그리고는 오만하게 서서 죄수들 일거일동을 지켜보았다. 얼결에 기름구이를 받아쥔 한 죄수는 한동안 어쩔 바를 몰라했다.

이때 쇠고랑이를 차고 손에 삽을 들고 오물을 퍼내고 있던 ‘죄수’ 김명주는 격분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앞뒤를 잴 사이도 없이 똥물을 퍼서 오만한 일본 ‘귀부인’한테 련속 들씌웠다. ‘귀부인’은 눈깜짝할 새에 날벼락을 맞아 온몸이 오물범벅이 되였다. ‘귀부인’의 호위병과 현장의 리간수가 뒤늦게 달려들어 가죽채찍질을 해서야 명주는 삽질을 멈추었다.

명주는 감옥에 끌려가고 리간수는 상급에 단단히 혼났다. 리간수는 그 분풀이를 명주한테 들씌웠다. 죽도록 두들겨맞은 명주는 옴몸이 피투성이 된 채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이 소식은 옥에 갇힌 우리 동지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감옥의 지하당조직에서는 못된 짓만 일삼던 리간수를 ‘승냥이’라고 점찍고 몰아낼 준비를 하던 차였다. 이들은 저녁부터 단식을 선포하고 감옥당국에서 김명주를 치료해주고 리간수를 철직시키며 앓아누운 수인들을 치료해주며 수인대우를 개선하고 음식위생 및 급식의 량을 늘이라는 세가지 조건부를 들이댔다.

단식투쟁은 벌써 3일째 계속되였다. 허나 ‘승냥이’는 의연히 거들먹거리며 ‘죄수’들을 비웃기만 하였다. 명주의 상처는 더해만 갔다. 한데서 같은 방의 공산당원 김훈이 수건을 물에 적셔 명주의 이마에 올려놓았다. 김훈도 별로 나은 데가 없었다. 혹독한 고문과 장질부사에 시달리며 운신도 바로 못하던 그도 식은땀만 흘리다가 급기야 까무러치고 말았다.


2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명주는 새벽녘에야 겨우 소르르 풋잠에 들었다가 귀맛 당기는 조용한 노래소리에 잠을 깼다. 곁에 누운 김훈이 흥얼거리는 노래소리였다.


바람거친 남북만주 광막한 들에

붉은기에 폭탄쥐고 날뛰던 몸이

연길감옥 갇힌 이후 몸은 시드나

혁명에 끓는 피야 언제 식으랴


누군가가 다음 절을 이어 받았다.


간수놈이 웨치는 소리 높으고

때마다 먹는 밥은 수수밥이라

밤잠은 새우잠 그리운 꿈에

나의 사랑 여러 동지 그리웁고나


옆칸에서 구슬픈 목소리가 화답한다.


기다리던 면회기가 돌아오면

슬프다 그물 속에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치는 눈물 뿐일세

간수놈이 가라 하니 서러운 눈물


또 다른 칸에서 격분에 찬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금전에 눈 어둡고 권리에 목매인

군벌패와 추수뱅이 아편쟁이들

꿈속에 잠소리로 무리한 판결

청춘을 옥중에서 시들게 한다


여러 감방이 같이 부른다.


너희는 정이 없는 강도놈이요

우리는 평화사회 찾는 혁명군

정의의 총칼은 용서 없나

정당히 판결하라 증인이 누구냐


온 감방이 목소리를 합친다.


두 발에 족쇠 차고 자유잃은 몸

네 고문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옛날에 붉은피를 많이 뿌렸고

일후에 전세계를 정복하리라.


노래소리는 성난 파도같이 온 감방을 마구 뒤흔들어놓는다. 우렁찬 노래소리에 잠을 깬 간수들은 덴겁하여 앞뒤로 달아다니며 왁작 고아댄다. 허나 무슨 소용 있으랴, 노래소리는 오히려 점점 고조되여갔다. 명주도 어언 노래 속에 도취되여버렸다.


