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장군 촌성기

2019-07-15 14:50:46

운남등충국상릉원에 가면 항일영웅렬사이며 륙군중장인 촌성기장군의 묘지가 ‘영웅렬사사당’ 뒤켠의 소단파에 위치해있는데 묘비는 당지 특유의 화산석으로 만들어졌고 원형의 감람나무가지 화환이 새겨져있으며 엄숙하고 정중하다.

촌선기는 자가 념결이다. 1895년에 출생했으며 운남 등충사람이다. 1909년 운남륙군강무당에 입학했고 1910년에 동맹회에 가입했다. 신해혁명, 호법전쟁 등에 참가했다. 1923년후 손중산이 건립한 대원수 대본영 소장 록사참군, 중앙직속 헌병사령 등 직을 맡았다. 1926년에 북벌전쟁에 참가하였고 국민혁명군 제31군 참모처장을 맡았다. 1927년 제34려 부려장을 맡았다.

촌성기 렬사

1937년 7월 항일전쟁이 전면폭발한후 촌성기는 제12사 34려 려장을 맡았고 부대를 거느리고 태원전투에 참가했다. 전투공로가 혁혁하여 제3군 12사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중조산수비 명령을 받고 서쪽진지 방어임무를 맡았다.

1941년 5월, 일본군은 중조산지역에 대해 돌연습격을 발동해 장점진진지를 돌파했고 12사는 제2선 진지로 물러났다. 5월 12일, 일본군은 좌익수곡타고지를 함락했다. 촌성기는 명령을 받고 부대를 거느리고 포위를 돌파하다가 일본군의 포화에 오른쪽 다리가 끊어졌다. 5월 13일 저녁, 일본군은 또다시 중국수비군의 진지를 맹폭격했다. 촌성기는 나머지 부대를 거느리고 포위를 돌파해 마가만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일본군의 저애를 받았다. 쌍방 교전과정에 왼쪽다리도 끊어졌다.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촌성기는 칼로 뽑아 들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46살이였다.

1942년, 촌성기는 당시의 국민정부에 의해 륙군 중장으로 추서되였다. 1986년 5월에 촌성기는 렬사로 추인되였다.

1989년 촌성기의 유골은 등충국상릉원에 안장되였다. 그의 묘비 정면에는 ‘항일렬사, 륙군중장 촌성기장군의 묘’라는 몇글자가 새겨졌고 뒤면에는 촌성기를 애도하는 대련과 추도사가 새겨져있다.

오늘날 등충국상릉원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애국주의교육기지로 되였으며 해마다 연 100여만명 관광객을 접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국상릉원을 찾아 촌성기를 추모하고 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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