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침략자 간담 서늘케 한신사군의 ‘맹장’ 오혼

2019-05-28 08:36:33

신사군의 이름난 ‘맹장’ 오혼이 참가한 소주 호서관기차역 야간습격, 상해 홍교공항 야간습격 등 저명한 전투는 항일전쟁이 가장 어려운 세월에 전국인민의 항일신심을 크게 고무했다.

오혼은 또 오곤이라고도 불리웠으며 1910년 사천성 만현(오늘의 중경시 만주구)의 한 고농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1926년 군벌 양삼의 부대에 가입했다. 1930년 총을 갖고 왕유주가 령도하는 사천 로농홍군 제1로 유격대(후에 천동유격군으로 개편)에 참가했으며 그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오혼 렬사

1933년 11월, 천동유격군은 홍4방면군 제33군으로 개편되였고 오혼은 선후하여 영장, 퇀 참모장을 력임했으며 천(사천)섬(섬서)쏘베트구역 반 ‘6로 포위공격’에 참가했다. 1935년에 장정에 참가했고 1936년에 홍6군단 제17사 50퇀 퇀장을 맡았다.

1938년초, 오혼은 신사군 제3지대 제6퇀 부퇀장을 맡았다. 1938년 5월, 퇀장 엽비와 함께 명령을 받고 부대를 거느리고 강소성 남부 모산지역에 진입해 적후항일근거지를 개척했으며 작전에서 용감하여 ‘맹장’이라고 불리웠다.

1939년 5월, 오혼은 강남항일의용군 지휘부 부총지휘 겸 2로 사령을 맡았고 총지휘 엽비와 함께 부대를 지휘해 동진하여 강음, 무석, 소주, 상숙, 태창 지역에서 유격전쟁을 전개하고 소주, 상숙, 태창 항일유격근거지를 개척했다.

1939년 6월 24일 저녁, 오혼은 부대를 거느리고 소주 호서관기차역을 야간습격해 일본군 55명과 괴뢰군 한개 중대를 전부 소멸하고 기차역을 불태우고 레루를 폭파해버림으로써 일본군의 중요한 교통선로인 녕호철도가 3일간 운행이 정지되였다. 7월 23일 저녁, 홍교공항 야간습격전투에 참가했다. 이는 국내외에 중대한 영향을 일으켰고 상해 및 전국 인민들의 항일신심을 크게 북돋아주었다. 8월까지 소주, 상숙, 태창과 강음 등 지역에서 전개한 크고작은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강남항일의용군은 5000여명으로 발전되였다.

오혼의 전투작풍은 용맹하고 완강했다. 전투에서 그는 항상 앞장에서 돌진했고 위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또 항상 직접 돌격나팔을 불었고 부대를 거느리고 적들을 향해서 돌진했다.

1939년 9월, 오혼은 강남항일의용군 6퇀을 거느리고 동로지역에서 철수했다. 철수과정에 강음 마진향 호당리 정산일대에서 ‘충의구국군’의 돌연습격을 당했다. 오혼은 전투를 지휘할 때 머리에 총탄을 맞고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나이는 29살밖에 안되였다.

오혼이 희생된 후 강남항일의용군 총지휘부는 추도대회를 거행하고 진의가 추도사를 드리여 렬사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했다. 새 중국이 창건된 후 오혼렬사묘는 강음에서 남경시 우화대렬사릉원으로 옮겨졌다. 1985년 청명절에 강음시인민정부는 정산 남쪽기슭에 ‘오혼렬사매장지기념비’를 세우고 2003년에는 오혼렬사묘를 재건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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