일제놈과 주구들아 안심 말어라

너의 세력 강하다고 안심 말어라

70만리 넓은 들에 적기(赤旗) 날리고

4억만의 항일대중 돌격한단다


동지들은 7절로 된 <연길감옥가>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렇다면 <연길감옥가>는 누가 지은 노래일가? 이를 알자면 길림성제4감옥인 연길감옥을 살펴봐야 한다. 당년 감옥에는 리진(李进, 일명 李善才)이라고 부르는 한 공산당원이 갇혀있었는데 <연길감옥가>는 그가 1931년에 지은 노래이다.

리진은 왕청현 대감자사람이다. 그는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의 영향 밑에서 어려서부터 혁명의 뜻을 키워오다가 1930년 겨울에 연길감옥에 압송되였다.

그 시절 연길감옥은 실상 길림성제4감옥으로서 오늘의 연길시 연변예술극장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언제인가 예술극장을 짓고 철란간을 두르느라고 기초자리를 파헤쳤을 때 필자는 숱한 기와와 벽돌들이 그대로 파묻혀있다가 드러난 것을 직접 목격하고 숭엄한 기분에 잠겼던 일이 어제런 듯싶다.


3


당년 연길감옥에는 수많은 혁명자들과 공산당원들이 갇혔었는데 그들 모두가 연변 각지에서 혁명투쟁에 전력하다가 체포된 동지들이였다. 원 중공왕청현위 제1임서기 김훈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1931년초에 김훈은 옥중에서 ‘중공연길감옥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김훈이 서기를 맡고 리진이 조직위원을 맡았다. 이해 여름에 또 파옥투쟁위원회가 조직되였는데 리진은 이 위원회의 주요책임자의 한사람이였다. 그때 리진은 약 25살의 피끓는 한창 나이였다.

리진은 연길감옥에 투옥된 후 역한 냄새가 코찌르는 감방, 우중충한 감옥담장을 바라보며 동지들과 이렇게 말했다.

“연길감옥에 갇혀 몸은 시드나 혁명정신이야 어찌 시들 수 있겠소!”

격정에 넘치고 시맛이 도도한 열혈청년의 말이였다. 그 뒤 리진은 이 어구를 살리고 보충하여 여러 절로 된 <연길감옥가>를 손수 지어냈다. 혁명에 대한 그의 피타는 마음을 그대로 노래에 담았었다.

때는 1931년이였다. 그 후 리진은 악형의 시달림과 장질부사에 모대기다가 옥중에서 눈을 감았다. 이는 그 시기에 연길감옥에 갇히였던 당년의 녀항일투사 차정희 녀사가 1981년 초 룡정에서 필자에서 손수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 후 필자는 차녀사한테서 몇번이고 감옥내 형편과 우리 동지들의 형편을 자상히 들었었다.

1931년초에 중공동만특위에서는 연길감옥에서 시달리고 있는 동지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이 간고한 과업을 중공연길구위에 맡기였다. 연길구위 서기 조기석은 공청단연길구위 서기 유종걸(즉 유영효)과 같이 구출방안을 면밀히 짜고 든 뒤 구체적인 책임을 유종걸에게 위임하였다. 당년의 이 유종걸이 바로 차녀사의 남편 유영효였다. 필자는 두 분한테서 <연길감옥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행운을 가졌다.

리진이 <연길감옥가>를 지은 후 노래는 온 감방에 퍼져 수많은 혁명자들을 투쟁에로 고무했다. 그래서 단식투쟁 때 김훈이 선창하자 온 감방이 목소리를 합칠 수 있었던 것이다. 단식투쟁은 동지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 후 김명주 등은 <연길감옥가>를 부르며 선두에서 파옥투쟁을 줄기차게 벌리였고 무장파옥에 성공하여 우리 항일근거지로 달려갔다. 이는 1935년 음력 5월의 일이다. 이에 앞서 김훈은 1934년 겨울에 적들에게 비밀리에 살해되고 리진의 녀동생 리신옥은 김영신, 차정희 등과 함께 1932년 3월에 대사령을 받고 감옥에서 풀려났다.

