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던지고 종군한 항일영웅 마요남

2019-05-22 08:36:45

산동성 치박시경제개발구 북교진 북왕촌에서 항일영웅 마요남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해마다 간부, 군중들은 마요남의 생가를 찾아 항일 애국영웅을 추모하군 한다.

마요남은 1902년 산동성 장산현 북왕장(오늘의 치박시경제개발구 북교진 북왕촌)에서 태여났다. 1930년 천진 북양대학 기계공정학부를 졸업했다. 학생시절에 반제애국운동에 적극 투신했고 진보적인 동학들과 함께 반일회를 조직하고 거리, 농촌에 나가 항일구국을 선전하고 일본제품을 배척했다. 일찍 북양대학 학생련합회와 천진시학생련합회 책임자를 맡았다.

마요남 렬사

1933년, 마요남은 장산중학교 교장직을 맡고 교육구국의 리념을 견지했다. 로구교사변이 폭발한 후 그는 일본군국주의의 침략폭행에 몹시 분개했다. 그는 결심을 내리고 항일전쟁의 세찬 흐름에 뛰여들었다. 마요남의 항일열정에 비추어 중공산동성위는 항일무장봉기 계획을 제정할 때 장산중학교를 중요거점으로 삼고 이 학교에 당소조를 설립하고 성당위 령도에 직속시키였으며 한패의 중공당원들이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항일간부들을 양성, 훈련했다. 그동안 마요남은 중화민족해방선봉대에 참가했다. 그는 교수개혁의 명의로 학과목을 조절하고 항전구국의 내용을 대량 강화했다. 그리고 대중을 위해 야학교를 꾸린다는 명의로 유격간부훈련반을 개설하였고 공산주의자들이 군사, 정치 과목을 강의했다.

1937년 12월, 마요남은 흑철산무장항일봉기에 참가했고 청하평원에서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첫 항일무장을 설립했다. 그의 노력하에 장산현 보안대대도 봉기부대에 참가했다. 1938년 6월, 봉기부대는 팔로군 산동인민항일유격 제3지대(후에 팔로군 산동종대 제3지대로 개칭)로 편성되였고 마요남이 사령원을 맡았다. 그해 10월 마요남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부대를 거느리고 일본군과 여러번 작전하여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1939년 7월 22일, 마요남은 환대 우왕장전투에서 적들의 매복습격을 당해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나이는 37살밖에 안되였다. 그의 교육과 영향하에 그의 두 남동생 마효운과 마천민도 팔로군에 참가했으며 선후하여 항일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마요남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발해구당위는 일찍 산동성 장산현을 ‘요남현’으로 개칭하고 ‘요남중학교’와 ‘요남극단’을 설립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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