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을 다해 국가에 보답한 진안보

2019-05-13 14:49:16

해마다 청명절, 추석날이면 절강성 대주시의 시민들은 잊지 않고 봉황산에 위치한 진안보 렬사 기념관을 찾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항일명장을 참배한다.

진안보 렬사

봉황산을 따라 한계단 한계단씩 올라가느라면 량켠은 각계 인사들이 렬사를 위해 쓴 추도문이 있고 산꼭대기 묘비 앞에는 5메터 높이의 돌기둥이 우뚝 서있는데 거기에는 ‘항일명장 진안보의 묘’란 아홉글자가 새겨져있다.

진안보는 자가 선부이다. 1891년 절강 황암 횡가향 마원촌(오늘의 대주시 로교구 횡가진에 속함)에서 태여났다. 1916년 보정륙군군관학교 보병과 제3기반을 졸업하고 절강 륙군 제2사에서 패장, 련장을 맡았다. 1926년 제2사가 국민혁명군 제26군으로 개편되였고 진안보는 영장을 맡고 북벌전쟁에 참가했다. 1930년후에는 퇀장, 려장을 맡았고 1933년에는 제79사 부사장으로, 1935년에는 사장으로 승급했다. 전국항일전쟁이 폭발한후 진안보는 부대를 거느리고 송호대결전에 참가했고 전투에서 공로가 혁혁하여 제29군 군장 겸 제79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1939년 3월, 진안보는 부대를 거느리고 남창전역에 참가했다. 5월 6일 새벽에 일본군은 진안보부대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부대는 사상자가 아주 많이 발생했다. 오후 5시, 일본군은 중국군의 룡리장 진지를 돌파했고 쌍방은 육박전을 벌이게 되였으며 혼전에 빠졌다. 진안보는 수행원을 거느리고 일본군 전투기의 폭격을 무릅쓰고 진군하다가 불행히 총에 맞아 희생되였다.

1939년 여름, 진안보의 령구가 고향으로 운송되여 봉황산에 안장되였다. 1983년 12월, 절강성인민정부는 진안보에게 혁명렬사칭호를 수여할 데 대해 비준하였다. 1974년 4월, 황암현은 항일전쟁초기 진안보가 기부하여 재건한 작신소학교를 회복하고 ‘안보소학교’로 명명할 것을 결정했다. 로교구정부는 진의 광장을 ‘안보광장’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진안보의 영웅사적은 향토교재로 집필되여‘개학 첫 일과’로 당지 중소학교 수업 내용으로 되였다.

봉황산에 위치한 진안보렬사기념원은 렬사기념관, 생가, 렬사릉원 3개 부분으로 구성되였다. 기념관은 2014년 9월에 락성되였으며 건축면적이 1600평방메터이다. 해마다 청명절이면 로교구는 항상 공동장례식을 거행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렬사를 추모한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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