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 정작민

2019-06-12 14:26:11

호남성 신전현 신우진 고산촌에는 민국시기 건축풍격으로 된 집이 각별히 눈에 띄운다. 당대의 영웅렬사 정작민은 바로 이곳에서 태여나 성장했으며 나라를 위해 보답하는 길을 걸었다. 정작민 생가는 2012년 보수를 거친 후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참관하고 렬사를 추모하고 있다.

정작민 렬사

정작민은 별명이 진화, 문패, 치신이며 1902년에 호남성 신전현에서 태여났다. 어려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버지를 따라 가마를 메고 석탄을 날랐으며 림시공도 하면서 돈을 벌어 개인서당부터 초등학교, 고등학교 갑종사범학교 공부를 마쳤다.

1924년, 정작민은 황포군관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했고 패장, 련장, 영장, 퇀장, 려장 등 직무를 력임했다. 항일전쟁이 전면 폭발한 후 국민혁명군 제2군 제9사 대리 부사장을 맡았고 1938년에 사장으로 승급했다.

1939년, 정작민은 제2군 부군장 겸 제9사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선후로 송호대결전, 서주포위돌파전 등 전역에 참가했다. 1940년 1월, 두률명의 제5군을 배합해 일본군을 공격하고 곤륜관을 수복하기 위해 명령을 받고 부대를 거느리고 남녕으로 달려갔다. 부대가 광서 곤륜관에 도착한 후 즉시 싸움에 뛰여들었고 기타 부대의 협조하에 곤륜관을 수복했다.

1940년 2월 22일, 일본군은 공중우세를 리용해 빈양을 점령하고 곤륜관을 크게 위협했다. 3월 3일, 정작민의 부대는 명령을 받고 철수하면서 부대를 지휘해 일본군을 향해 거짓공격을 벌려 부대가 전이하도록 엄호했다. 광서 상림현에 이르렀을 때 일본군 전투기는 번갈아 습격을 가했고 정작민은 폭탄에 맞아 희생되였다. 그때 나이는 38살밖에 안되였다.

정작민이 희생된후 중공중앙은 연안에서 당, 정, 군, 민이 참가한 추도대회를 소집하였고 모택동, 주은래, 주덕은 각기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쳤다’, ‘숭고한 리상과 정의로운 사업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추도사를 써주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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