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대한 기상을 품은젊은 지휘관 곽정

2019-05-28 16:17:39

“곽정은 우리가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이다. 나는 해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렬사를 추모하고 렬사의 혁명정신을 따라배우게 한다.” 강서성 태화현 관조진 대강촌 촌민 곽려명의 말이다.

곽정은 본명이 곽휘면이다. 1914년 강서성 태화현 관조향 루거촌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났으며 1923년 돈목당소학교에서 공부했다. 토지혁명시기 강서성 태화현에서 농민운동과 혁명무장투쟁이 거세차게 일어났다. 부친 곽상구는 사촌구 대강향 중공 지부서기를 맡았다. 부친의 영향하에 곽정은 아동단에 가입했고 혁명활동에 참가했다.

곽정 렬사

1930년 7월, 곽정은 감숙성 서남홍군간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해 10월, 홍12군 사령부의 련락병으로 되였고 1931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선후로 련락병반 반장, 퇀 참모, 9군단 사령부 정찰통신과 참모를 력임했다.

1934년 10월, 곽정은 중앙홍군 주력부대를 따라 장정에 참가했다. 사업에서 책임성이 강하고 임무를 적극적이고도 견결하게 완성하여 준의회의가 끝난 후 9군단 사령부 정찰통신과 과장을 맡았다. 1937년 1월에 중국인민항일군사정치대학 제2기 학습에 참가했다. 그해 8월에 졸업한 후 팔로군 120사 정찰과 과장을 맡았고 군을  따라서 산서 항일전선으로 갔다. 산서성 서북항일근거지에 있는 1년동안 그는 사단지휘부에서 조직한 지방사업단을 따라 오채지역에 가서 군중을 널리 발동하고 ‘항일구국 10대 강령’을 선전하여 식량대금을 모으고 항일무장을 건설했다. 곽정은 선후로 오채시구역 자위대 대장, 학생병퇀 참모장을 력임했다.

1939년 1월, 곽정은 120사 주력부대를 따라 하북에 도착했다. 같은해 2월에 독립 제4지대 제2퇀 퇀장을 맡았으며 4월에 독립 제4지대와 715퇀이 120사 독립 1려단으로 편성되면서 곽정이 참모장을 맡았다. 제회전투에서 그와 려단의 수장은 직접 전선에 가서 부대를 지휘하여 적들의 여러차례 진공을 물리쳤으며 700여명의 일본군을 섬멸하는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하북에 있는 8개월 되는 동안에 곽정은 110여차의 크고작은 전투에 참가, 지휘했으며 전투에서 시종 제일 앞장에서 돌진했고 침착하고 슬기롭게 부대를 지휘했다.

1939년 9월 25일 오전, 정정, 무극, 행당과 령수 등지를 지키고 있던 일본군과 괴뢰군 1500여명은 진찰기항일근거지로 향한 진공통로를 뚫으려고 시도했다. 적들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우리 군은 적들과 치렬한 전투를 전개했다. 2박3일간의 치렬한 전투를 거쳐 1200여명의 적들을 섬멸하였고 남은 것은 적군 잔당들이 차지하고 있는 마지막 고지뿐이였다. 29일 해질 무렵, 우리 군은 적군을 향해 총공세를 발동했고 전투과정에서 곽정은 가슴과 머리에 총탄을 맞았고 상처가 심해 25살 나이에 희생되였다. 곽정의 유체는 하북성 행당현 진대촌에 매장되였고 1985년 겨울 유골을 고향으로 이장하였다.

1998년, 중공 태화현위와 태화현인민정부는 곽정렬사묘를 애국주의교육기지로 명명하였고 2005년에 보수를 거쳤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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