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작전으로 사행을 고수한사진원 등 ‘800명 용사’

2019-07-15 08:32:14

‘중국은 멸망하지 않는다. 중국은 멸망하지 않는다. 민족영웅 사퇀장을 보라. 중국은 멸망하지 않는다. 중국은 멸망하지 않는다.  고군작전하며 사행을 고수하는 800명 용사를 보라.’ 이는 당시 ‘800명 용사’가 사행창고에서 적들과 필사적으로 맞서 싸운 이야기를 노래한 가사이다. 지금 들어도 여전히 사람들을 정의감에 불타게 한다.

사진원은 광동성 초령현 신포허 첨갱촌사람이다. 1905년 4월에 출생했다. 1922년에 광주국립고등사범학원에 입학했고 1925년말에 황포군관학교 제4기로 입학했다. 1934년 9월 로산군관훈련퇀 제2기로 졸업했다. 그 다음해 제88사 보충퇀 중좌 영장을 맡았다.

1937년, ‘8.13’송호대회전이 폭발한 후 일본군은 대장, 강만, 갑북, 묘행 지역을 륙속 점령하고 중국 군대의 퇴로를 차단시키려 시도했다. 국민정부 군사위원회는 주력부대를 소주하 이남 진지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10월 26일, 제88사 262려 524퇀 부퇀장 사진원은 명령을 받고 장병 400여명을 거느리고 갑북에 남아 대부대의 철수를 엄호했다. 그들은 10월 27일 새벽 소주하 이북의 사행창고에 들어가 주둔했다. 적들을 미혹시키기 위해 사행수비군(웃 자료사진)은 대외로는 병력이 800명 된다고 소문했다. 하여 외부에서는 그들을 ‘800명 용사’라고 불렀다.

10월 27일 새벽, 일본군은 사행창고에 중국 수비군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즉각 진공을 발동했다가 ‘800명 용사’의 맹저격을 당했다. 10월 28일 저녁, 사진원은 장병들에게 ‘사행창고를 사수하며 마지막 진지에서 생사를 같이하자’는 명령을 전달했다.

사진원은 부대를 거느리고 극악무도한 일본군과 4주야 동안 치렬한 싸움을 벌려 적들의 미친 듯한 진공 100여차 격퇴시키고 일본군 200여명을 살상함으로써 생명과 진붉은 피로 침략을 반대하여 싸운 장려한 승리의 노래를 울려주었다. 이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800명 용사 사행을 사수’라는 영웅이야기이다.

10월 31일 새벽, 대부대의 후퇴임무를 완수한 후 ‘800명 용사’는 명령을 받고 전부 공공조계지로 철수했다. 그 후 왕위국민정부는 여러번 사람을 파견해 높은 벼슬과 많은 록봉으로 사진원을 권항했으나 사진원은 번마다 엄하게 거절했다. 1941년 4월 24일, 사진원은 왕위국민정부가 수매한 병사의 비수에 찔려 숨졌다. 그때 나이는 37살이였다. 그해 5월 중국 정부는 명령을 내려 사진원을 륙군 보병 소장으로 추증했다.

항일전쟁 승리 후 항일영웅 사진원을 기념하기 위해 상해북기차역부터 사행창고까지 대통로를 진원로라고 이름을 고치였으며 고군병영과 벽 하나 사이두고 있는 교주공원을 진원공원이라고 개명하고 공원 안에 사진원묘지를 세웠다. 1983년 사진원묘지를 상해시 만국공동묘지 명인릉원으로 옮겼다.

최근 상해 사행창고 항일전쟁기념관을 찾아 렬사들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다. 남경대학살 조난자 국가 공동추모의 날에 즈음해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와 ‘800명 용사’와 사진원을 추모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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