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할 줄 모르는 강철전사 양정우

2019-06-11 08:31:23

양정우는 본명이 마상덕이며 1905년 하남성 확산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학생 시절에 반제애국운동에 적극 뛰여들었다. 1925년 6월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했고 1926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대혁명이 실패한 후 확산봉기를 조직했고 농민혁명군 총지휘를 맡았다. 1928년 가을 개봉, 락양 등지에 가서 지하혁명사업에 종사했다. 1929년 봄에 동북으로 가서 중공무순특별지부 서기를 맡고 로동자운동을 령도했다. 하남과 동북에서 일찍 다섯번 체포되여 감옥에 갇혔고 번마다 갖은 혹형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았다.

1931년 ‘9.18’사변 이후 중공 할빈시위 서기 겸 만주성위 군위 대리서기를 맡았다. 1932년 가을에 남만으로 파견되여 중국로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를 창설하고 정치위원을 맡았으며 반석 홍석립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격근거지를 창건했다.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독립사 사장 겸 정치위원을 맡았다. 1934년 4월, 17갈래의 항일무장과 련합하여 항일련합군 총지휘부를 설립하고 총지휘를 맡았으며 그해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군장 겸 정치위원을 맡았다. 1936년 7월에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 겸 정치위원을 맡았다. 양정우는 부대를 거느리고 장기적으로 동남만대지를 종횡무진하며 싸우면서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고 동북을 크게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전국의 항일전쟁에 배합했다. 일본군과 괴뢰군은 타격을 받은 후 동북항일련군에 대한 군사토벌, 경제봉쇄와 정치유인과 투항을 다그치는 동시에 양정우를 체포하기 위해 현상금을 걸었다. 극단적으로 어려운 조건하에서 양정우는 전투를 견지했다. 중공 제6기 제6차 전체회의는 양정우를 대표로 한 동북항일무장에 위문 전보문을 보내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적들과 7년 넘게 고생도 두려워하지 않고 힘들게 싸워온 본보기’라고 높이 평가했다.

1939년, 동남만지역의 가을철과 겨울철 반‘토벌’ 작전에서 그와 위증민 등은 부대를 지휘해 분산작전하면서 유격전을 펼쳤다. 양정우는 경위려를 거느리고 몽강일대를 전전하면서 마지막에는 홀몸으로 적들과 5일 동안 밤낮으로 선회하면서 싸웠다. 그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의력으로 적들과 마지막 탄알 하나 남을 때까지 완강하게 싸우다가 1940년 2월 23일 길림성 몽강 삼도위자에서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잔인한 일본군은 그의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갈랐는데 배속에는 쌀 한톨 없고 온통 풀과 나무껍질, 이불솜이였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1946년 동북민주련군 통화지대를 양정우지대로 개칭하고 몽강현을 정우현으로 명명했다.

양정우기념관은 2009년 대외에 개방한 이래 많은 행정기관, 기업사업단위, 주둔부대, 사회단체들이 기념관을 찾아 애국주의교양, 입당선서 등 활동을 거행하고 있다. 2018년 기념관 참관인수는 40여만명, 참관단체는 100여개에 달하였으며 애국주의교양을 진행하고 민족정신을 육성하는 중요한 진지로 되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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