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침략자와 견결히 맞서 싸운 등영요

2019-05-08 16:20:31

호남성 동부 산간지역 차릉현에서의 항일전쟁이 지난지도 70여년이 되였지만 당지의 인민들은 영웅렬사 등영요를 깊이 추모하고 있다.

등영요는 등영휘라고도 불리웠으며 1912년에 차릉현 요피진 대충촌(오늘의 요로진 진무촌)에서 태여났다. 가정생활형편이 어려운데다 부모가 일찍 병으로 사망하면서 어린 나이에 고아로 되였다.

등영요 렬사

1927년 ‘마일사변’후 등영요는 공산당원 등유우의 인도하에 혁명활동에 뛰여들었다. 1928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했으며 193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1년, 공청단 차릉현대표대회에서 비서장으로 당선되였고 후에 차릉현쏘베트정부의 총무처장을 맡았으며 1933년 홍군에 참가했다. 일찍 군단 정치부 문서, 총무처 처장, 군단 선전대 대장, 정치부 선전부장 등직을 력임했다.

1934년 8월, 등영요는 홍6군단을 따라 서정의 길에 올랐다. 1936년 7월, 홍2방면군과 홍4방면군이 갈제에서 합류했고 그는 소극을 따라 홍4방면군에 가입해 정치부 주임을 맡았다. 장정을 하면서 등영요는 부대와 군중에 대한 선전, 동원 사업을 중요시했고 또 사회조사와 신병확대에도 중시를 돌렸으며 적들과의 투쟁에서 견결하고 용감하였다.

전국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등영요는 팔로군 제129사 기병대 정치위원으로 부임되였고 부대를 거느리고 하북 남부 일대를 종횡무진하면서 하북 남부에 항일근거지를 개척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하북 남부의 전투가 금방 시작되였을 때 그는 400명 신병들을 거느리고 40여대 차량에 타고 있던 일본침략군을 격퇴시켰다. 후에 하북 남부 제5지대 정치위원으로 부임되여 부대를 거느리고 무읍, 부성, 조강 일대를 종횡무진하면서 일본군, 괴뢰군의 여러차례 ‘소탕’을 물리쳤다.

1939년 초, 등영요는 제129사 동진종대 정치부 주임으로 부임되였다. 3월 3일 아침, 부대를 거느리고 무읍 동남의 서촌에서 일본군과 조우했다. 그는 일부분 전사들은 군중전이를 돕게 하고 일부분은 등장촌 남부에 매복해 있다가 적을 습격하도록 명령하고 직접 30여명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저격전을 벌였다. 치렬한 싸움을 거쳐 등영요는 적들의 첫 공격을 물리치고 매복지점으로 전이하다가 불행하게 머리와 다리에 총탄을 맞고 땅에 쓰러졌다. 혼수상태에서 깨여난 그는 전사들에게 적들을 매복권으로 끌어들이라고 재촉하면서 총을 들어 사격을 가했다. 결국 등영요는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으로 희생되였는데 그때 나이는 27살밖에 안되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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