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사업을 위해 평생을 분투한 팽인발

2019-06-11 14:34:50

신강 우룸치시 렬사릉원에는 송백나무 우거지고 엄숙하고 정중하다. 비록 눈에 잘 띠이지 않는 곳이지만 선렬들을 추모하러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팽인발은 본명이 팽덕인이고 강서 감주사람이며 가난한 집에서 태여났다. 1930년에 중국로농홍군에 참가하였고 얼마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일찍 홍군 부대에서 선후로 전사, 경위원과 퇀, 사의 특파원을 력임했고 5차례 반포위토벌투쟁과 세인이 주목하는 2만 5000리장정에 참가했으며 홍군을 따라 섬북에까지 갔다. 항일전쟁이 전면폭발한후 파견을 받고 연안모터찌클학교에 가서 공부했다.

팽인발 렬사

1937년 12월, 팽인발은 당중앙의 파견을 받고 신강에 가서 항공기술을 배웠다. 1938년 3월, 신강변방감독공서 항공대 기계반에서 공부했다. 신강에서 공부하는 기간 팽인발은 설산을 넘고 초지를 건느는 혁명정신으로 학습과정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열심히 공부했다. 학습시간이나 자습시간 뿐만 아니라 과외활동시간에도 공부를 했고 저녁이면 이불속에서 손전지를 켜고 책을 보았다. 명절날에도 그와 전우들은 경상적으로 야외에 가서 공부했으며 책만 들면 온하루 공부했다.

노력을 거쳐 팽인발은 아주 빨리 ‘비행원리’ 등 항공기초리론과정을 마쳤고 교수요강에 규정된 항공지식을 기본상 장악했으며 모든 시간을 틀어쥐고 실제조작기술을 배워 과목 시험마다 4점이상(만점이 5점)씩 맞았다.

팽인발은 경상적으로 신강에서 공부하는 전우들과 서로 고무하고 격려하였으며 전우들에게 “우리는 공산당원이다. 우리는 기술을 배우려고 신강에 왔기에 조직의 중탁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기술을 잘 배워 우리 자신의 공군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1939년 11월, 팽인발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소위칭호를 수여받았다. 그후 그는 당조직의 배치에 따라 계속 신강변방감독공서 항공대에 남아 공부했으며 기계사를 담당했다.

1940년 2월, 한차례 비행훈련에서 기온이 낮아 비행기 발동기가 발동이 걸리지 않자 팽인발은 주동적으로 앞으로 다가가 시동을 걸려다가 프로펠라가 갑자기 회전하는바람에 중상을 입고 불행하게 사망했다.

우룸치시렬사릉원의 소개에 따르면 현재 이 렬사릉원에는 도합 93명 렬사가 안장되여있는데 그중 진담추, 모택민, 림기로, 팽인발 등 10명 렬사의 유골은 1956년 릉원설립초기에 릉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팽인발은 10명 렬사 가운데서 유일하게 생년월이 상세하지 않고 릉원에서 지금까지 일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는 렬사이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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