렬화속에서 영생한 항일영웅 조이평

2019-05-07 15:32:54

렬화속에서 영생한 항일영웅 조이평


조이평렬사의 기념비는 하남성 루하시렬사릉원에 우뚝 솟아있는데 이곳은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이고 측백나무가 무성지다. 조이평의 영웅사적은 또 멀리 떨어진 산동성 료성시의 류리사전투기념관에도 기재되여있다. 해마다 청명절이면 이 두 곳의 인민들은 분분히 기념행사를 갖고 선렬에 대한 추모와 경모의 뜻을 표달하고 있다.

조이평 렬사

조이평은 본명이 조렴월이다. 1910년 하남 언성에서 태여났다. 1925년에 팽설풍의 소개로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했고 1926년에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되였다. 그후 그는 언성평민소학교에서 글을 가르치는 교원신분의 엄호하에 당원을 발전시키고 당조직을 건립하였으며 농민협회를 설립하고 농민운동을 전개했다. 대혁명이 실패한후 섬서, 산동, 하남 등지에서 소학교와 중학교 교원 직업의 엄호하에 당의 지하사업에 종사했다. 1935년, 기현사립 대동중학교에서 국문을 가르치면서 맑스-레닌주의를 전파하고 항일구국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안사변이후 중공중앙 북방국 화북련락국 서기 팽설풍의 ‘교편을 내려놓고 병사들이 항일전쟁에 참가하도록 각성시켜야 한다”는 요구에 좇아 조이평은 로서북의 범죽선부대에 들어가 비서과 문서를 담임하여 항일구국운동을 전개하고 공산당의 항일주장을 선전했으며 국민당정부가 실시하는 ‘외적을 물리치자면 먼저 국내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정책의 반동실질을 폭로했다. 조이평 등 공산주의자들의 추동하에 범죽선은 공산당과 합작하여 항일하는 밝은 길로 나아갔다.

1937년말, 조이평은 중공 로서북특별위원회에 가서 사업하면서 선후로 로서구 당위 위원, 비서장 겸 통전부 부장, 제6구 정치부 비서장을 력임했으며 항일민족통일전선을 확대하고 로서북항일근거지를 공고,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당중앙과 모택동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그는 중공 로서북특별위원회 기관지 ‘항전일보’와 리론간행물 ‘선봉’ 월간지의 사업을 주관하였으며 사회평론위원회 위원을 맡고 당의 방침, 정책에 따라 신문지상에 평론을 발표하여 신문을 당의 항일주장을 선전하고 인민들의 투지를 고무하고 적들을 타격하는 유력한 무기로 만들었다.

1939년 3월, 중공 로서구위원회 지도기관은 팔로군 129사 선견종대를 따라 관현, 관도 지역으로부터 동쪽으로 진격했다. 5일 새벽, 치평 류리사일대에서 일본군과 조우했다. 치렬한 싸움은 저녁 늦게까지 계속되였고 조이평은 여러 곳에 총탄을 맞고 말에서 떨어지는바람에 일본군에 포로되였다. 일본군은 그를 나무에 매달아놓고 채찍으로 때리고 날창으로 찔렀다… 잔혹한 적들의 앞에서 조이평은 조금도 굴하지 않았으며 일본침략군의 야만적인 중국침략만행을 호되게 질책했다. 화가 머리꼭두까지 치민 일본군은 그의 온몸에 휘발유를 치고 불을 질렀다. 세찬 불길속에서 조이평은 마지막 힘까지 다해 ‘일본놈들을 타도하자!’, ‘중국공산당 만세!’를 높이 웨치였다. 잔인한 일본군은 또 날창으로 그의 입을 찔렀다...... 조이평은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29살이였다. 

신화통신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吉ICP备09000490号 | 吉新出网备字005号 | Copyright © 2007-201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