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애국 지식분자의 본보기 양유민

2019-05-22 15:10:31

하북성 천안시 양단보촌에서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 나왔다. 그가 바로 미국류학 귀국 박사이고 중국의 이름난 종이제조 전문가, 대학교수, 사립 평민녀자학교 창립자이며 붓을 던지고 종군한 항일애국지사 양유민이다.

양유민은 양십삼이라고도 불리웠다. 1889년 하북성 펀안현 양단보촌에서 태여났고 1906년 천진 공예학당에 입학했다. 후에 남개중학교, 하북성직속 고급공업전문학교에서 공부했다. 1916년 천진직속 공업실험소 화학공업과 조리공정사를 맡았다. 1920년 미국에 가서 제지전업을 공부했고 박사학위를 따냈다.

양유민 렬사

1924년, 양유민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 양립삼의 지지하에 ‘립삼평민녀자학교’를 설립했다. 년령제한이 없이 가정형편을 따지지 않고 학생들을 무료로 입학시켰다. 1928년, 양유민은 하북공학원의 초빙을 받고 교수 겸 기숙사 사무과 주임을 맡았으며 1931년‘알칼리법 아류산염 갈대펄프 제지기술’을 처음으로 창조했다.

1937년, 전국적인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양유민은 화북인민항일자위회에 가입해 주임을 맡았고 항일활동에 참가했다. 1938년 봄, 중공 하북성위는 팔로군의 동진 항일을 맞이하기 위해 익동에서 대규모 로농무장항일 대폭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했다. 양유민은 익동항일련군 제1로군 정치부 주임을 맡고 동원조직사업에 참여했다. 6월, 팔로군은 평서에서 출발하여 익동 풍윤, 옥전에 도착한 후 부대를 거느리고 협동작전을 펼쳤다. 7월, 8월 기간 일본군과 50여차례 싸웠고 많은 적군을 소멸했으며 옥전 등 15개 현성을 수복했다.

1939년 6월, 양유민은 하북성 서부로부터 태항산 려성의 팔로군 총부로 가서 명령을 받고 팔로군 총부에서 군사공업사업을 책임졌다. 7월 21일, 장기적인 피로가 쌓여 고질병이 도졌으며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때 나이는 50살이였다.

팔로군 총부가 소집한 양유민 추도대회에서 모택동은 ‘익동항일영웅 양십삼을 추모하여’란 주련을 썼다. 장기간 양유민 연구에 종사해온 곽점량은 “애국지식분자의 본보기인 양십삼은 전 재산을 다 털어 항일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그 년대에 그가 단호히 부유한 가정을 떠나 혁명사업에 투신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흔치 않은 일이였다.”며 양단보촌 전임 당지부 서기 양사민은 양유민의 이같은 정신이 마을의 후배들을 고무격려했고 양유민의 영향하에 양단보촌에서 입대하는 사람이 특별히 많았고 이 촌은 로혁명근거지 마을로 소문이 났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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