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심을 지니고간고분투한 도정곤

2019-05-20 08:51:30

다년간 호남 악양 평강현에는 혁명선렬 도정곤의 영웅적인 사적이 널리 전해지고 있다.

도정곤은 1897년 11월 호남성 평강현에서 태여났다. 1925년 5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1927년 9월 모택동이 령도하는 상감변계 추수봉기에 참가했다. 추수봉기가 실패한 후 그는 봉기에 참가한 평강농민폭동대 대원들을 거느리고 평강 동부 련운산일대에서 유격전을 하였다. 1928년 2월, 중공평강 제4구 구위 서기 겸 유격대 당대표를 맡았다.

도정곤 렬사

1928년 7월, 도정곤은 유격대를 거느리고 팽덕회, 등대원, 황공략 등이 령도한 평강봉기와 협동작전하였으며 홍5군의 창건과 상악감근거지의 개척 투쟁에 참여했다. 1930년 5월, 전 현의 유격대, 적위대 및 로농군중 10여만명을 거느리고 장사를 공략하는 홍3군단을 지원하고 배합하였다. ‘7.7’사변이 폭발한 후 도정곤과 부추도는 중앙의 요구에 따라 국민당 군정당국과 담판을 진행하였고 상악감쏘베트구역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건립했다. 1937년말, 중앙은 상악감홍군유격대를 신사군 계렬에 편입시키고 도정도가 특위 서기를 맡고 후방에 남아 투쟁을 견지하면서 새로 설립된 신사군 평강대행처(후에 통신처로 고침) 주임을 맡게 하기로 결정했다.

도정곤은 중앙의 결정을 견결히 집행했으며 상악감특위, 신사군 평강대행처의 기타 동지들과 함께 상악감변구의 항일구국투쟁에 적극 뛰여들었다. 그들은 한면으로는 당조직을 신속히 정돈, 회복, 발전시키였고 다른 한면으로는 당의 항일민족통일전선 주장을 널리 선전하면서 인민군중들이 항일전쟁을 지원하고 항일전쟁에 참가하도록 동원하였다. 1939년 1월, 국민당 제5기 5차 전원회의에서 ‘공산당 용해’, ‘공산당 방비’, ‘공산당 제한’ 반동방침을 확정하면서 각지에서는 공산당이 령도하는 항일군민을 습격하고 살해하는 반공 충돌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1939년 6월 12일, 국민당 완고파 군대는 평강 신사군통신처를 비밀리에 포위하고 전국을 들썽한 평강참안을 일으켰다. 도정곤은 바로 그번 참안에서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나이는 42살이였다.

도정곤이 살해당한 후 그의 안해 주인매와 아들 도명도는 마을사람들의 적극적인 엄호하에 위험에서 벗어났다. 올해 82세인 도명도는 규률과 법을 반드시 지키며 시시각각 자신이 렬사의 후대라는 것을 명기하고 혁명전통을 발양해야 한다고 자녀들을 교양하고 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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