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운 왕근영 렬사

2019-05-11 14:11:09

중국공산당 제1차 대표대회 개최지 기념관에는 두가지 문물이 소장되여있는데 하나는 도안과 문자를 수놓은 흰 천 책가방과 이 책가방을 부칠 때 썼던 보자기이다. 이 두가지 문물이 보기에는 특수하지 않지만 한 혁명적 어머니의 어린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이 두가지 문물은 1935년 한 공산주의자가 감옥에서 6살 난 아들에게 부친 것이다. 그 어머니가 바로 왕근영 렬사이다.

왕근영 렬사

왕근영은 1906년 상해 포동에서 태여났으며 9살 때부터 외국상인 방직공장에서 아동공으로 일했다. 1925년 그녀는 ‘5.30’ 반제애국운동에 참가했으며 투쟁과정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27년 4월 하순, 왕근영은 상해대표 신분으로 무한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5차 전국대표대회에 참가한 뒤 전국 제4차 로동대회에 참가했으며 또 중국로동계급의 대표 신분으로 한구에서 열린 국제로동자태평양로동대회에 참석했다. 그동안 왕근영은 진갱을 알게 되였고 둘은 부부인연을 맺었다. 얼마 후 명령을 받고 상해에 돌아가 당중앙기관에서 지하교통사업을 책임졌다. 진갱도 여러 곳을 거쳐 상해에 와 중공중앙 정보국에서 정보사업 령도를 책임졌다. 정보국이라는 비밀전선에서 왕근영은 진갱의 사업을 적극 엄호하고 협조했으며 당중앙에 많은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고 수많은 체포된 동지들을 구출했다.

1932년, 왕근영은 전국총공회 조직위원, 녀성사업부 부장을 맡고 상해로동자운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령도했다. 1933년 12월 반역자의 밀고로 왕근영은 체포되여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왕근영은 적들의 비인간적인 시달림 속에서 굴할 줄 모르는 의지로 적들과 간고하게 투쟁했다. 감옥에서 왕근영은 자기의 집과 아들을 걱정했다.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개최지 기념관에 소장되여있는 천으로 된 책가방은 그녀가 남경로호교감옥에서 바느질하여 만든 것이다.

전국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당조직의 구출행동을 통해 왕근영은 감옥에서 나왔다. 1938년 가을 왕근영은 팔로군 129사 공급부 재정경제간부학교에 전근되여 정치지도원을 맡았다. 1939년 3월 8일 129사 공급부와 학교 소재지는 일본군의 돌연적인 습격과 포위를 당했다. 포위를 돌파하는 위급한 시각에 왕근영은 당내문건과 공금이 들어있는 멜가방을 두고 온 것을 발견하고 단연히 마을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일본군과 조우하여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왕근영의 나이는 33살밖에 안되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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