이는 1990년말에 정리한 글ㅡ《리진이 지은 <연길감옥가>》로서 그 시절의 《예술세계》지에 실리기도 하였다.  <연길감옥가> 작사자를 처음 밝힌 글이였다. 그러면서도 리진 렬사와 리신옥의 유가족을 찾지 못한 데서 이들 오누이 가족사와 래력을 알 수가 없었다. 깊은 유감으로 남아있었다.


4

어언 29년 세월이 흘러갔다. 항일녀투사 차정희 녀사분으로부터 리진과 리신옥 이야기를 들은 때로부터라면 38년 세월, 그러던 올해 2019년 1월 하순에 이르러 기적같이 리진 항일렬사와 리신옥 항일녀투사 유가족이 필자 앞에 나타나니 정녕 꿈만 같았다.

때는 지난 1월 26일 오후, 연길에서 연길감옥투쟁과  관련된 항일련군 출신 김명주의 딸 김진옥씨(1956년생)와 만남을 가지였다. 서로의 이야기에서 지난날 연길감옥 탈옥투쟁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이가 있어 지금껏 관여하지 않았지만 지난 90년대 초반에 <연길감옥가> 작사자 리진과 노래 유래를 밝혀 세상에 알린 첫사람이 나라는 것이 알려졌다. 그랬더니 김진옥씨는 대뜸 짙은 흥미를 가진다

“그래요? <연길감옥가>를 오랜 전에 벌써 알고 글까지 써냈네요.”

“우리 력사와 씨름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1981년초면 연변대학 조선문학부 재학시절인데, 그때 룡정에 계시는 녀항일투사 차정희 할머니를 자주 방문하게 되였습니다. 차정희 할머니면 당년 연길감옥에 갇힌 8명 녀항일투사중 한분이여서 옥중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연길감옥가도요?”

“네에, 차정희 할머니한테서 연길감옥가 유래와 그 작사자 리진, 리진의 녀동생 리신옥 등도 알게 되였습니다. 리신옥은 왕청 대감자 분이고 8명 녀항일투사의 한분이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제날 연길감옥과 연길감옥 탈옥, 탈옥지도자 김명주를 두고 서로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가운데서 지금껏 여느 연구가들도 잘 모르는 연길감옥내 항일투쟁연구는 김진옥씨의 흥미를 끌 만도 하였다. 그 주요 흥미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연길감옥내 관련 당년 동아일보 많은 뉴스들

-1935년 6월 연길감옥 파옥 관련 동아일보 련속 뉴스들

-연길감옥가 작사자 리진과 그의 녀동생 리신옥 연구

-중공왕청현위 제1임 서기이며 중공연길감옥위원회 서기인 김훈과 왕청에서의 김훈의 상세한 활동 내막자료

-김훈의 부인인 최신근 녀사 방문취재

-사람들이 모르는 연길감옥 첫 파옥 성공자 백창현 등

-연길감옥 투옥자인 중공훈춘현위 제1임 군사부장 신춘

-연길감옥 투옥자들인 화룡현 출신의 항일투사들

-연길감옥내 8명 녀항일투사 옥중투쟁과 옥중 전후 투쟁

-연길감옥 밖 공청단연길구위 파옥지도투쟁 내막

… …


대략적이나마 연길감옥투쟁 연구상황을 알게 된 김진옥씨는 거의 모두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 항일력사 근 40년의 끈질긴 연구 속에서 남들이 잘 모르는 연길감옥투쟁 연구는 이미 몇부의 새책으로 써낼 수 있는 분량을 이루었으니 흥분할 만도 하다. 언젠가는 책으로 펴내리라고 마음에 두었더니 그 시기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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