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일관 구국과 민족의생존 위해 분투한 강상청

2019-05-25 13:29:46

강소성 양주시 광릉구 정충항 33호에는 중국과 서양의 특징을 갖춘 작은 양옥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강상청 렬사 사료 진렬관이다.

강상청은 본명이 강세후이다. 1911년 음력 4월에 강소 강도에서 태여났다. 1927년에 남통중학교 고중부에 입학하여 류서룡, 고민원 등 혁명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해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여 그때로부터 혁명의 길에 들어섰다.

강상청 렬사

1928년 여름, 강상청은 양주고중에서 공부했고 그해 겨울 국민당 당국에 체포되여 감옥에 갇혔다. 1929년 감옥에서 나온 후 이름을 강상청이라 고치고 상해 ‘예술대학’ 문학학부에서 공부했으며 그해 중국공산당으로 되여 ‘예술대학’ 지하당지부 서기를 맡고 계속 지하혁명사업에 종사했다. 1929년 겨울 또다시 체포되여 1년 후에 감옥에서 나왔다.

1931년 ‘9.18’사변 이후 일본침략자들의 침략과 국민당 당국의 비저항정책으로 빚어진 극심한 재난 앞에서 강상청은 가슴에 의분이 가득차 격정에 넘쳐 장편시 <전진곡>을 썼다. 당년에 이 시는 널리 전해져 민중들을 각성시키고 항일투지를 고무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그 뒤 강상청은 일부 열혈의 청년들과 함께 선후하여 《신세기주간》, 《습작과 열독》, 《항적주간》 등 간행물을 꾸려 맑스주의의 혁명도리를 선전하고 항일구국, 애국주의와 유물주의 사상을 선전하였으며 혁명의 불씨를 전파했다.

1937년 7월, 로구교사변 후 강상청은 《로구교의 새벽달》을 발표하여 항일구국의 격정을 표달했다. 전국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 강상청 등은 ‘강도현 문화계 구국협회 류동선전단’을 조직, 설립하여 강도에서 출발해 강을 거슬러올라가면서 항일선전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민중들이 항일사업에 참가하도록 조직, 동원했다.

1938년 8월, 강상청은 당의 지시에 따라 안휘에 가 중공안휘성사업위원회의 령도하에 안휘성항일민중동원위원회의 사업에 참가했으며 대별산지역에서 항일선전 사업을 전개했다. 1938년 11월, 안휘성 동북지역이 일본군에 점령당한 후 중공안휘성사업위원회 선전부장 장경부 등은 강상청 등 여러명 공산당원들을 안휘성 동북지역에 파견해 항일선전 사업을 전개했으며 강상청은 국민당 안휘성 제6행정구 전원공서 전원 비서 겸 보안 부사령, 제5유격구 사령부 정치부 주임을 맡았다. 강상청 등은 합법적인 신분을 리용하여 항일선전을 전개하고 항일간부를 양성, 훈련시키고 항일무장 등을 건립했으며 비밀당원들 속에서 중공안휘성 제6행정구 전원공서 특별지부를 건립하고 강상청이 특별지부 서기를 맡았다.

1939년 3월, 중공안휘성동북특별위원회가 설립되였고 양순이 특별위원회 서기를 맡고 강상청이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되였다. 특별위원회가 설립된 후 장애평 등을 적극 협조하여 안휘성 동북지역의 국공합작, 단결항전 국면 형성을 추동했다.

1939년 여름, 강상청은 지주반동무장의 습격을 당하여 몸에 총탄 여러발을 맞고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나이는 28살밖에 안되였다.

2012년 4월, 강상청진렬관은 정식으로 대외에 개방되였다. 진렬관은 시간순서에 따라 7개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했고 문자, 그림, 장면, 투영, 영상 등 방식으로 강상청의 짧지만 빛나는 인생을 전시했다.

양주시 애국주의교양 기지로서의 진렬관은 올해 ‘홍색유전자 전승 교양’ 행사를 전개하여 실제행동으로 홍색유전자를 전승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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