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바쳐 국가에 충성한 서추

2019-06-26 14:30:33

24살에 혁명에 참가하고 장정 과정에 부대를 거느리고 부교를 만들어 오강을 건넜으며 항전 과정에 일본군과 괴뢰군 거점을 수차 공격해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그는 고향을 보위하기 위해 영용하게 희생되였다… “서추렬사의 일생은 비록 짧았지만 비할바없이 장렬하였다.” 호남성 악양시 평강현사지판공실 사업일군 리쌍룡이 소개했다.

서추는 본명이 서추향이며 1903년에 태여났다. 호남 평강현 탁수향 홍산당 요옥장 사람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소학교까지 공부하고 후에 지주집에 가서 일을 했다.

1931년 7월 초, 모택동이 령도한 상감변계 추수봉기가 폭발했고 서추는 당지의 적위대에 참가했다. 그는 1930년 7월에 중국로농홍군에 참가했고 그해 10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서추 렬사

1931년 7월초, 부대가 강서 흥국으로 돌아간후 홍군대오를 확충하기 위해 그는 주동적으로 퇀부에 건의하고 비준과 동의를 받은후 홍군가족대표회의를 주관하고 홍군전사들이 생산로동에 참가해 홍군가족을 도와줄 것을 동원했다. 홍군을 지지하고 군대를 확충하는 운동과정에 그의 사상선전사업은 세밀하고 효과적이였다. 한번에 홍5군은 청년장병 300여명이 확충되였다.

1933년 6월 중순, 서추는 홍5군 제1사 제10퇀 부참모장을 맡았다. 1934년 말부터 1935년 봄까지 홍3군단은 장정 과정에 루산관을 점령하고 오강을 강행도하했다. 서추는 부대를 거느리고 부교를 만들어라는 명령을 받고 하루동안의 악전고투끝에 부교가 가설함으로써 부대는 끝내 오강을 건넜다.

항일전쟁이 폭발한후 홍군은 팔로군으로 개편되였고 서추는 115사로 전근되여 항일전선으로 출발했다. 1939년 봄, 팔로군 제115사 동진지대를 따라 산동성 서부에 진입했고 선후로 하북-산동 군구 제8군분구 사령원 등 직을 맡았다.

그후 서추는 부대를 따라 태(산)서근거지로 갔고 거기서 군중을 발동하고 항일구국운동을 조직했다. 5월, 일본군과 괴뢰군이 태서근거지를 포위공격했고 그는 퇀부조직을 협조해 륙방에서 포위를 돌파한후 동평으로 이동했다가 산동성 남부에 진입해 백언쟁탈전에 참가했다.

1940년 3월, 일본군과 괴뢰군이 운성현 담장촌에 진주해 미처 발을 붙이지 못한 기회에 서추는 부대를 거느리고 야밤에 적의 병영을 돌연 습격하여 적 200여명을 섬멸하고 많은 총과 탄약을 로획했다.

그해 9월, 근거지에서 파견한 남하간부가 운성을 경유할 때 서추는 주동적으로 경내 호송임무를 맡았다. 그후 조루에서 적들의 포위를 당했을 때 서추는 적의 병력이 너무 많아 강다짐으로 맞다들면 필연코 막대한 손실을 조성할 것이라는 것을 탐지하고 포위를 뚫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한개 련이 먼저 조루 서쪽으로 강을 건너 성공적으로 포위를 돌파할 것을 명령했다. 남하간부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서추는 부대를 거느리고 정면으로 포위를 돌파했다. 강을 건늘 때 적들의 화력이 너무 강해 서추는 불행하게 총에 맞아 희생되였는데 그때 37살이였다. 후에 서추는 산동성 운성현렬사릉원에 안장되였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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